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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Aug 24. 2016

무균실

가벼운 마음으로 써보는 무거운 이야기

 

누구나 아프고 힘든 순간은 있다.


 어디서 읽은 바로는,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건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얼굴을 때리는 바람을 느끼듯, 삶의 역풍을 맞는 것도 그만큼 전진하고 있는 증거라고.


 하지만 아무리 그 조혈모 이식을 위한 무균실에서의 기간은 '와... 나 혹시 자전거가 아니라 오토바이로 잘못 탄 건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 정도의 강한 역풍이었다.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한 달 정도 무균실에 갇혀 고용량의 항암제를 다량 투여해 암을 비롯한 온몸의 활동 세포들을 전멸시킨다. 그 후 미리 뽑아두었던 깨끗한 조혈모세포를 이식해서 배양시고 재발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꽤나 원초적이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어쩐지 호쾌한 느낌마저 든달까.



 물론 효과에 비례하게 삶에 대한 의지도 오락가락할 정도로 고통스럽기는 했다.


 모르핀에 취해서 잠들 때마다 '제발 지금 눈을 감으면 영원히 떠나갈 수 있기를.. ' 기도하며 잠들었 몇 시간 후, 어김없이 깨어나면 '그래, 지금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안도하기의 반복.


 신님도 갈팡질팡, 참 짜증 나셨겠지 싶다.

 죄송합니다.




 하루의 일과는 단순했다. 약을 맞고, 토하다가 검진을 받고 토하다 약을 맞고 잠들기의 반복.




 교수님은 하루에 한 번, 창 밖에서 환자들을 살펴보고 가셨는데 항상 유리창문 밖에서 내부로 연결된 전화기를 통해 몇 가지 형식적인 질문을 하시고는 "음..."하시며 턱을 몇 번 문지르고 빠르게 사라지셨다.

 어쩐지 그럴 때마다 선택받지 못한 플라스틱 상자 안 불량 장난감이 된 것만 같았다.




 음식을 도저히 삼키질 못해서, 영양제와 수액을 튜브를 통해 혈관 주입하는 걸로 식사를 대신했다.

 만약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다면 내 마지막 식사는 맛도 모르는 영양제였을 것이다. 그건 어쩐지 좀 초라하다.

 감성적이지 않달까.



피부색은 돌아왔지만 가슴은 여전히 상처투성이. 어쩐지 사연있어 보이는 남자의 이미지를 제공(본인생각)




 '마지막을 장식할 식사로 어떤 음식이 적합할까?' 거침없이 들어가는 아이보리색의 영양제를 보며 상상해본다.

 

 몇 시간을 치열하게 고 보았지만, 결국 즐겨먹던 간장계란밥과 열무김치를 마지막 접시로 고를 것 같다.

 많은 추억들이 떠오르는 접시니까 감성적으로 마무리하기에 어울린다. 엉엉 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무 초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정말 먹어보고 싶었던 요리들은 상상 속에 남겨두고 싶다.

 들어보지도 못한 고급진 산해진미는 어색할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사랑해. 난 진심이야. 넌 어때?

 


 식품 포장지의 '제품은 사진 속 이미지와 다를 수 있습니다' 문구처럼, 상상 속에 빛나던 모든 것들은 항상 현실에서는 약간의 씁쓸함을 남겼다. 


 항상 그래 왔다. 

어릴 적 tv속의 고질라 장난감이 그랬고, 새벽 2시의 치킨도, 첫사랑도, 나의 20대도 마찬가지로.


 그런 식의 괴리를 한 살 한 살 겪으면서, 어느덧 선물을 뜯을 때의 두근거림보다는 실망했을 때 지어야 할 어색한 미소를 먼저 걱정하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역시, 죽기 전 마지막 식사에서까지 어정쩡한 미소를 짓고 싶지는 않으니..






'참 의미 없는 고민을 치열하게 하는구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무균실에서는 공상과 잡념이 최고의 장난감이고 진통제였다.

식사(?)와 진료 외의 시간은 대부분 침대에 누워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잠깐 머리가 어지럽지 않은 순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이런저런 글들을 읽으며 상상력 재료들을 충전하며 보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여러 이미지들을 따라 그려보았다




그러다 하루는, 삶이 마라톤이라는 비유를 읽었다.


'아... 마라톤 주최 아구창을 날려버리고 싶다... 쓸데없이 사람 고생시키고 말이야' 이 상황이 마치 주최자의 책임이라는 듯 웅얼거렸다.



