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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Sep 26. 2016

살아간다는 것은 대체로 슬픈 일이다

"응 그래, 거의 다 와가"




 친구는 위로가 필요한 듯 보였고 나는 이 친구를 좋아한다. 아니 호의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훈경이를 처음 만난 곳은 논산 훈련소였다. 같은 내무반을 사용했고, 잘생긴 얼굴 빡빡 민 머릿속 뾰족 솟은 두상이 기묘해서 한참을 웃었다. 친구는 자신도 몰랐었다며 같이 웃었다.

 매사에 싱글벙글 다니면서도 하기 싫은 일은 한사코 거절하는 모습이 닮았다고 느꼈고 마음에 들었다.


 모든 것이 낯선 환경 속에서 카투사라는 공통점은 유대감을 만들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논산을 퇴소하고 3주간의 카투사 훈련소 기간 중, 몰래 담배를 공유하고 같이 오전 달리기 훈련을 은근슬쩍 빠지는 유일한 동기였다.


 부대와 보직을 추첨하는 날, 나는 모두가 기피하는 동두천 헌병이 되었다.

 절망하는 동기 앞에, 친구는 깔깔깔 비웃으며 자신은 토플 성적도 높고 컴퓨터 자격증도 있으니까 몸이나 쓰는 3D 보직인 헌병 따위 될 리가 없다며 나를 조롱다.



이는 대구 헌병이 되었다.



그날 저녁, 퇴소하는 날 피우자며 몰래 보관하던 디스 플러스 두 까치를 나눠 피우면서 용산, 평택이나 행정병으로 빠진 동기들을 저주했 진정한 카투사는 헌병뿐이라며 프라우드를 가지고 계속 연락하 다짐했다.

 그 후로 대부분의 훈련소 동기들은 잊고 지냈지만, 훈경이만은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어쩐지 애틋했달까. 비슷한 주파수의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그런 친구에게서 이틀 전 전화가 왔다.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한 후, 좋아하는 시즈닝을 듬뿍 뿌린 나쵸 한 그릇과 살얼음이 낀 제로콜라를 양손에 안고 좋아하는 영화를 볼 준비를 마친 뒤였다.

 그때의 나는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가장 즐거워하는 몇 안 되는 시간이니까 대충 몇 마디 주고받다가 급한 일이 있다며 끊으려 했다.




"요즘은 내가 마치 죽어있는 사람 같아"




친구의 한마디가 마음을 후벼 팠다. 이건 반칙이다. 절망하듯 툭 던지는 '죽음'에 관한 대화는 도저히 무시하고 지나갈 수가 없으니까. 떡밥을 물어버린 생선처럼 낚싯바늘에 아가미가 걸려 질질 끌려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양반다리를 풀고 조용히 영화를 멈춘 뒤 물었다.




"금요일 술이나 한잔 할래?"




"어?? 너 술 못 마시잖아.. 사람 많은 곳 싫어하기도 하고"  거절하는 듯 말하지만 목소리가 들떠있다.




"오랜만에 콜라와 사이다로 달리고 싶다. 족발 맛있는 곳으로 날 모셔라"




"그래 ㅋㅋㅋ 알았어. 오기만 해 최고의 비율로 섞어줄게 "






 그 후 이틀  훈경이를 만나러 갔다. 3413 버스를 탄다는 것이 3213으로 잘못 타는 바람에 약간 늦어버렸다.



 정말 오랜만에 방문하는 용산.

 나는 그야말로 서울 촌놈이다. 송파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어서, 고작 용산에 갔을 뿐인데도 어쩐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어색한 마음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대리석 건물의 벽을 이유 없이 검지 손가락으로 쓱 하고 문질렀는데 손 끝으로 까끌거리면서도 은근하게 '찌릿'하고 전해지는 묘한 자극이 동네의 느낌과 같아 약간은 안심이 됐다.


 탐사를 마친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신호등 건너편에서, 훈경이는 짙은 바다색 바탕에 가운데 분홍색 야자수가 큼직하게 프린팅 되어있는 반팔티와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검은색 반바 그리고 앞쪽에 프릴 무늬가 되어 고급스러워 보이는 남색 옥스포드화를 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낯선 환경 속 친숙한 모습이 유독 반가웠다.





 친구는 돼지다리를 오븐에 통으로 구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야들 거리는 브라질 스타일의 족발집을 소개다.

 은은한 백열등에 잔잔한 분위기가 좋았고, 족발(?) 보다는 감자튀김이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어때? 괜찮음?" 약간 눈치를 보며 물어온다.




"어 맛있네.. 고소하고 소스도 독특하고.. 덕분에 호강하네"




"야 이거 큰맘먹고 사는 거거든?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해봐" 친구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문득 "태균 씨!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셔야 해요"라고 말하던 인턴 의사가 떠올랐다.

