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매력적인 남자가 되리라 마음먹었지만 쉽지 않다. 언제나 의연하면서도 냉철한 이성을 지니고 있고 “치킨 닭다리는 그쪽이 다 먹어요. 나는 관심 없으니까.”라는 배려의 말을 무심한 듯 뱉을 줄 아는 그런 남자.
하지만 암이 발병한 후에 나는 누구보다 치사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실 죽는 일 같은 건 크게 고민되지 않았었는데 성모병원의 의사에게 3개월 정도 남았다는 소리를 듣자 나도 모르게 솔깃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녔었다.
그러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해졌다.
카푸치노 위의 거품처럼 부드러워졌다.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면서 지랄스럽고 변덕맞은 내 성격도 웬만큼 너그러이 받아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 준다면 그것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것이 뭐 그렇게 잘못된 것이겠는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은 매력적이지 않다. 남들의 호의를 불순하게 이용하는 비겁한 사람이다.
미국 이모는 -미국에 사시는 둘째 큰 이모지만 어렸을 적부터 미국 이모라고 불러왔다- 날 만날 때마다 언제나 용돈을 쥐어주신다. 나에게 밥 한 끼를 사주기 위해 나의 스케줄을 조심스레 물어보신다.
미국에 있는 이모 집에 머물던 시절 나는 이모와 자주 술자리를 가지곤 했다. 사실 술은 이모가 마시고 나는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역할이었지만,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이모는 선천적으로 수다스러운 사람이다. 어떤 영화를 보면 너무 외로워서 물건과 대화를 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모라면 그 물건들을 두 손 들고 도망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수다스럽다.
수다스러운 사람의 대화는 일방적이다. 할 말이 많기 때문에 남의 말을 들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모와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뉴욕에서의 1년 동안 나는 한인 성당 커뮤니티 활동, 사촌동생의 학교 시스템, 가계의 매출액 여부 등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나는 이모와의 이런 일방적인 대화를 좋아한다. 이모는 유쾌하다. 그녀의 영어 이름답게 밝게 빛나는 유쾌함을 가지고 있다. 가끔은 미국 이모의 깊게 패인 슬픔이 유쾌함과 뒤섞여서 잔혹할 정도로 슬퍼 보일 때도 있지만서도.
나는 이모의 유쾌한 그리고 열정적인 수다를 듣는 것에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참여하곤 했다.
하지만 이모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고는 했다. 병상에 누워있는 나의 손을 붙잡고 그때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항상 말끝을 흐리셨다.
그러고는 항상 고맙다고 하시면서 오만원, 십만원씩 쥐어주고는 하셨다. 사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는데 받을 때마다 즐거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스멀스멀 그때 이모와 대화하기를 잘했어 라는 마음이 올라오곤 한다. 매력적이지 않다. 아 혐오스럽다.
외할아버지와 나의 장기 전적은 나의 전패이다. 나는 공격적인 성향의 장기를 두는 타입인데 반해 할아버지는 철저히 수비적인 장기를 두신다.
공격적인 성향의 장기는 포와 차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기 마련이다. 반면 수비적인 성향의 장기는 상, 마, 포, 차를 비롯해서 병과 사 까지도 활용하기 때문에 보통 공격적인 장기로는 수비적인 장기를 이기기가 힘들다.
외할아버지는 항상 수비적인 장기를 두라고 하셨다. 먼저 내부를 단단하게 하면 적은 스스로 무너지기 마련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 27살 즈음이었다.
할아버지가 던지는 미끼를 본 척도 안 하고 진영을 단단히 하는데 온 신경을 기울였더니 할아버지가 ‘차’를 허무하게 내주면서 무너지셨다. 어떤 수를 써도 할아버지의 첫 패배가 확실시되는 때에 할아버지께서 장기판을 엎으셨다.
외할아버지와의 전적은 나의 전패이다.
외할아버지와의 장기에서 패한 후에 큰외삼촌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큰외삼촌을 좋아한다. 괜찮은 사람이란 걸 단번에 알 수 있는 분이다.
큰외삼촌에게서는 장남의 느낌이 난다. 나도 장남이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물론 나는 장남이라고 옛날처럼 대단한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생을 뒷바라지하는 것도 아니지만, 큰외삼촌에게서 묘한 동질감 같은 것을 느낀다.
찾아뵙기 전에 먼저 연락을 드렸다. 큰 외숙모가 손에 깁스를 하셔서 챙겨줄 수 없다고 하셨지만, 대접받을 마음이 없었기에 그냥 찾아뵙고 인사나 드리겠다고 가볍게 말했다.
집에 찾아가니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아차 싶었다. 국에 조기에 한상 가득한 밥상을 보면서 나는 아직 배려하는 센스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매력적인 남자가 되려면 아직 한참이고 멀었다. 이모와 삼촌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때 암은 폭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물론 그 이후로도 쭉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죄송합니다. 악의는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