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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Aug 03. 2016

말을 조심해서 생기는 사고는 없다

제2 롯데 건설현장 체험일기(1)

 겨울, 제 2 롯데월드 건설현장에 막노동을 하러 다닌 적이 있다. 당시의 나는 반복되는 수술과 실패로 지쳐있었고 생각이 너무 많았다.

몸을 쓰면서 생각을 멈추고 싶어, 약간은 충동적으로 시작했다. 게다가 돈도 주니까.


 안전교육 자격증을 수료하고 인력사무소를 통해 팀을 소개받았다. 팀장은 딱 봐도 아파 보이는 내 얼굴을 보고 걱정하는 듯했지만, 자아를 찾아 헤매는 소시민적 애환이 담긴 눈빛으로 보호본능을 어필하자 이내 어쩔 수 없이 수락하고 말았다. 물론 다음날 당장 현장에 나가야 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안녕하세오. 일이가 하고 시퍼요.



 다음날 새벽 6시에 잠실역 7번 출구 앞에서 팀장님과 숙련공 아저씨 그리고 나를 포함한 두 명의 사이드킥으로 구성된 팀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팀장과, 숙련공은 다른 친구와 팀을 이루었다.

 숙련공 아저씨는 성격이 괴팍하고 입이 거칠었지만, 일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 타입. 덕분에 그의 조수였던 친구는 항상 죽을상을 지으며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일과는 기대했던 만큼 힘들고 단순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제2 롯데월드까지 걸어간다. 헬멧과 안전 기어를 착용하고 6층 플로어에 인부 모두가 모여서 아침체조를 하고 안전구호를 외쳤다. 그 후 총괄 작업반장님 주위로 모여 약간의 회의를 한 뒤,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전기 케이블 보조 역할 이었는데, 주로 공구를 나르거나 옆에 붙어 무거운 걸 들거나 옮기는 일이었다.

 점심은 주로 혼자 먹었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봐도 당시의 나는 굉장히 사연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기 때문에 마치 톱스타가 된 듯 주변의 시선이 쏠렸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치면 휴게실에서 1시간 정도 잠을 자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약간 즐거웠고, 살짝 서글펐다.




낮잠의 즐거움을 처음 알았다.




 총괄 작업반장님과 팀장님은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얼마 전까지 암환자였던 청년이 상처투성이의 얼굴로 노동을 한다고 하니까 아마도 집이 블록버스터 급으로 가난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매일같이 따로 불러내 점심을 거르는 대신 매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오천 원어치 포인트를 쓰게 하셨다.

 그분들의 어쩐지 복잡 미묘하고 촉촉한 눈빛에 압도되어서, 사실 올림픽공원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86평 주상복합에서 살고 있다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집에는 과자가 풍년이었고 어머니가 좋아하셨다.





 그러던 5일째 저녁 조회시간에 숙련공 아저씨가 느닷없이 조수를 바꾸자는 제안을 건넸다. 비실비실하고 말을 못 알아먹어서 같이 일하기 힘들다면서.

 면전에서 그런 말을 하는 패기가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말은 드랍 커피와 같아, 언제나 필터링이 필요하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별 의미 없이 말했어' 라며 뻔뻔하게 변명하는 것만큼 무책임한 일도 없다.


말은 항상 의미를 담아 말해야 한다. 생각 없이 말한 것 자체가 잘못이니까.


 반장님이 조심스레 의사를 물었고, 나는 딱히 타인의 무례함에 상처받는 타입이 아니라서 알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조수였던 친구가 너무 힘들어하기도 했고.



교체가 결정되자 아저씨는 손가락을 까닥이며 말했다. "공구함 8층 전기실에 미리 가져다 놔"



"네. 근데 제가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해요?"



"맘대로 불러 인마, 그런 것까지 내가 말해줘야 해?"



"음.. 오빠?"

 아저씨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뭐 이런 미친놈이 있냐는 눈빛으로 날 쏘아보았다.





"반장님이라고 불러" 반장님은 급하게 짐을 챙기고서 먼저 퇴근하셨다.



