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탱글통글 Aug 09. 2016

어떤 이가 슬플 때, 누군가는 웃는다

제2 롯데 건설현장 체험일기(2)

 작업장의 반장님은 항상 열심히 일했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 쉬면서 할 법도 한데 매일 최선을 다해서 움직이셨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어깨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서도 쉴 새 없이 공구질을 하는 반장님의 등은 어쩐지 아버지를 닮았다.

 그래서 괜스레 짜증이 치밀었다.



"어우 힘들어, 전 좀 쉴래요" 바닥에 주저앉아, 가지고 온 얼음물을 들이켰다.



"젊은 놈이 이런 거 하나 못해서 어떡해"



"흥..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거 자식분들 알랑가 몰라." 심술이 나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알아봐 주길 바라고 일해? 돈 벌려고 일하는 거지"



"저도 병원비로 억대나 깨뜨렸으면서 아버지 사업은 관심도 없는 호로새끼에요. 자식 놈 고생해서 키워봤자 하나도 소용없다니까"


 점점 반장님을 따라 말에 필터링이 안 되어간다. 이건 큰일인데..



"아이씨 이거 콘크리트 다시 메꿔서 해야겠다" 반장님도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러고서는 왜 가져왔냐며 잔소리한 얼음물을 반 이상 벌컥거리며 들이키신다. 얄미워.



"고등학생 때 제가 말썽 부리면 어머니는 항상, 너랑 꼭 닮은 새끼 낳아봐야 돼!!!! 하셨거든요" 반장님은 리얼한 묘사에 피식 웃으셨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소름 끼쳐요. 나 닮은 자식이라니... 끔찍해.. 그게 아들한테 할 말인가요?"



"우리 딸이 너 같은 줄 알아?"


 그 후 20분 정도 대학생인 딸 자랑을 들었다. 남의 자식 자랑이라 구체적으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렇게 이쁘면 좀 소개해달라고 농담했을 때 정색하신 건 기억난다. 

그 표정에 조금 상처받았다.




 그날은 싸락눈이 내렸다.

 항상 붉은 잠바를 입는 작업장 선배를 찾아가 눈 구경을 가자고 했고, 형은 나이가 몇인데 눈 구경이냐비웃었다.

 


제일 신나 했다.





 암병동에는 싸락눈처럼 눈물을 흘리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병간호를 하다가 이따금 새벽, 복도에 앉아 소리 없이 몰래 눈물을 훔쳤다.

 떨어지자마자 사라지는 싸락눈을 보면 그분의 눈물이 떠오르곤 한다.

 


"태균아" 



"네 형.." 목소리에 감수성을 감추지 못한 체 대답했다.



"형님이 봉급 받으면 술 한턱 쏠게.. 룸 잡고 질펀하게 놀아보자.."



"아... 형... 저 지금 마음이 촉촉한 상태니까 그러지 마세요.."



 형은 킥킥거리며 작업장으로 올라갔다.



 결국 목표했던 보관함 설치를 마치지 못 하루.

 반장님은 살짝 투덜거렸고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서둘러 퇴근했다.


 이 일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간다.

 생각 없이 힘만 쓰면 되고, 밥도 잘 주니까 영어 과외를 하던 때보다 훨씬 보람차다. 어쩌면 적성을 찾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엇보 정말 '노동'을 해서 '돈을 번다'는 느낌이 좋다.


  



 10일 차, 아침 조회가 끝나고 작업반장님은 잠시 나를 빌려간다고 하셨다. 그러고서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면서 공사현장을 견학시켜 주셨다.

 

 콘서트홀 천장 작업장은 좀 많이 아찔했다. 고소공포증이 심해서 병원 에스컬레이터도 발 뒤꿈치에 힘을 꽉 쥔 체 타는 나로서는 얽기 설기 철판들로 쌓아 올려,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작업장은 너무 힘들었다.

빌빌 거리는 꼴이 우스웠는지 주변의 인부 아저씨들이 웃었다. 으으.. 무서워..


 견학 후 작업반장님은 여분의 회사용 작업 잠바를 주시면서, 이 바닥도 요즘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여기만큼 일한대로 벌어가는 직업도 없다고, 유심히 지켜봤는데 빠릿빠릿하고 똘똘해서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거라 하셨다.

