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죽는다.(3)

20대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by 김탱글통글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항상 미루며 게으르고 덤벙거리는 성격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는 나의 덜렁거리는 행동을 비꼬곤 했다. 어릴 적 나는 옷의 소매를 항상 손을 충분히 덮어버릴 정도로 늘린 후에 팔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같이 덜렁거리는 소매를 휘휘 저으며 콧물을 흘리고 다니는 아이였다.

엄마가 치킨 사왔대!!

아버지는 그런 나를 약간은 과장을 섞어가면서 놀리곤 했는데, 눈을 위로 까뒤집고 혀를 내밀면서 “에붸붸~” 라는 괴이한 신음소리를 내뱉으면서 내 행동을 따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조롱은 어린 아들을 상대로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지 않았나 싶지만 그때는 나도 아빠도 어렸을 때니까. 콧물을 흘리는 나이가 지나고 어느 정도 어른 역할을 할 나이가 되어서도 아버지는 종종 나에게 정신 차리면서 살라고 꾸중하셨다.

오늘 잘 지내던 친구가 다음날 내 목덜미를 물어뜯는 이 세상에서 그런 정신머리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 나며 설교를 늘어놓았다.

네 아버지, 죄송스럽게도 그때의 아들은 아직도 이러고 살고 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 머릿속은 항상 학진이의 방처럼 어질러져 있었다. 친구의 방에서 느낀 알 수 없는 편안함도 나의 머릿속과 그 방이 닮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나는 사색은 좋아하지만 깊이 생각하는 것은 즐기지 않는다. 부정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치밀하게 대비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

처음 암 선고를 받은 후 혼자서 약간의 눈물과 분노를 조용히 처리한 후에 친구들과 이별여행이란 이름으로 테마온천 여행을 다녀왔다.

재스민으로 우린 온천이라니, 내 생에 가장 사치스러운 기억 중 하나다.

즐거웠다.

물론 지금은 그 정도로 정신줄을 놓고 살지는 않지만서도.

사실 근본이 귀차니스트인 나는 오랫동안 슬퍼할 수 없다.

진득이 사랑할 자신도 없다.

오랜 시간 결혼 생활을 이어나갈 자신도 없다.

자식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곤란할 것 같다.

이 얼굴로 결혼과 자식을 곤란해한다는 것이 비웃음을 사기도 하겠지만, 물론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못’하는 것임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문득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 “내가 평생을 살면서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는 똥과 오줌뿐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 이렇게 처절하게 살아가는 걸까?”라는 생각을 한 후, 결혼과 자손에 관한 고민을 한 적이 있지만 역시 내 몸 하나 가누기 힘든 나에게는 아무래도 무리다.

능동적으로 생산해내는건 결국 거대한 똥뿐이야.

암 투병을 할 때에 친구들을 모아놓고 몇 번이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를 걱정해주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고맙지만, 나를 동정하는 듯한 태도는 참을 수 없어”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린다.

그리고 나도 수많은 환자들 중 하나였다.

암 같은 병으로 거들먹거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리고 암보다 더 힘든 병쯤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전신에 화상을 입은 사람도 있고 온몸의 관절이 녹슨 철심처럼 삐걱거려서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다.

암은 적어도 치료를 받고 살아날 확률이라도 있으니까. 물론 치료를 하지 못한다면 죽어야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즉시 고통스러웠던 것은 항암치료보다는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공황장애 증상이었다.

강도 높은 항암치료를 하면서 구토하는 것이 하루의 중요하면서도 가장 많이 하는 일상생활이 되어가면서 구토를 약간이나마 줄이기 위해 맥페란 주사액을 처방받았었다.

약물을 너무 맹신했던 걸까?

난생처음 받아보는 부작용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안절부절못하지 못하고 이 자리에서 당장 무엇이든지 해야만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제이슨 스타뎀처럼 간호사를 총으로 쏜 후 맨몸으로 유리창을 깨트리며 병실을 빠져나가야 할 것만 같았다.

역시 이런식으로 호쾌하게 탈출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병실의 유리는 폐쇄형의 단단한 이중 유리창이었고 유리창에 비해 나는 앙상하게 뼈만 남은 암 환자였어서 섣불리 뛰어내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제이슨처럼 몸에 박힌 유리를 툴툴 털고 일어날 만큼 건강하고 쿨하진 못하니까.

항상 병원의 폐쇄형 유리창이 답답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는 그 창문이 내 목숨을 살렸다.

요즘은 공황 장애가 너무 저 평가받는 느낌이다. 그 당시에는 이러한 증상이 공황장애인 줄 모르고 부작용을 설명하란 의사 선생님의 말에 “막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될 것 같고 당장 무엇이든 해야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를..” 과 같은 말들로 횡설수설하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그러니까 공황장애 같은 현상을 겪으셨군요.”라고 명쾌하게 정의 내려 주셨다.

그렇다. 공황장애 같은 증상이었다. 역시 배운 사람은 다르다.

이러한 공황장애를 요즘 연예인들은 너무 자주 걸리는 느낌이다. 연예인이라면 이 병을 한번쯤은 걸려야 하는 것처럼 가끔가다 보는 티브이 토크쇼의 연예인들은 하나같이 “사실 너무 불행해서 공황장애도 겪었습니다.” 라며 패널들의 동정을 받고는 한다.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한 번씩은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한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것처럼. 그들이 진정으로 공황장애였다면 그 정도로 가볍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을 텐데, 내가 알고 있는 그 병과 같은 병을 말하는 건지 의심되면서도 사실이라면 정말이지 뛰어내리지 않고 살아남은 것을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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