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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Sep 01. 2016

소소한 일기(2)

8월달

1.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새인지 벌레인지를 파악하는 것 일 겁니다. 일찍 일어났어도 자신이 벌레라면 새에게 더 빨리 잡아먹힐 뿐이죠.

그리고 그것이 제가 늦게 일어나는 이유를 정당화시키는 핑계입니다.




2. 풀 냄새를 좋아합니다. 특히 잔디를 깎으면 진동하는 풀 내음을 좋아하는데요. 하루는 친구 놈이 "엥? 그거 풀 시체 냄새 아니니? 사람으로 치면 전쟁의 피비린내 같은 거"라는 소리를 듣고부터는 어쩐지 껄끄러워졌습니다. 부들부들..






3. 다들 흑역사들 하나씩 가지고 계신가요? 담배에 관한 이야기를 쓰다가 생각났는데 제 인생 최고의 흑역사를 꼽으라면, 대학교 1학년 때 동기 여자애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 피우는 남자는 만나지 마.."라고 말한 기억이네요.

하.... 잠시만요. 잠깐 이불 좀 차고 와서 다시 쓰겠습니다.





4. 얼마 전 "기쁨은 나누면 두배,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라며 자신의 슬픔을 흩뿌리고 다니는 사람에게 당해버렸습니다. 보통 그들이 맡기는 것들은 슬픔이라기보다는 뒷담화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뒷담화는 나누면 두배가 돼버리곤 하죠. 그런 사람들이 정작 기쁠 때는 몰래 감추면서 시치미를 때고는 합니다.





5. 제 이름은 가운데 '태' 자 돌림이고 저의 자식은 끝자리 '식' 자 돌림입니다.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세 쌍둥이가 태어난다면 저의 드립 본능을 억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한식/일식/중식,  김조식/중식/석식, 김유식/무식/상식, 김육식/채식/잡식


자식들 이름을 부르면서 낄낄거릴 것이 뻔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는 벌써부터 글렀네요.






6. 생일 선물로 '칼림바'라는 악기를 받았습니다. 왜 준거냐고 물어보니, 너무나도 해맑은 미소로 네가 좋아할 줄 알았다고 대답합니다. 10년 지기 친구지만 아직도 그 친구의 눈에는 제가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밝게 웃어서 차마 욕할 수 없었습니다.





7. 병원은 항상 폐쇄형 창문으로 되어 있어서 틈이 아주 조금만 열렸습니다. 저는 그런 답답한 창문들이 항상 불만이었죠. 창문을 활짝 열고서 바람을 맞는다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것 같은데.

 그런데 사실, 손 하나 겨우 들어가는 그 좁은 틈이 제가 자살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세상...





8. 크게 아팠어서 좋은 점이 뭐야?라고 물으신다면 과거에 대한 미련이 사라진다는 점을 하나로 꼽고 싶습니다. 나중에 늙었을 때 전지전능한 마법사가 나타나 "이십 대 초반의 팔팔한 시절로 되돌려 줄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그 마법사를 때릴지도 모릅니다.

아! 그리고 크게 아프면 살이 빠집니다. 엄청나게.. 많이.

 매력적이죠?





9. 저는 나름대로 많은 일을 겪은 편이라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의 동요가 적은 편입니다. 그런데 공중화장실 변기의 커버가 닫혀있으면 어김없이 패닉에 빠지고 맙니다. 판도라의 상자 같은 느낌을 주죠. 부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0. 한 달에 이틀 정도는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평소에는 한 달에 보름 정도 아프니까요. 크게 아픈 건 아니고 삐걱거리는 정도이기는 하지만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이제 친구들에게 아프다고 못 만난다 말하는 것이 민망하기도 하고.

사람 관계를 무너뜨리는 건 큰 한방이 아니라 사소한 짜증들의 모임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항상 주의하고 있습니다.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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