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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Sep 06. 2016

그녀의 연애를 응원하고 있다(1)

그녀의 연애 이야기를 듣는건, 마치 통 안에 가득 담긴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급하게 먹는 일과 같았다.

마냥 달콤하다가도 곧 브레인 프리즈가 오며 지끈거리는..







 21살, 2학기의 기말고사를 마치고 대학교 앞 '프리스타일' 피시방의 주말 알바 자리를 구했다.

 돈이 많이 필요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지도 않고, 대학 등록금 또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다지 돈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대학생의 방학에는 아르바이트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별생각 없이 얻은 일자리였다.


피시방은 대학교 쪽문을 따라 10분 정도 쭉 내려가면 나오는 4층짜리 흰색 건물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변의 수많은 경쟁업소들이 예쁜 카운터 누나, 최고 사양의 컴퓨터, 값싼 이용요금 등으로 가벼운 주머니의 대학생들을 사수하려 치열하게 경쟁하는 에서도 허름한 외관에 질 낮은 컴퓨터와 당장이라도 폐병에 걸릴 것 같은 자욱한 담배연기가 가득 차있는 열악한 환경으로, 모든 피시방이 바글거리는 평일 저녁마 단골 아저씨들 5~6명만이 외딴섬처럼 드문드문 앉아있는 허름한 곳이었다.


 

지금의 나도 외딴 섬.. 또르르..




 나 또한 그을 지나칠 때마다, 여기 사장은 도대체 어떤 배짱으로 이렇게 장사하는 걸까 궁금해했었는데 출근 첫날 바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6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회색 머리의 사장님은 불룩 튀어나온 배로 거칠게 숨을 내쉬며 카운터에 앉아 계셨다.

 간단한 미팅과 신상정보를 작성하고 해야 할 일과 매출 장부를 작성하는 법, 그 밖에 몇 가지 유의사항을 알려준 뒤 사장님은 한 다발의 키 뭉치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거 위층 고시원 방 열쇠야. 방 보러 왔다고 하면 카운터 벽에 붙어있는 비어있는 호수 열어서 보여 "



"여기 위층에 고시원을요?"




"응 이 건물 내가 가지고 있는 거니까. 만약 들어온다고 하면 나한테 연락해, 알겠지?"



 알아 버렸다.

 이 피시방이 대쪽같은 지조 허름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그때부터 어쩐지 사장님의 얼굴이 빛나고 있다.



"같이 일하는 알바생도 곧 있으면 나오니까 자세한 일은 둘이서 잘 협의해"



 마치 세상 모든 일이 귀찮다는 듯 옥상으로 올라가는 건물주님의 흔들거리는 손 끝에는 '부'란것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일은 단순했다. 시간과 요금계산은 컴퓨터가 다 해주는 시대에 태어났기에 나는 그저 간식거리를 팔고, 나가는 손님의 돈 계산을 한 후 나간 자리를 정리하거나 재떨 갈아주기, 또는 가끔씩 바닥이나 화장실을 대걸레로 청소 일이 전부였다.


  주로 단골 아저씨들만 오는 곳이었기에 어쩌다 자리를 비울 때, 아저씨들이 알아서 재떨이를 갈거나 음료를 계산해 놓고 가기도 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단골들의 계산적인 움직임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부품들 톱니바퀴가 착착 맞아 돌아가듯 안정적이고 약간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아저씨들 덕분에 피시방에서도 중국음식을 시켜먹는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주로 새우 볶음밥이나 짜장면을 즐겨 드셨는데 한 곳에서 모으는 스티커로 가끔씩 탕수육 소자를 시켜 먹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배달원과도 얼굴을 트게 되 짜장면을 시킬 때도 짬뽕 국물을 얻어서 드렸었는데 항상 담배에 찌들어 썩어있는 아저씨들이 그렇게 해맑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자식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대충 이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발랄해진 아저씨들을 보며 잠깐 느꼈다.


 이따금씩 고시원 방을 알아보는 대학생들도 찾아오 했다.

 방을 채운다고 딱히 여분의 보너스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열쇠 뭉치를 쥐고 있으니 고시원의 주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열심히 방의 장점을 떠들어댔다.

 사람은 사소한 물건 하나에도 마음가짐이 달라지고는 하니까.





 20L짜리 쓰레기봉투가 가득 차서 단단히 묶어 건물 밖 1층 복도 뒤의 쓰레기 보관함에 옮겨 담았다.

 지하에 연기가 자욱한 에서 밖으로 나오니 가슴이 뻥 뚫리는  같다. 나온 김에 한대 피우고 들어가야겠다 싶어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요즘은 니코틴이 필요하다기보다 습관처럼 입에 물고 있는 듯하다. 내부가 건조한 건지 코 안이 약해져서인지 가끔씩 코피도 흐르니까 흡연량을 조금 줄이거나 좀 더 마일드한 담배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오... 말보로 레드라니... 터프한데?" 팔짱을 낀 체 종종걸음으로 불쑥 나타난 여자 알바가 말을 걸었다.




