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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Sep 10. 2016

그녀의 연애를 응원하고 있다(2)

 평일 오후의 갑작스러운 사장님의 전화 속에는 넘쳐나는 분노가 수화기 틈새로 국수가락처럼 뽑혀 나올 듯 짜증이 가득 실려 있었다.




"태균아 지금 어디니?"




 누군가가 날 다급하게 찾으면 열에 아홉은 안 좋은 일인데..

 '충북 제천이요' 라며 상황을 회피해볼생각했지만 열의 '하나'의 가능성에 걸어다.




"피시방 근처 편의점입니다"




"오... 잘됐네. 혹시 평일 이틀 정도 땜빵해줄 수 있니?"




 젠장... 아홉이었다. 최대한 찝찝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음.. 크게 바쁜 일은 없는데 무슨 일 있나요?"





"선희가 며칠째 전화도 안 받고 무단결근 중이다. 사람 미치겠네.."





"어..?  아.. 네 일단 금방 가겠습니다"





 선희가 비록 양아치에 극심한 기분파이기는 해도 약속을 어길 친구는 아니었다. 궁금한 마음에 황급히 전화를 끊고 눈 앞의 호빵을 대충 계산한 뒤 편의점을 나섰다.



 사장님은 잔뜩 독이 오른 얼굴로 팔짱을 끼고 앉아 있다가, 나를 보자마자 엄마에게 고자질하는 시누이처럼 쪼르르 달려와서는 자초지종을 털어놓는다.



 원래 주중 야간을 담당하는 선희였는데 화요일 저녁 갑작스레 울면서 뛰쳐나가더니 그 후로는 전화도 문자도 묵묵부답이라는 것이다.

 사장님은 이틀 정도 혼자서 커버하시다가 목요일 저녁 친구들과의 술 약속에 못 나갈 것 같으시자 결국 분노가 폭발해서 나에게 급히 연락하셨다고 한다.


 하긴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이 담배연기가 자욱한 피시방에서 엉덩이를 구겨야 겨우 들어가는 의자에 낑겨 앉아있는 모습은 보기 힘든 광경이긴 하다.

 빵빵한 배를 들썩이며 숨을 쉬는 모습이 잔뜩 독이 오른 복어 같 약간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처량한 것이, 입구에서부터 손님들의 기분을 한껏 미묘하게 할 터이니 말이다.



노인과 바다 같은 짠함이랄까..




"예.. 다녀오세요 이삼일 정도는 제가 할 수 있어요"





"고맙다.. 크게 다른 건 없을 거야. 아 그리고 알바 사이트에 구인광고 좀 올려줘라"





"네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다녀오세요."





"에잉... 내가 고거 언젠가는 사고 칠 것 같았다"





 사장님은 투덜거리며 코트를 챙기고서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셨다.


 도대체 선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야간의 피시방은 한산했다. 3~4명의 단골만 제외하면 거의 독방 수준으로, 인기척조차 못 느낄 정도니까.

 항상 하던 대로 진열대를 정리하고 계단을 청소한 뒤, 가끔씩 자리를 돌며 정리만 해주면 된다.





 "알바 아가씨는 뭔 일 있어?" 항상 발목을 꽉 조이는 회색빛의 추리닝바지를 입는 아저씨가 물었다.




 벌써 세 명째다. 얘는 도대체 얼마나 오지랖을 부리고 다녔길래 다들 이러는 걸까?

 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선희는 생각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듯했고 말을 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피자빵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시간이나 이어폰을 꼬이지 않게 감는 법, 오류가 난 컴퓨터를 재부팅하는 방법 등등 조금만 노력해봐도 금방 알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물어왔다.

 

 심지어 게임을 하고 있는 아저씨들한테 조차도 하고 있는 게임 이름이나 좋아하는 캐릭터, 월 정액 요금이나 결제방식 같은 시시콜콜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져댔다.


 아저씨들도 처음에는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관심을 가져주니까 신이 나서 열심히 대답해주곤 했지만, 정도가 약간 지나친 그녀의 질문공세에 슬슬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더라도 그녀 혼자 카운터를 지키는 평일 야간에는 어떤 상황이었을지 안 봐도 뻔했다.