 하지만 사실 아무도 강요한 적은 없다, 그런데 난 왠지 모르게 당연하다는 듯 달려왔.


왜 그랬을까...?


사실은 아직도 모르겠.

지금도 찾아가는 중이니까.

그래도 쉽게 기권할 수는 없는 레이스인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


 매번 잠이 들 때마다 '아.. 더 이상은 무리야.. 오늘은 영락없이 죽겠구만'하고 생각해도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눈을 떴다.


 뉴스에서는 나보다 가치 있어 보이는 수많은, 소중한 생명들이 비참할 정도로 어이없게 사라져 가던데.. 목숨이란 건 의외의 포인트에서 어찌나 끈질긴지.


 '사는 게 대강대강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죽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걸까?''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건가?'라는 고민이 들 정도로.

나 같은 경우는 절대 순순히 죽어지지가 않았다.




외로워서 그린 그림. 날 바라봐주었으면 했다.




그렇게 속으로는 매일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지만, 겉으로는 항상 태평한 척, 별 일 아닌 척 행동했다.


 사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소란 피우며 죽겠다고 뒹굴거릴 일만은 아니지 싶었으니까.


 어찌 됐든 지구는 여전히 잘 공전하고, 하루는 24시간이며, 사람들은 살아간다.

 이렇게 혼자 세상 무너진 것처럼 마냥 우울해하기에는 약간 민망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저 약간의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



 매일같이 엑스레이를 찍고, 피를 뽑고, 약을 먹고, 토를 하다가 진료를 보고, 약을 갈고, 온몸이 욱신거리고, 열이 났다가 추웠다가 몽롱해지기를 반복하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잠을 자는 중 설사를 지려서 황급히 호출벨을 눌러 너덜너덜해진 혓바닥으로(입부터 항문까지 연결되는 모든 기관이 항암제의 영향을 받는 활동 세포로 되어있다고 하네요) "으으...던댕님, 저 똥따떠요. 떨따똥따떠요.."라고 말하면 "아..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라며 황급히 바지를 가지고 오는 간호사의 눈을 피해 변이 묻은 침대 시트를 주섬주섬 가는 원치 않는 수치 플레이도 이제 그만 했으면 했다.

 26살 똥쟁이라니...

 유린당한 나의 존엄성은 대체 어디에서 보상받는단 말인가.



 '으... 아무래도 마라 등수 따위상관없으니까 쉬엄쉬엄 하늘이나 한번 올려다봤으면 싶은'



 낯 밤을 겨우겨우 구분할 정도의 조그마한 창으로는 보고 싶은 달이 보이지 않는다. 정말 동굴 속에 갇힌 단군신화의 곰이라도 된 것 같다.


어쩌다 보니 동굴로 들어갔고 내가 원하던 최고의 삶은 아니지만, 어차피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다면 차선의 경우라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언제까지 징징거릴 수는 없으니까.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된 웅녀처럼 나도 아직 모르겠는 무언가를 이곳에서 얻어가야지.


'그래도 나는 에어컨도 나오고 보송보송한 이불 시트도 있으니까 한결 편한 상황이야' 까끌거리는 새 환자복과 방금 교체한 차가운 이불속에서 온몸을 비비며 생각했다.


새벽 5시에 채혈과 엑스레이 검사를 시작하면 복작거리는 통에 잠을 자기가 쉽지 않다. 서둘러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억지로 눈을 붙여본다.



"에효.. 또 하루 버텨버렸구만.."



그렇게 무균실에서의 하루가 지나간다.








자료 사진은 많은데 좀 보기 불편할 수도 있는 사진들이 대부분이네요. 제가 그로테스크한 인간이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지금 암 치료가 끝난 상태입니다. 제 부족한 글 솜씨 때문에 혹여나 오해하셔서 걱정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 제 글의 유입 키워드는 '암 투병' '20대 암환자' '암환자 용기' 같은 것들이 대부분인데('항문에 볼펜'이란 키워드가 있었던 것은 비밀입니다) 혹시나 제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ddongs11@naver.com 으로 메일 보내주시면 환자로서의 지식 안에서 최선을 다해 답해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영양제 그나마 맛있게 먹는 법, 탈모를 즐기는 11가지 방법, 병문안 온 사람이 울먹일때의 대처요령 같은.


뒤의 말은 농담이고 정말로 메일 주시면 성심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혹은 감정적으로 힘들거나 하소연하고 싶으셔도 저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너 따위가..' 하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말이 길어졌네요. 대화하는 건 항상 즐겁습니다. 매번 말씀드리지만 항상 읽어주셔서 정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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