맘대로 부르라면서...




 짧았던 대학과 군대생활에서 배운 점은, 만약 조직생활을 할 때 특출 난 재능이 없다면 눈치 빠르게라도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딱히 작업기술이 없는 나는, 매일 아침 먼저 믹스커피를 타 놓고 공구함은 작업장에 미리미리 챙겨두었다. 일 하는 패턴을 잘 지켜보다가 말하기 전에 먼저 도구를 건넸다. 작업장 아저씨들은 믹스커피를 신속하게 대령하는 것에 썩 만족하는 듯했다. 사회생활을 잘 할 것 같다는 말을 커피를 드리는 거의 모든 인부들에게 들었다.

 조수 친구들은 이 새끼 나중에 직장 들어가면 상사 X꼬 빨아재낄놈이라면서 놀렸다. 나는 도덕 범위 안에서 누군가를 빨아 인생이 부드럽게 흘러갈 수 있다면 세계 최강 성능의 비데가 되어주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나도 반장과의 작업은 확실히 까다로웠다. 어느 날 작업 도중, 반장은 날 보지도 않은 체 손을 쭉 뻗으며 말했다.



"앙카"   



"앙카요?"  무슨 잉카문명의 유물 같은 건가 싶어서 공구함을 뒤적였다.



"넌 대학 나온 놈이 그것도 몰라?" 반장은 신경질적으로 앙카를 찾아 낚아채면서 물었다.



잠깐 동안 대학에서 앙카를 가르쳐주는 과목이 있었던가 고민했다.



"저 대학 안 나왔어요. 퇴학당해서 고졸이에요. 흐흐흐" 혼자 웃었다. 나는 이런 자학개그를 좋아한다.



"뭔 사고를 쳤길래 퇴학이야?"



"휴학은 5년밖에 못하는데 병이 치료가 안 끝나서 복학 못하고 퇴학당했어요"



반장은 대답이 없었고 내 머리는 어쩐지 다시 복잡해졌다.




 난 항상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하루의 일들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나도 글을 써볼까?'라는 생각을 했던 때였고, 마침 일상을 글로 기록하면 좋다는 조언을 읽었다. 글을 쓰다 보면 언제나 생각이 정리되고, 즐거웠다.

 물론 기록이라고 해봤자

 '오늘도 역시 반장님은 최고 재수 없었다. 역대급이야 라고 어제 생각했는데 오늘 새롭게 경신했다. 어찌 보면 대단한 사람..' 이거나, 혹은

 '반찬으로 나온 홍어무침에 홍어인 줄 알고 씹었는데 3 연속 무말랭이였다. 되는 일이 없네.' 따위의 것들이었지만.



"넌 뭘 그렇게 맨날 쓰고 있냐?" 어느 날 반장님이 시비조로 물었다.



"그냥 이것저것 쓰고 있어요. 나중에 소설이 쓰고 싶어서요" 공사장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김반장 성격 : 지랄 맞음' 이란 설정이 마음에 걸렸으니까.



"소설은 아무나 쓰는 줄 알아?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몸 쓰면서 정직하게 먹고살아야 해."



'우리' 라니.. 묘한 소속감에 어쩐지 코끝이 찡해졌다.  



"왜요? 글을 꼭 정식으로 배운 사람만 쓰나.. 일기 쓰듯이 쓸 수도 있죠. 제가 좋아하는 엘리스 먼로라는 위대한 작가는"



"망치 어따뒀냐?" 말을 끊는 반장님에게 케이블선 뒤의 망치를 건네며 물었다.



"그럼 만약 나중에 제가 글 쓸 일이 있으면 반장님 이야기 써도 돼요?"



"그러던가. 읽어줄 사람 있나 걱정부터 해라. 그만 떠들고 6층 가서 와이어랑 못 5개 가져와"  반장님은 마치 귀찮은 파리를 쫓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2편 '어떤 이가 슬플 때, 누군가는 웃는다'로 이어집니다. 이 글은 제 첫 분량 실패 글이네요. 저에게 의미 있는 글입니다. ㅎㅎ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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