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탱글통글 Jul 26. 2016

소소한 일기(1)

7월달

1. 살을 빼야겠다는 다짐을(4년째) 해서 집 앞의 호수로 산책을 하러 가고는 합니다. 호수로 가는 길에는 족발집이 있는데요. 족발 냄새를 가까스로 견디고 지나가면 곧바로 정육식당이 나옵니다.

도톰한 삼겹살이 익어가면서 나오는 기름으로 김치가 구워지는 냄새.. 상추와 깻잎에 잘 익은  고기, 구운 김치를 한 점씩 올리고 마늘 한편과 쌈장을 듬뿍 올려서 싸 먹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면 산책하는 동안 기분이 아주 좋아집니다.. 네... 좋아집니다...






2. 새벽에 허기짐을 달래려고 편의점을 갔습니다. 삼각김밥 코너에는 참치마요와 볶음김치가 한 세트로 묶여있고 제육볶음이 단품으로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참치마요가 먹고 싶었지만 볶음김치는 습니다. 더러운 자본주의 놈들.. 부들부들.... 결국 10분 정도 고민하다가 불고기버거를 사들고 나왔습니다.




3. 제가 고등학교 시절 학교 매점에서는 1000원짜리 햄버거를 팔았습니다. 피클과 머스터드를 버무린 샐러드와 제법 고기 맛이 나는 페티가 조화로워서 인기가 많았는데요. 어느 날 햄버거 페티가 닭 머리까지 통째로 갈아서 만든 것이라는 괴담(사실일 수도 있습니다)이 돈 후부터 인기가 많이 사그라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생선도 어두일미라는데 닭 머리가 들어가 있으면 이득 아니냐?'라는 미친 소리를 하며 자주 사 먹고 다녔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 정도로 생각 없이 살지 않습니다.




4. 오늘 마신 요구르트 병에는 '유산균 다량 함유'라는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병 가득 적혀있는 유산균들의 효능을 읽으면서 "아아... 내가 이 아이들을 마시지 않았다면 이 친구들은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여 가는 과정이네요.




5. 7월 22일 저녁 7시 3분에 올해 첫 매미 소리를 들었습니다. 계속 더웠지만, 이제야 진정한 여름이 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제가 어렸을 적 매미는 "맴맴"하고 울었는데, 지금은 "스피오 스피오 씌~~야!!!! 븰븰븰븰븰 츄올스 츄오올스 츄오올스 취르븰! 스피오~ 스피오~" 하고 웁니다.

맴맴으로 듣기에는 제가 너무 커버린걸까요?




6. 길을 걷다 보면 종종 여중생 무리들을 봅니다. 그녀들은 3명이던 5명이던 항상 원을 그리고 모여서는 서로의 화장을 체크해주고, 머릿결을 쓰다듬어 정리해 줍니다. 마치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이를 잡아주는 원숭이 무리 같아서 귀엽다고 생각했습니다.




7. 얼굴도 가물거리는 카톡 친구가 너무 많아, 하루 날 잡고 카톡 정리를 했습니다. 기준은 '핏줄을 제외한 지금 당장 연락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쉴 틈 없이 지워나갔고 결국 73명의 친구들이 남았습니다. 20명 정도 예상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놀랐습니다. 얼마 전에 내성적이라느니, 외로움이 주는 편안함이 어쩌니 씨부리는 글을 썼는데.. 어쩐지 죄송해졌습니다.




8. 영화에 나올법한 멋진 대사 한마디를 폼나게 해보는 것이 꿈 중 하나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골목길 계단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는 쥐를 한 마리 보았고, 쥐는 털 하나 없는 매끄러운 꼬리를 살랑거리며 재빠르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벌벌 떨면서  "우... 우우... 저리 가!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마!!"라는 3류 악역 같은 대사를 내뱉었습니다.

이런 영화 대사를 원한 건 아니었는데...



이거 방탄유리야!!



9. 병원에서 저는 아프면 웃는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저도 이유는 몰랐지만 우는 것 보다야 좋으니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케모포트를 심을 때도 쉴 틈 없이 킥킥거렸고, 두꺼운 주삿바늘을 교체할 때도 항상 웃었습니다. 폐에 꽂힌 튜브관을 제거하러 온 의사가 저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며 인사하기도 했었죠. 물론 그때도 미친 듯이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라도, 퇴원하는 날 간호사분께서 반짝이는 미소와 함께 "헤어지려니까 아쉬워요.. 다음에 또 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할 때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10. 며칠 전, 강렬한 기쁨을 표현할 때와 극심한 슬픔의 표정은 구분할 수 없다는 연구결과를 읽었습니다. 병원에서의 저는, 사실 울고 싶었던 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탱글통글입니다. 새로운 형식으로 뵙습니다. 소소한 일기 시리즈는 투병 중에 저의 생사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페이스북에 글을 쓰면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쓰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그 당시에는 주로 투병 이야기나, 사실 대머리가 되어서 기쁘다고 우기는 글들이 다수였는데..

 이런 글들은 주로 그때그때 메모장에 모아두었다가 올리거나 수필의 주제로 뽑아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류의 글을 쓰는 걸 제가 너무 좋아합니다. 행복해요..ㅎㅎ

그래도 눈치껏 좋아하시는 것 같으면 가끔씩 올리고, 싫어하시는 것 같으면 자제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전인류애적인 느낌으로요(feat. EL님)

매거진의 이전글 내성적인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