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해요! 해준 게~♪ 너무 없어서~♬ "
"으어어어....으어부버..."
나조차도 의미를 모르겠는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알람을 껐다. 매번 잠에서 깰 때마다 민망할 정도로 깜짝 놀라곤 한다.
평소라면 깊이 잠들어 있을 시간인 아침 6시 5분이지만 오늘은 병원을 가는 날.
서늘한 이불을 다리 사이에 낀 채, 치밀하게 시간을 계산해 본다. '병원까지는 대충 1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되니까, 차가 안 막힌다는 가정하에 샤워는 안 하고 머리만 빠르게 감으면 10분 정도는 더 자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눈을 감는다면 절대 10분만 자고 일어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결국 좀비처럼 샤워실로 기어가 뜨거운 물을 멍하니 맞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유난히 더운 날이다.
뉴스에서는 매번 몇십 년 만의 최고 더위니, 누진세가 어쩌니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 정말 심상찮은 더위이기는 한가보다 싶었다.
하긴, 어릴 때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귀신에 대한 얘기를 들은 후로 아무리 더워도 이불을 종아리라도 덮어야만 잠이 오는 나조차도 '그래 차라리 발바닥이라도 간지럽혀라.. 소름 돋아서 서늘해지게..'라는 마음으로 이불을 밀쳐버리고 잠드는 요즘이니까.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도 차 안이 마치 한증막처럼 후끈거리는데 설상가상으로 차의 에어컨도 고장 난 상태다. 며칠 전부터 "쉬~"하며 가스가 새는 듯한 심상찮은 소리가 들리더니 결국에는 에어컨을 틀어도 뜨거운 바람만 나오게 되어버렸다.
결국 창문 4개를 모두 연 채 카리브 해변을 달리는 여유 있는 젊은 사업가 처럼 운전했다. 사실 그런 콘셉이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티브이 광고에 나오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집 앞에서 콜라 한 병을 사서 옆에 둔 체 노래도 틀며 달렸는데, 고속도로 중간에서는 흥에 취해 큰 목소리로 노래도 따라 불렀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따라 부를 때마다 숨 넘어갈 듯 사정없이 팔을 때리며 웃곤 했다. 못 부르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우스꽝스럽게 부른다나.
하지만 지금은 옆자리에 노래를 불러도 웃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약간은 맥이 빠진다. 하긴 아무리 우습게 노래를 부르는 남자라도 이렇게나 자주 병원을 들락거리는 사람 옆에 오래 붙어 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오늘은 염증으로 부어올랐다가 일주일 동안 항생제로 가라앉힌 뺨의 염증 수치를 재러 가는 날이다.
작년 겨울, 처음 뺨이 부어올랐을 때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둥지둥 안절부절 난리가 났었는데 단순한 염증이란 것을 알고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요즘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갈 만큼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물론 익숙해졌다고 성가시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8시까지 병원에 가서 피를 뽑고, 2시간 정도 어슬렁거리다가 피검사의 결과가 나오는 10시 10분에 진료를 보고 1주일 치의 약을 더 타가면 된다.
매번 새벽 6시에 잠에서 깰 때마다 '아.. 다음에는 무조건 오후 2시 예약으로 잡아야겠다' 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간호사가 다음 진료일을 물어보면 나도 모르게 "가장 빠른 시간으로 해주세요!"라며 호기롭게 외쳐버리고 만다.
"아... 이번에는 쓸데없는 욕심부리지 말고 좀 여유 있게 예약을 잡아야지.." 달리는 차 안에서 또다시 다짐했다.
8시 10분쯤 도착해서 부랴부랴 피를 뽑고 감염내과에 접수한 후,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어린이병동 한켠에 앉았다.
내가 예전에 있었던 환자실은 어린이 병동 안에 있었기 때문에 매일 아침 엑스레이를 찍을 때마다 어린이 병동 1층을 지나가곤 했다. 벽 전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개구리와 염소, 곰돌이 캐릭터들이 원색의 무지개가 활짝 피어있는 푸른 풀밭에서 하하호호 뛰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약 기운이 올라와 속이 울렁거리고는 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도 알록달록한 무언가를 보면 살짝 거부감이 든다.
“여기 앉아서 조용히 먹어”
옛날을 추억하며 멍하니 앉아있던 중, 젊은 아주머니가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를 옆에 앉히며 말했다. 남자아이는 여느 아이 환자들이 그러하듯 조그마한 손에 자기 손가락보다 긴 바늘을 달고 테이핑을 덕지덕지 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 한바탕 울고 온 모양인지 눈 주변이 붉게 물들어있었고, 어머니는 아이의 칭얼거림을 혼내다가도 이내 마음이 아파져서 과자 한 봉지를 쥐어준 듯했다.
