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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May 30. 2016

두려움

밤길을 산책하면서..

 늦은 저녁 친구와 커피를  마셨다.

 

 원래 밤에는 일부러라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메뉴판에 적혀있는 수많은, 복잡한, 그리고 화려한 이름들의 음료를 고민할 만큼의 힘조차도 남아있지 않은 밤이니까.

 정확히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매번 그러하듯 우리는 끊임없이 그리고 경쟁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떡볶이 떡 아니에요


 

 통유리로 되어있는 벽 옆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카페 앞 길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구경하기도 했다.

 덥기는 하지만 습하지는 않은 꽤 괜찮은 날씨였다. 사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나 에어컨이 나오는 환경이라서 날씨 따위는 크게 상관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는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한다며 슬슬 일어나자고 했다. 나는 좀 더 있어도 상관없었지만, 제법 직장인다운 멘트를 하게 된 친구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해서 알겠다고 말한 후에, 가볍게 인사를 하고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늦은 밤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중에 "카페인의 기운"이 올라왔다. 이 기운은 내가 이름 붙인 상태인데, 정신적으로 각성한 듯하면서도 약간은 탁해지는 몽롱한 이 기분을 부르는 말이다. 저녁에 이런 상태가 되어버리면 괜스레 감수성이 여려져서 그렇게 좋아하는 기분은 아니다.

 

이런 기분이 드는  잠을 자기는 틀렸다.

 

검은 저녁 하늘과 오렌지색 가로등이 어우러지는 도시는 걷기에 좋은 분위기여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걷다가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귀찮더라도 메뉴판을 보고 신중하게 선택할걸 그랬어.." 라며 후회해 보았지만 나는 항상 다짐하고는 금방 잊어버리는 성격이다. 항상 그래 왔고 딱히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결함도 아닌 것 같 때문에 앞으로도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병원에서도 금방 잊어버리는 성격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됐지."


 자연스럽게 병원에서의 추억으로 생각이 이어진다. 20대 초중반을 병원에서 보내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바뀌었다. 나름 소소하던 인생에서의 큰 사건이었고 내 생각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변화의 대가가 이 정도일 필요까진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사건은 일어났고 난 나름의 무언가를 얻어갔기에 할 수 있는 차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꽤 멀리까지 걸어왔다.

 다리가 저린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랜만의 맑은 하늘 덕분인지 꽤나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다. 도시에서 보는 별들은 시골의 별보다 더 소중한 느낌을 준다.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았다.


 "나의 미래에도 저 별들처럼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거야.."

 

 알 수 없는 오한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는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

 불행한 가능성에 집중할 때 우리는 그것을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다른 가능성들이 훨씬 많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그것을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라 말할 것이다.

 

두려움은 미래의 잘못될 일들을 예측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불확실한가를 객관적으로 인식만 하고 있더라도 우리는 결코 무엇이 잘못될 것인가 예측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두려움은 끝난다.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을 때, 매일 아침마다 찍던 흉부 엑스레이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었다. 폐 쪽에 염증인지 암인지 모를 동그란 반점들이 찍혔다는 것이다. 서둘러 폐 조직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 꼬박 하루를 얼마나 많은 상상과 겁에 질려 두려움에 떨었는지 모른다. 어리석을 정도로 벌벌 떨었다.

 하지만 막상 결과가 나오고 나니 단순한 염증으로 약만 먹으면 고칠 수 있는 증상이었다. 하루를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떠올리면서 나의 소중한(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하루하루를 불확실한 두려움으로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중에 조직검사 중 생긴 기흉으로 죽을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그 후에 내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

 고통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벗어던지면 단지 아프다는 감각만이 남는다."


 사실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 뜻을 평생 이해하지 못했으면 한다. 이 말을 공감하는 사람의 눈빛을 상상하는 일은 슬프니까.

 병원에서 수많은 치료들을 받으면서 나는 본의 아니게 이 말을 몸으로 깨달았다. 수많은 고통 속에서 두려움은 점차 사그라들고 두려움을 느낄만한 체력적, 정신적 여유도 완전히 사라졌을 때, 단지 아프다는 감각만이 남았고, 통증을 훨씬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예전에 정말 아팠던 환자가 자신은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고 말한 인터뷰를 읽었다. 이 환자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공감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한 말과 같은 맥락으로, 두려움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아라!!!"라고 내 마음에게 명령하고 소리 지르면, 마법같이 고통이 사라진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통제하려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어느덧 길었던 산책도 끝나간다.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앞, 타일 공사를 끝마친 도보에 모래 알갱이들이 흩어져 있었다.

 달빛에 빛나는 모래알들이 마치 별들 위를 걷는 것 같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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