그녀는 나와 동갑으로 근처의 전문대에서 메이크업을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3개월 정도 선배 만나자마자 말을 트자고 하더니 30년 친구처럼 에 앉아 쉴 틈 없이 종알종알 떠들어 댄다.

조용히 음악이나 듣고 싶었는데..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크고 쌍꺼풀이 짙은 고양이 눈을 하고 있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넓펴 바른 마스카라가 펄럭이는 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은 콤플렉스라며 매일같이 찍어대는 셀카 속, 항상 손으로 가 다람쥐 같은 치열과 웃을 때 살짝 치솟는 콧구멍이 꽤나 귀여운 친구였다.

 

 사실 얼굴의  정도를 가리 똑같은 사진을 수십 장씩 찍어대는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나도 한대만 줘 봐" 그녀는 내가 건넨 담배를 받고서 쓰레기 박스 뒤의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 불을 붙인다.




"왜 항상 숨어서 피는 거야? 죄짓는 것도 아니고.."




"여자가 담배 피우면 싸 보이잖아, 남자들은 담배 피우는 여자 싫어하지 않아?"




약간은 성차별적인 발언에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글쎄..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난 나랑 같이 피워주면 좋을 것 같은데"




"에효... 남자 친구가 별로 안 좋아해서.. 곧 끊을 거야 현모양처가 꿈이거든"




"음..??" 




"뭐"




"아니... 응원한다고. 너의 현모양처"




"뭐래...ㅋㅋ 나 먼저 들어간다! 빨리 와 심심해"




그녀는 "카악~" 소리를 내며 가래침으로 정확하게 바닥의 담뱃불을 끈 후, 노란색 패딩을 한껏 여미고서 종종걸음으로 내려갔다.

그래, 적어도 불은 확실하게 껐으니까. 안전제일도 현모양처의 필수요소 중 하나일 테니.


나는 어쩐지 이 여인의 꿈을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21 인생 동안 알고 있었던 현모양처의 조건들과는 확실히 정반대 타입 양아치였다.

 어쩐 일인지 그렇게 명문고도 아녔으면서 그 흔하다는 일진 한번 못 만나며 행복하게 살아온 나로서는 처음 보는 진성 양아치인 그녀의 행동과 허세 하나하나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흰 피부에 예쁘장한 얼굴로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생글생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친화력을 지닌 그녀는 어지간한 농담에도 당돌하게 대처하는 위트도 있어서 아저씨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곤 했다. 나와 선희가 서빙할 때의 온도 차이가 너무 선명해서 약간 상처받을 정도로.


 또한 대단히 수다스러운 사람이기도 했는데, 덕분에 항상 조잘거리는 그녀의 화려했던 고등학교 시절, 학과의 재수 없는 여자 무리들과 그 주변의 파벌싸움, 무능한 자신의 부모 이야기, 미래를 약속한 세상에서 가장 매력 있다는 세 번째 남자 친구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곤 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달변가 타입이었다.







"신기하게 나랑 같은 노래를 제일 좋아하더라고"

 




 사랑하는 연인들은 항상, 나무 조각으로 왕자 공주님의 역할놀이를 하는 어린아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감정이입을 하곤 했다.

 이 친구도 마찬가지로 애인의 이야기를 할 때는 경건한 성서라도 암송하듯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반짝이곤 했다.


 나처럼 기억력이 안 좋은 건지 아니면 남자 친구가 자신과 같은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이 그녀의 인생에서 소름 돋을 만큼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는지는 모지만, 매번 윤미래의 '검은 행복' 이란 노래를 반복 재생하며 적어도 3일에 한 번씩은 듣게 되는 둘의 첫 만남 이야기에 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스며들어"




 선희는 노래가 나올 때마다 가사가 항상 자신의 이야기 같다며 미간 사이를 구긴 체, 심각한 표정과 손짓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하지만 선희는 노래의 가수처럼 흑인 혼혈이 아다.

 오히려 투명할 정도로 흰 피부 탓에 명란젓처럼 피부 사이사이로 퍼런 핏줄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절망적인 박치였다.


 그래도 절대 '검은 행복'을 부르는 그녀를 놀리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평소의 성격상 모욕을 당하면 부들부들 떨다가 급작스레 담뱃불로 이마를 지질 수도 있는 행동파였기 때문에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받았다는 듯이 촉촉 눈을 몇 번 깜빡이는 것으로 상황을 회피하고는 했다.



 그런 사소한(?) 부분만 제외하면 우리는 꽤나 손발이 잘 맞는 팀이었다.

 덜렁거리는 통에 항상 '빵꾸'를 내는 그녀를 대신해 나는 간식의 재고정리와 입출금 내역 관리 등 세심한 부분을 맡아서 했다. 선희는 단골 아저씨들의 잔 심부름이나 나로서는 절대적으로 취약했던 비위 맞추기, 진상 손님들에게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진상 되돌려주기 같은 액티브 한 일들을 도맡았고 덕분에 일은 한결 편안했다.



 하지만 사건은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의 평일 저녁, 편의점에서 피자 호빵과 야채 호빵을 두고 10분째 고민하고 있는 중 일어났다.







* 내용 중 '선희'란 이름은 가명입니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사건은 놀라울 만큼 소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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