 하지만 그녀가 조잘거리며 헤집고 다니는 곳은 늘 활기가 넘쳤다. 귀찮기는 하지만 짜증 나지 않는 분주함이 어두컴컴하고 조용한 피시방에 유일한 활력이었으니까.

 어쩌면 그녀의 공백이 크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아저씨들도 무의식 중에 그 빈자리가 느껴지는 거겠지.




"좀 아프데요.. 며칠 못 나올 것 같은데요"




"글쿠만..."




 아저씨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뿌리 박힌 지박령이 자리로 녹아들듯 스르르 사라졌다.


  창고 정리와 사소한 일들을 끝마친 후, 이어폰을 꼽고 카운터에 앉았다.

  편의점에서 사 온 호빵은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지만 다시 데우기도 귀찮아서 그냥 한 입 베어 물었다.

 

  팥 호빵이다.


 '아.... 뭐야 진짜... 얘는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거야?' 괜스레 선희에게 짜증을 냈다.


 그녀가 없는 피시방은 메마른 사막 표면같이 퍼석하다.

 






 그녀에게 전화가 온 것은 다음 학기 수강신청에 늦어 교양 2학점만을 신청하는 대참사를 일으키고 미국행 비행기표를 알아보던 다음날 새벽 1시쯤이었다.



 핸드폰 화면에 선명하게 찍혀있는 '피시방 선희'라는 글자에 화들짝 놀라 급히 받았다.



"야 뭐냐 전화도 안 받고? 너 어디야?" 궁금함을 감추고 짐짓 태연한 척 말했다.




"야... 태규..ㄴ 크흡흫ㅎ으헣헣ㅎ헣헣"




 아.... 운다... 직감적으로 귀찮은 상황이고 당장 끊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항투덜거리면서도 단호하게 쳐내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정말 궁금하지 않았지만 기계적으로 물었다.




 선희는 이미 술을 잔뜩 걸친 듯 말이 꼬여 있었다. 끊임없이 울면서 먹어대는 코 때문에 어떤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우려했던 대로 오랜 시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이야기를 분석하며 종합해본 결과 그날 선희가 울면서(그녀의 표현으로는 절규) 피시방을 뛰쳐나갔던 이유는, 사랑하는 아니 사랑했던 남자 친구가 집에서 쉰다며 자신을 속이고 업소녀가 나오는 룸에 간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쾌락과 유흥을 제공하는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 유독 많았는데, 마침 남자가 그녀의 친구 중 한 명이 서빙을 하는 업소에 방문했고, 평소 선희의 세뇌에 가까 사진 공세로 얼굴을 확실하게 알고 있던 친구가 서둘러 연락한 것이다.


 전 남자 친구의 잦은 바람과 클럽 출입으로 상처를 받아 헤진 후, 순수해 보였던 지금의 남자에게 끌려 사귄 것이라 더욱 상처가 크다며 또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이런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사건이 그녀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나한테 하고 있는지 의아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깊은 우정은 딱히 아니라는 것이다.





"아... 몰라 나 오늘 술 더 마시고 확 죽어버릴꺼야..흡끜!.. 그 자식 후회하게 만들어줄끠크하어엉ㅇ엉"





 어째서 나의 주변 사람들은 만취 죽어버린다며 울어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사실을 꼬박꼬박 알리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뭔가 죽기 직전의 고해성사 같은 걸까? 나에게?



한 친구의 문자. 오래된 친구지만 이 때는 정말 뒤졌으면 이란 생각을 잠깐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그녀의 입은 쉴 줄을 모른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지만, 건네는 어떠한 위로나 말들도 도움이 되지 않을걸 알기에 핸드폰에서 귀를 조금 때고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녀는 지금 마치 병처럼 사랑을 앓고 있다. 그것도 상당히 지독하게.





"나 부탁이 있는두웹.."  그래, 이걸 기다리고 있었어, 길고 긴 통화의 주제가 밝혀질 시간이다.




"음.. 말해봐"





"나 중간에 나오는 바람에 보름치 알바비를 못 받았거든.. 사장님 뵙기가 민망해서 그런데 네가 말 좀 해줄 수 있을까?" 그녀가 처음으로 또박또박 말한다.





