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암 병동에서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 한 가지는, 환자들은 자신의 불행의 크기를 측정하고 누가 더 불행한지 대결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이 더 불행하다고 확정 지어지면 마치 대결에서 승리한 것처럼 은근히 뿌듯해하는 경향도 보인다.
나 같은 경우는 사실 젊은 나이에 생존확률이 낮은 혈액암에 걸린, 그들의 불행력(?) 리그에서 본다면 꽤나 좋은 스펙의 환자였는데 어쩌다가 그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오면 그들은 “그래도 나는” “나는 심지어” 와 같은 말들을 붙여가면서 자신의 불행을 본의 아니게 비하시키는 나를 상대로 열렬히 자신의 불행한 상황을 방어하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사실 그 당시의 나는 내 병의 진행도가 어떤지, 과연 나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가끔가다 정기적으로 몰려오는 과제 같은 느낌의 불행이었다면 정작 내가 현실적으로 꾸준하게 신경 쓰며 느끼는 불행은 내가 마시는 환자용 영양제가 왜 커피맛과 바닐라 맛뿐인지, 딸기 맛이나 초콜릿 맛이 있었다면 더 괜찮았을 지도 몰라. 와 같은 그들이 보면 어처구니없는 고민들뿐이었다.
하지만 항암 치료로 입안이 갈가리 찢겨 있는 상태에서 매일같이 먹을 수 있는 것뿐이라고는 영양제뿐인 상황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들이켜야 하는 그 영양제의 맛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불행이었다.
그들의 불행한 상황에 대한 프라우드를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도 나의 고민을 이해할 수 없었을 테니 나는 그들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누구나 자신의 불행을 선택할 자유 정도는 가지고 있는 거니까.
참고로 커피 맛이 가장 먹을 만했다.
친구의 집에 짐을 다 풀어놓고 나니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최적의 게임 환경을 즐기기 위해서 신고 온 슬리퍼 사이로 찬바람이 지나다닌다.
예전에 병실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찬바람이 발을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송장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면서 간병하는 할머니에게 역정을 내고는 했는데 나는 이 기분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얼어버린 아스팔트 위를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면서 우리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내가 친구의 동네로 찾아왔으니 메뉴를 정하는 것은 집주인의 역할이다.
사실 나도 이 동네에는 지박령 못지않게 오래 살았으니까 친구가 아는 곳이 내가 아는 곳이지만, 일단은 내가 손님의 역할을 맡고 있으니까 친구가 메뉴를 고르면 내가 판단하는 역할을 은근슬쩍 가로챘다.
“돈가스? 아님 초밥? 맛있는 초밥집이 있는데 한 번 사주고 싶네”
“흠... 뭐 아무거나 상관없어”라고 말하지만 완곡한 거절이다. 나는 이런 형태의 완곡하면서 재수없는 형태의 거절을 즐긴다.
“그럼 갈치조림은 어때? 이 앞에 정말 맛있는 곳이 있는데 너도 알 거야. 내가 저번에 말한 아구찜 잘하는 곳 있잖아.”
“아.. 그 집! 거기 갈치조림도 팔아?”
“응, 정말 먹고 싶었는데 주변 친구들은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지 않더라고 그래서 손님이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보고 있어.”
안쓰럽다. 사실 그냥 먹으러 가자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장황하게 설명해 가면서 먹으러 가고 싶다고 말하는 건 왠지 짠하다.
학진이는 남의 기분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고작 갈치조림이지만, 거절한다고 해서 친구가 크게 슬퍼할 일도 아니지만 학진이게서 느낄 수 있는 짠스러운 이런 배려를 나는 정말 좋아한다.
“그래 가자. 맛있겠네.” 동의는 했지만 사실은 한두 번 정도 더 거절을 하고 싶었는데 이런 식의 배려가 들어오면 어쩔 수 없다. 진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돈에 목메는 삶이 싫다.
정확히 말하자면 돈에 목적을 두는 삶이 싫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모든 가치관과 시간을 돈에 집중하면서 목메는 모습은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직 책임질 것들이 없는 백수의 넋두리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포기해가면서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항상 없으면 좀 덜 쓰고 있을 땐 좀 더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성격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병원에서 봐온 것들이 그런 생각을 더욱더 확고하게 한 걸지도 모르겠다.
비좁은 5인실을 쓰면서도 매일 같이 병문안 오는 지인들에게 둘러싸여서 진심 어린 위로와 축복을 받는 노인과 특실에 머무르면서 전문 간병인과 호화로운 병원 생활을 하면서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서 매일같이 복도 앞 벤치에서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어버린 노인을 보면서 젊을 때 벌어놓는 돈이 과연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두 분 다 식사는 영양제로만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영양제는 환자 앞에 평등하다.
학진이와 갈치조림을 먹으면서 미국의 슈퍼볼 복권 이야기가 나왔다. 1등 당첨액이 무려 1조 8000억 원이라면서 당첨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관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친구는 재테크를 하겠다고 한다.
“너무 안정적이지 않아? 무려 1조 8000억 원이야. 세금을 떼더라도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데 고작 재테크라니... 더 모아서 어디다 쓰려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하고 웃었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고 일단 아끼고 보는 거지, 뭐에 쓸지는 천천히 생각해 보는 거지.”
“재미없구만. 어차피 상상인데 통 좀 크게 써봐.”
“넌 어떻게 사용할 건데?”
“나는 너네 집 앞 동을 다 밀어 버리고 크게 바나나 농장을 지을 생각이야.”
“가락시장 한 복판에??”
“어, 통유리로 된 거대 온실 농장을 만들어서 바나나나 키워볼 생각이야.”
“그러면 사람들이 찾아와서 돈 좀 달라고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로또에만 당첨돼도 별의별 곳에서 연락이 와서 해외로 도피한다고 하던데... ” 어이없어하던 친구가 현실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뭐 그럼 보디가드도 몇 명 고용하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돈도 많은데”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쓰다가는 1조 도 금방 다 쓸걸? 온실농장 유지하는 게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데”
“뭐 그럼 그 땅 다시 팔고 게임이나 하지 뭐”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어차피 공짜로 생긴 돈, 송파구 한복판에 바나나 농장 한번 지어보는 게 뭔 대수인가 싶었다. 어차피 상상이고 그 많은 돈 다 쓸 만큼 활력 넘치는 삶도 아닌 것을.
싱거운 대화를 마치고 나와 학진이는 결국 그 1조 8000억 원을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인지 결론짓지 못한 체, 악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 피시방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슈퍼볼 당첨자가 나왔다는 기사를 읽었고 가락시장에 큰 바나나 농장을 설립하겠다는 나의 꿈도 기약 없이 미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