울먹울먹 한 표정으로 자기 몸만 한 과자 상자를 소중히 껴안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너 자꾸 울면 옆에 아저씨가 이놈~ 할 거야?” 자꾸 울먹이려는 아이를 보며 아주머니가 위협을 뜻하는 눈 모양을 하고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세상 맙소사.. 물론 어제 일도 가물거릴 정도의 치명적인 기억력 때문에 우리 어머니도 ‘이놈아저씨’의 도움을 받았었는지,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추억 속 '이놈아저씨'가 되어 사회에 봉사(?) 해야 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뭐랄까 ‘이놈아저씨’는 나에게 아직 머나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내 상상 속 ‘이놈아저씨’분들은 56세 이상에, 대청마루에 앉아 밀짚모자와 ‘난닝구’를 입어주신 상태로 한 손에는 부채를 펄럭 펄럭하시며 약간은 오버스럽게 “이놈!! 자꾸 엄마 말 안 들으면 이놈아저씨가 잡아간다!!”라고 능글맞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물론 나중에 늙어서 귀향을 한 후에는 차근차근 준비해야겠지..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급작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나이보다 약간 많아 보이는 저 아가씨 아니 어머니의 애절한 눈빛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린이 병동에서는 아이가 아프고 어머니는 고통스러워한다. 그녀들의 얼굴빛으로 아이의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정도니까.
하지만 공통적으로 그녀들의 눈빛과 얼굴은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본능적 죄책감, 사랑하는 피붙이의 고통을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자괴감 그리고 ‘왜 하필 나의 자식인가’ 하는 분노, 연민, 자책 등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나타나 있다.
그 얼굴은 어쩐지 내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어머니의 엄한 목소리에 아이는 큰 눈망울을 끔뻑거리며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아이들은 항상 전력을 다해서 운다. 어떤 의미에서는 탁월할 정도로.
길을 가다가 넘어져도, 장난으로 가지고 있던 과자를 뺐어 먹어도, 종이박스에 머리가 들어가서 빠지지 않아도, 심지어 날씨가 화창해서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쬔다고 우는 아이도 봤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고작 저런 일에 울 수 있을까 싶다가도, 50대쯤의 나 역시 지금 힘들어서 울고 싶은 나를 보며 ‘고작 저런 일에... 쯧쯧’라고 생각할까 싶어 기분이 묘해지고는 한다.
그렇다고 아이를 향해 “나는 너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어.. 복 받은 놈.. 고작 염증 가지고.. 참아 인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남이 불행하다고 내가 더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내가 더 힘들었다고 남의 아픔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심지어 이 아이는 이맘때의 나보다 훨씬 훌륭하게 견디어 주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고통을 잘 참는 편이지만, 나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천재형은 아니었다. 수많은 고통과 상황들로 빚어진 생활 노력형 정도려나.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정말 꾸준히 아파왔다.
어릴 때 할머니의 집에서 송편을 이쁘게 빚으면 할머니는 “아이고, 우리 태균이 나중에 이쁜 딸 낳겠네” 라며 깔깔거리며 웃으셨고, 그때는 그저 ‘음.. 역시 이쁜 게 최고인가’ 라며 넘어갔지만 지금 돌아간다면 건강한 아이를 낳는 송편 모양을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크고 작게 꾸준히.
그때의 할머니는 뭐든지 알고 계셨으니까 어쩌면 해답을 알고 계셨을까.
그래도 다행히, 많은 일들과 시간을 겪으며 어릴 때보다는 좀 더 고통에 부드럽게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덕분에 그럭저럭 즐겁게 살고 있는 요즘이다.
가끔 "괘... 괜찮아요.. 나 요즘 정말로 꽤나 만족하며 살아가는 중이에요"라고 말해도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너의 상황은 어쩐지 눈물이 나는걸..?' 같은 눈빛을 보내며 건네주는 케이크 위의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호의 또한 애써 거절하지 않는 여유도 생겼다.
그들이 주는 달콤한 동정심을 생글생글 웃으며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뻔뻔해지기도 했고.
뭐, 그들은 자신의 이타심을 충족시키고 나는 나름대로 편하니까 윈윈 전략이려나.
그래, 나는 좀 더 능글맞아졌다.
이런 나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잘 지내고 있으며, 생각만큼 비참하지는 않으니까 좀 더 인생을 사랑해보라고 7년 전의 절망스럽던 나에게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어린아이한테 ‘이놈아저씨’ 데뷔 무대도 앞두고 있는 어른이 되었다고.
“착... 착하네... 힘내서 조용히 먹자... 어흥..!”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조심스레 말했다. 힘내서 조용하자니.. 당황하면 아무 말이나 막 내뱉는 습관은 하루빨리 고치고 싶다.
아이는 삐졌는지 뾰로통해져서는 고개를 휙 돌렸고, 어머니는 미안한 듯 고개를 한번 끄덕하고서 아이의 입 주변을 닦아준다. 귀여워..
'그래그래.. 이게 다 네가 귀엽기 때문이란다.. 귀여운 것들은 항상 고통받기 마련이거든.. 그래서 내가... 아니.. 좀만 참으렴 결국 다 좋아질 테니...' 속으로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며 진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얼떨결에 '이놈아저씨'의 데뷔 무대를 치러냈고 또다시 청년에서 아저씨로의 한걸음을 살포시 내디딘 날. 그렇게 나의 걸음걸이에는 점점 삶의 무게가 실려간다.
8월에 쓴 글인데 지금 올리네요 ㅎㅎ 쓰다보니까 시간이 너무 뒤죽박죽인것 같아서 나중에 시간순으로 정리를 한번 해야겠습니다. 불편하실수도 있을것 같아서..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