 방금 전에 자살하신다면서... 어이없지만 귀엽기도 한 이런 모습도 그녀의 매력 중 하나다.



 


"그래. 사장님 지금 좀 화나신 상태니까 좀 진정되면 말씀드려보고 연락 줄게"





 선희는 고맙다고 말하고서 이제 자살하러 간다며 다시 울기 시작했다. 30분 정도를 더 다사다난했던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그녀의 핸드폰 배터리가 수명을 다한 덕분에 겨우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듯하다.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들다니..

 탄산 한 캔을 손에 든 채,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흠뻑 빠져서 열렬히 불타오르 사랑 때문에 운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여태 살면서 경험했던 가장 강렬했던 사랑도 그때의 그녀 같지 않기에 나는 아직도 그런 마음을 알 수 다.







 내가 짝사랑했던 그녀는 입을 크게 벌리고서 목젖이 보이게 웃는 첫인상이 매력적이었다.

 다가 하루는 얇고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아킬레스건이 아름다워 보였다가도 며칠 뒤에는 귀 뒤로 흘러내리는 잔머리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결국, 매일 가져다 붙였던 수많은 이유들은 다 핑일 뿐 단지 그녀였기 때문에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 그런 생각을 둘만의 술자리에서 조용히 고백했다.


 어떤 식으로 전해야 할지 몰라 '나는 사과 같은 아삭한 과일보다는 부드러운 열대과일을 좋아하는 편이야'라고 말하듯 담담하게.


 하지만 그 사람은 미안한 눈빛으로 이미 마음에 둔 남자가 있다며 거절했 우리는 맥주 한두 잔을 더 마 각자 흩어졌다.


 그렇게 가장 강렬했었던 내 짝사랑은 끝났다.


 그 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거절당했다는 부끄러움보다 그녀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 더 신경 쓰였던 것 같다.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 느끼는 두근거림, 긴장감, 설렘, 슬픔, 분노들을 그녀 또한 다른 남자에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 나를 너무 비참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못생겨서 싫다고 말해줬다면 '나쁜 년.. 팩트로 폭행하다니..' 라며 욕이라도 해줬을 텐데.

 


 그래도 참 후련했다.

 어이없을 정도로 단숨에 털어버린 것을 보니 지긋지긋했던 감도 얼만큼은 있었나 보다.

 며칠 정도 친구들에게 놀림받다가 낄낄거리며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신나게 뛰놀면서 생각보다 금방 회복했다.

 

 올림픽공원 장미광장 벤치에 앉아, 산책을 하는 건지 뒤엉켜 있는 건지 모르겠는 커플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앞으로는 이런 순애보적인 짝사랑은 도저히 못하겠지'와 '그 남자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보다는 별로겠지만' 같은 생각을 했다.


 그때 내가 좀 더 억울해했거나 간절했었더라면, 선희 같은 감정을 느껴볼 수 있었을까.







 선희와의 전화 통화 후 일주일 뒤 나는 결국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에 그녀가 돈을 받았는지, 원하는 대로 담배를 끊고 현모양처의 꿈을 이루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요즘가끔, 늦은 밤 침대에 누워 마음속으로 소소하게나선희 아니 그녀와 같이 불타오르고 있을 20대 초반의 모든 사랑을 조용히 응원하고 있다.

 그것은 뭐랄까, 마치 따뜻한 녹차 한잔을 손에 쥔 채 어린이 야구 경기를 응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들은 미숙하다.

 우격다짐으로 휘두르며 그저 감정에 휩싸여 열정과 힘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은 '저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 때도 있지만, 한편으론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는 뜨거운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들의 숨김없이 내비치는  잡은 참치같이 펄떡이는 감정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우와.. 그래 힘내라.. 멋지다!"라고 응원하다가, 내 가슴도 두근거리게 되어버린다.


 그러면 이내 '참... 답지 않게 주책이야' 하면서도, 언젠가는 나 또한 저런 사랑을 해볼 수 있기를 조용히 상상해보곤 하는 것이다.  



 '하.. 나는 언제쯤 선희 같은 사랑을 해보려나..' 조용한 밤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다 우연히 떠오른 그녀 생각에, 나와 그녀의 연애를 응원하게 되는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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