 

 한 달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이번에도 촉촉한 눈빛에 압도당해서 고백할 수 없었다.

 



견학을 마치고 작업할 전기실에 들어가니, 반장님 혼자서 갓 꺼낸 만두처럼 김을 내뿜으며 공구질을 하고 계셨다.



 "좀 기다리시죠.." 급하게 바닥의 먼지들을 쓸며 말했다.



"됐어. 별로 하지도 못했어"


어쩐지 가슴이 찡했다. 이것이 바로 미운 정이란 걸까?

 점심까줄곳, 어두운 전기실에 앉아 말없이 일에만 몰두했다.





 점심으로는 육개장과 수육이 나왔

 '그래, 수육은 삶은 고기니까 살 안 쪄' 라며 세 접 처먹다.

 터질듯한 배를 쓰다듬으며 작업장으로 올라가는데 안전요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찮게 분주하다. 갑자기 인부들을 통제하더니 지하 1층의 담배 피우는 곳으로 모 대기를 시켰다. 5열 종대로 줄을 세워 인원수까지 체크를 하는 모양이 큰일이나도 났구나 싶었다.


'뭐지.. 자제가 도난당했나? 아니면 부실공사로 어디가 무너지기라도 했나?' 온갖 추측을 다 했지만 어찌 됐든, 일을 땡땡이치고 있어서 행복했다. 



"자! 주목해주세요!"



검은 양복을 입은 높아 보이는 사람이 큰 목소리로 외쳤고 순간,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인부 한 명이 추락사해서 오늘 작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 사람이 죽었구' 



정장 차림의 아저씨는 

"아마 장기간 작업 중단이 이어질 것 같으니 각 팀장님들은 회의실로 모여주세요"라고 말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마치 폭우로 댐이 터지듯 여기저기서 시끌벅적 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듯했다.  '63세의 노인이고 원래 나이 때문에 들어올 수 없지만 집 사정을 생각해서 눈감아 주었다' '안전고리를 연결하지 않고 작업을 했다' '그래서 아마 처리과정이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따위의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사람이 죽었구나.. 가족들은 어쩌나.. 아팠겠?'



30분 정도 후에 각 파트의 팀장님이 돌아오셨조원들 그룹별로 모였다.



"아.. 들은 대로 인부가 추락사해서 아마 몇 달 동안 공사가 중단될 것 같" 



"일 탄력 받아가고 있었는데 나원참.." 반장님은 허탈해했다.



"돈 벌어야 되는데 큰일이네요" 돈을 모아 뉴질랜드로 워홀을 떠나겠다던 조수도 옆에서 실실 웃으며 한마디 거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어쩐지 발잔등에 바퀴벌레가 바스락 거리는 것 같이 불편해져서, 그저 조용히 발 밑 작업화만 응시했다.



"자 그럼 봉급 문제는 결정되는 대로 연락할 테니까 이만 해산합시다"



팀장님의 말을 마지막으로 팀은 뿔뿔이 흩어졌다.

장비와 출입카드를 정리 반납했고, 그 사이 다른 팀들도 이야기가 얼추 끝난 듯했다.

여기저기서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저녁에 술이나 마시러 가자! 좋은 곳 알아" 붉은 잠바 형의 쾌활한 목소리.



"에라 모르겠다. 난 여자 친구나 만나러 가련다!" 누군가의 웃음.



 어떤 이가 세상에서 허무하게 사라졌지만, 군가는 웃고 있다.

 발잔등의 바퀴벌레는 어느새 종아리를 타고 스멀스멀 등줄기까지 올라와 나를 괴롭힌다.  



"이게 뭐야..."


 가래침을 삼키듯 웅얼거리며 짐을 챙겼다.

 

 '오랜 병원생활로 나만 유독 이런건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나도 그들처럼 웃게 될지도 몰라'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등줄기가 불쾌하게 가려웠다.


막노동 체험은 끝이 났고, 그날 마음속에 하루종일 싸락눈이 내렸다.







http://imnews.imbc.com/replay/2014/nw1800/article/3572833_18437.html

매거진의 이전글 말을 조심해서 생기는 사고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