 병원에서 항상 곤란했던 질문은 '어디'가 아닌 '얼마나' 아프냐는 질문이었다. 1부터 10까지 점점 고통스러워하는 이모티콘이 그려진 표를 보여주며 항암 치료중인 부분이 어느 정도로 아프냐고 물어볼 때면 항상 당황스러웠다.

 주구장창 아픈데.. 원래 다들 이만큼 아픈 건 아니면 내가 정말 심각하게 아픈 상황인 건 집중하고 생각해보면 더 아픈 것 같기도 하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 8.25 정도요"라고 대답하면 인턴은 고개를 끄덕이고, 무언가를 끄적거리면서 사라졌다.


 지금 친구의 불만스러워하는 표정은 그 인턴을 닮아있다. 내가 좀 더 디테일하게 아프다고 몸부림쳤다면 약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주었으려나.




"기름지면서 바삭한 껍질이 터지면 육즙이 살코기로 스며들, 야들야들한 속살과 어우러져 입안을 감싸주는 그런 맛이야... 사랑하는 여인이 음식이라면 이런 느낌일까?" 이번만큼은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표현해본다.




"과해..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다시 실패.

 누군가를 만족시키 표현의 섬세한 포인트를 잡아내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어려워..




 친구는 할 말이 많은 듯 끊임없이 떠들었고 자주 만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초록병이 늘어나고, 친구의 발음이 살살 꼬여가기 시작하는 것이 신경 쓰인다.


 과음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술기운에 취해 무언가를 말하려는 사람을 꺼린다.

 훈경이는 힘들어하는 듯했고, 맨 정신에 털어놓기에는 어쩐지 부끄러운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너무 달리는 거 아니야? 고민 있어?" 더 취하기 전에 털어놓기를 바라며 은근슬쩍 던져보았다.




 러자 기다렸다는 듯, 흔들어댄 콜라처럼 고민들을 다.


 훈경이는 학과와 원하는 직업의 괴리감에 절망하고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체로 그저 남들이 앞서가는 것을 지켜만 보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원하는 일을 다 작하기는 부모님의 눈치도 보이고 여러모로 고민이라며.


 조용히 들어주었다.

 한편으로는 여느 평범한 고민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의 고민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재수를 하거 몇 년째 취직을 위한 자소 쓰기, 잘 다니던 직장에 잘려 새로운 일을 준비하,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고민하는 것 같 인생의 다양한 '일시정지'들을 이 친구 또한 겪어가는 중인 것이다.


 몇 년 전 병실 침대에 누워있을 때, 나 또한 이런 '일시정지'를 겪다.

 문득 떠오른 '어? 내가 지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

 


'이런 식으로 어영부영 살아도 되는 걸까?' 

'모두들 나아가고 있는데..'

'멈춰있는 이 시간이 너무 아까워..'



 늙어가는 것 자체는 별로 상관없었다.

 다만 남아있는 시간이 병원에서 점점 줄어간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나는 멈춰있는데 세상은 나아간다. 심지어 너무나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시간 속 어서 빨리 침대를 박차고 나가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럴때면 마치 죽어있는 것만 같았다.



 친구의 고민도 그때의 내 불안함과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낙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인생사는 낙이 없어진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쩌면 자유를 느낄 다 말해주고 싶었다.


 '자유롭다'는 것 시간이 멈춰있다는 느낌이라고 한다.

 일시정지의 상태라면 차라리 '이 시간이 정말 자유로운 순간이구나..나중에는 이 자유가 그리워지겠지?' 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 더 가뿐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병원에서의 나도 어떤 의미로는 가장 홀가분하기도 했고.


 절망감 속에서 자유 찾으라 터무니없이 들리기도 하지만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하고 우리는 그런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지금의 과정도 인생이 아닐까..?' 라며 자신을 위로하기, 어쩌면 그것이 친구에게 더 필요한 진실일 수 있다.




"하... 내가 나쁜 놈이지..."




'이제 이 멋진 위로를 잘 포장해서 전달해줘야지..’라고 마음먹었을 때 친구가 말했다.




“미안하다... 너 앞에서 이딴 걸 고민이라고... 하... 진짜... 나는 행복한 놈이지..” 의도치 않게 살아온 삶 만으로 응원을 건넸다.




“음???... 저기.. 일시 정..”




“아냐 아냐 마시자! 원래 삶은 슬픈 거야...” 친구는 소주 한잔을 단숨에 비운 뒤 입을 쓱쓱 문지른다.





 사실 그때 훈경이의 그 한마디에 애써 생각해둔 말들을 다 잊어버린 체, 오히려 내가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나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대체로 슬픈 일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 그 슬픔의 일부분을 공유하고 위안 삼는 것은 어쩐지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그래...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서 짠!!"




 마음으로 친구의 행복을 응원하며 콜라 한잔을 쭉 들이킨 뒤, 입을 쓱쓱 닦고 서로 킥킥거리며 웃었다.

 서로 마주보며 웃어대던 첫만남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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