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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Jul 21. 2016

내성적인 사람

 차로 마지막 친구를 내려주러 가는 중에 친구가 커피 한잔이라도 마시면서 집에 가라고 한다.

 친구의 집에서 나의 집까지는 차로 대충 40분 정도의 거리.

 늦은 저녁에 카페인이 들어가는 것이 싫기도 하고, 커피를 사러 가는 것도 귀찮아서 어물쩡하게 넘어가려 했다.


 


 그러자 친구는 차 밖의 풍경을 초점 없이 바라보면서 무심하게 말했다.


"네가 죽는 건 아무래도 괜찮은데, 졸음운전으로 다른 사람이 피해 보면 안 되잖아.."


"아..."


 수긍해버리고 말았다.


 딱히 죽음에 대한 미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죽는 순간은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 화장실에 붙어있는 문구처럼 자고로 아름다운 사람은 떠나간 자리도 아름다워야 하니까.


 졸음운전으로 죽는 건, 화장실을 지저분하게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민폐다.

 인터넷 뉴스에도 수백 개의 악플이 달리겠지..


 친구는 무심한 듯 나의 아름다운 죽음을 신경 써 주는 것일까.

 참 좋은 친구라고... 믿고 싶다.



 결국 전투적으로 아이스 라떼를 빨아가며 운전했고 안전하게 집에 도착했다.


 별로 지는 않았다.

 이제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하게 흥분되기도 했다. 친구들과의 만남이 지겨웠다거나 싫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거우니까.

 그저 나에게 사람과의 만남은 막노동과 비슷한 강도로 체력과 감정을 소모하는 일일 뿐이다.

 게다가 오늘은 친구의 여자친구를 소개받는 자리이기도 했고.



 일주일 전에 친구에 전화가 왔었다.


"내 생일에 여자친구랑 같이 만나도 될까?"


 생일파티에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든, 알래스카에 사는 김상덕 씨를 초대하든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틱틱거렸지만 사, 날 배려하는 질문이란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어색해한다. 사람이 많은 자리도 좋아하지 않으며, 얇고 넓은 만남보다는 좁고 깊은 만남을 극도로 선호한다.


 어쩐지 아프고 난 후에 좀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정신병이 있는 사회 부적응자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회생활이나 접대를 못하는 건 아니다.

 나름의 가면을 쓰고 친절하게 웃으면서 분위기를 맞춰줄 수는 있다.

 다만, 나를 너무 오래 알아온 친구들이어서 낯선 사람 앞에서 불편해하는 모습과 애처롭게 안간힘을 써 가며 미소 짓는 표정을 단번에 눈치채버고는 본인들이 더 불편해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마치 고양이가 고양이로, 참새가 참새로 태어나 버린 것처럼, 나도 타고나기를 이렇게 태어나 버렸으니까.

외로움을 많이 타지만 혼자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하다.





 그에 비해, 여자 친구를 데려 오기로 한 이 친구는 선천적으로 사교성이 뛰어난 사람이다. 자석처럼 인간들이 들러붙는다.

 예전에는 그런 성격이 부러워서 몇 년을 악착같이 붙어 다니 이것저것 따라도 해보고 분석도 해보았지만 결국은 이 꼴이다.

 친구가 입은 옷은 화려하지만 역시 나에게는 아무래도 불편하다. 가끔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본인의 생일파티에 나를 생각해주는 친구의 넘치는 배려가 어쩐지 부끄러워서 대충 그러라고 한 뒤, 황급히 말을 돌렸다.


"여자친구의 어떤 점이 좋아서 만나는 거야?"


"음... 착해. 곰 같은 여자야."


 문득 예전에 본 곰에 관한 다큐가 떠올랐다. 곰은 평균 48km의 속력으로 달리며 약 팔백만 파스칼의 악력으로 볼링공 정도는 가볍게 박살 낸다고 했다.



곰이 자웅을 겨루는 모습



 그때부터 곰 같은 여자는 어쩐지 무서워졌다.


 하지만 친구에게 다큐에 관한 내용을 말하지는 않았다.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이기도 하고 '곰돌이 푸' 정도의 귀여운 곰을 생각하며 말했을 터인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나도 이제 어른이다.

 상황에 따라서 해야 할 말과 속으로 삼킬 때의 구분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친구의 생일 모임날 여자친구도 함께 소개받기로 하고 몇 마디 더 주고받다가 전화를 끊었다.

 친구는 약간 기뻐하는 듯했다.

 어쩐지 미안해졌다.

 

 모임에서, 자연스러운 모습과 부드러운 눈빛으로 상대방과 분위기를 편하게 이끌어가는 젠틀맨이 되리라 다짐했다.


상상했던 이미지


 그리고 일주일 후인 오늘, 참치집에서 처음 만난 그분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분이었다.

 친구의 말마따나 곰 같이 착해 보였고 부드러운 눈매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분위기에 부드럽게 뒤섞이면서 대화하는 모습이 진정한 어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눈앞의 다 마셔버린 아이스라떼를 힘차게 빨아들일 적의 소리처럼 처절하게, 아니 처량하게 노력했다.

 센스 꾸러기가 되겠다는 굳센 다짐은 박살 났다. 실례되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횡설수설했던것 같다.


 나는 애초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궁금한 점이 없다. 그 사람의 취미, 특기, 직업, 좋아하는 음식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억지로 말을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반 패닉 상태로 몰고 가는 듯하다.


 방의 침대에 몸을 던지면서 문득, 분위기를 띄우겠답시고 "물리치료가 왜 물리치료인 줄 아세요? 병을 물리치료구요.." 같은 농담을 했던 것이 억난다.


병을 물리치료구..


"아아... 미친...."



 탄식이 터져나온다. 내가 밉다..






 그 후, 한참 동안 멍하니 누워있었다.

 다음날 아침까지 아무런 일정도 남아있지 않다는 안도감정말 다.


'이런 성격이면 사랑받지 못하는데..'


양말을 벗어서 고이 접고, 옷걸이 아래에 내려놓으며 고민했다.


'결혼도 못하고 늙어 죽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점점 '누군가의 뭔가'가 되는 것이 불편해지고 있으니까.


인간관계란 것은 언제나 혼란스럽고 사람들은 마음을 다친다.


외롭기는 하지만 단순히 이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만남은 예의가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무례한 것이고 나도 감당해낼 자신도 없고.


친구들은 가끔씩 노력해보라며 재촉하곤 한다.

사람들도 만나고, 소개팅도 해보기를 권하면서.


주변 사람은 어쩌면 이 삶을 불행하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저 외로움이 주는 이 차분한 평화를 즐길 뿐인데..


시끄러운 세상과, 정신없이 몰아치는 인생 속에서 내성적인 성격과 외로움이 주는 휴식시간은 너무 달콤하기만 하다.


'병실에서 몇 년간을 부대끼며 살아왔잖아..'


잘 준비를 마치고 베개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생각했다. 앞으로 몇 년간은 쭉 내성적으로 살아갈 것도 나쁘지 않은 듯싶었다.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났고, 어색한 인간관계에 치인 하루였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하루. 

 오늘은 어쩐지 푹 잘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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