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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Jun 13. 2016

좋은 대화

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아닌데? 무슨 말을 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데??"


앞니까지 올라온 말을 어금니로 질겅거리면서 억지로 다시 삼켰다.


 




 오늘은 너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바깥의 날씨는 더 없이 맑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왔었는데..

 슬슬 끝나가는 여름이 서럽다는 듯, 온 세상이 먹구름을 잔뜩 구기며 울고 있던 것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비가 온 뒤의 날씨는 언제나 거짓말같이 화창하다.


 지금 나의 고통스러운 시간도 그저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 마냥 맑아졌으면..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애벌레 허물처럼 벗어놓은 옷을 대충 털어 챙겨 입고서 거울로 한번 쓱 훑어보았다. 약물로 빠져버린 머리가 반질반질하다.

 '머리에도 로션을 발라주어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가 이런 고민이 어쩐지 멋쩍 한번 피식 웃고서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집 밖으로 나갔다.


 사실 그녀와 언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걸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녀의 메시지에는 꾹꾹 눌러 담은 서운함이 가득했고, 나는 그런 감정을 눈치 못 챌 만큼 둔한 사람은 아니니까.


 그러면서도 '어쩌면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걸 수도 있어'

 '내가 항암약물을 많이 맞아서 과민 반응하고 있는 걸 지도 몰라' 따위의 어처구니없는 생각들로 불안함을 애써 떨쳐내려 한 것은, 내가 그만큼 사람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역시나 심술이 잔뜩 끼어있다. 어제의 먹구름을 그녀가 다 들이 마신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중충한 얼굴의 표정이 날 벌써부터 무기력하게 한다.


 불안한 예감은 항상 빗나가지 않는다.


 나는 한 여름에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핫초코를 시키고서 아직도 어떤 용도로 쓰는지 모르겠는 플라스틱 막대로 음료를 휘휘 젓고 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도톰한 입술을 앙 다물어 얇게 만들고서는 나를 쏘아본다.




 나에게 화를 내는 여자들은 항상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나는 그 행동이 웅크리고 있으니까 어서 와서 나를 안아 달라는 뜻인지, 아니면 교차된 팔의 틈만큼도 너에게 마음을 주지 않겠다는 표현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팔짱을 낀 여자들이 나에게 호의적이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어떤 잘못을 했다는 것뿐.


 불편한 침묵을 깨는 건 언제나 상대방이다. 나는 불편한 고요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니까.


"야!"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처럼 시작된 그녀의 분노와 비난, 조롱, 떠보기와 서러움들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결국 요약해보면


1.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것


2. 자기도 다른 연인들처럼 놀러 다니고 싶다는 것


3. 우리의 미래가 너무 불안하다는 것


 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대답했다.

 나는 정말 사력을 다해서 기운이 날 때마다 연락을 하고 있고, 만약 하루를 놀러 갔다 오면 일주일을 고생, 최악의 상황에는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의 입장으로서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미래는 지금 걱정한다고 해서 당장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까 당장 현재에 집중하자고.


 마치  대화로 테니스를 치는 것처럼, 둘 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렐리를 이어나간다. 공을 따라 눈알을 좌우로 굴리는 카페 안의 관람객들에게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다.

 나는 그녀가 나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 내가 잘 설명하기만 하면 그녀도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고서 열심히 되받아 쳤다.





"아니!!! 네가 이해가 안 되나 본데!!"


 그녀가 분에 못 이겨 소리를 빽 하고 질렀다.

 카페는 순간 조용해졌다.


 그때 알게 됐다.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녀의 말을 다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이해한다.

 단지, 서로 동의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녀가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내 의견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물론 우리가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못하고 있다는 뜻도 아니다.

 우린 효과적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단지 동의하지 않을 뿐.



 우리는 자주, 대화한다는 것, '좋은 대화'라는 것을 상대방의 동의를 받아내는 것으로 착각한다.


"어휴..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설득하면서 자주 쓰는 후렴구지만 사실 상대방은 알고 있다. 아니, 어쩌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슬프면서도 단순한 사실은 그들은 그저 당신의 의견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것.


가장 본질적이고 지독한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이해한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물론 나의 잘못도 아니다.

 각자의 상황에서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다. 딱 그만큼의 사랑일 뿐이다.



 "암환자가 무슨 사랑이야.."


 한 입도 마시지 않은 다 식어버린 코코아를 일회용 스틱으로 휘휘 저으면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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