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김은 이번 생에선 과감히 포기한다(3)

29살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by 김탱글통글

나는 암 투병기를 정말 싫어한다. 앙상하게 뼈만 남아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자리에서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너무 싫다.

해볼 만큼 해봤는데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나는 모든 치료를 그만둘 생각이다. 생명연장 치료 같은 건 아무래도 너무 꼴불견이다.

병원을 위해서 내가 암 투병기를 쓴다면 그 병원의 매출은 분명 하락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꼴불견인 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것이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지인들이나 의사, 간호사가 ‘진심으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꼴불견이다.

병실에 있으면서 많은 환자들을 봤다. 병실은 전쟁터이다.

각자 그들만의 병과 치열한 전쟁을 펼치고 있다. 어떤 할아버지가 의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수술한 곳이 너무 아프다고 울고 있었다. 냉정하게 말해 보기 흉했다.

딱히 아픔에 관한 철학이라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픔은 철저히 고독하단 건 알고 있다.

아무도 알아줄 수 없다. 남의 팔다리가 잘리는 것보다 내 손톱에 박힌 가시가 더 성가신 법이니까.

아프다는 것은 철저히 혼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이런 걸 알아버린 나 자신이 불쌍하기도 하지만 이미 알아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아프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골수검사를 위해 굵은 주삿바늘을 골반에 꽂아 넣을 때에도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다.

비명을 지른다고 살살해달라고 빌어도 나아지는 건 없으니까. 의사가 수술이 끝난 후에 이렇게 독한 환자는 처음 본다고 했다.

골수 치료가 병원이 환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고통 중 하나라는 걸 안 것은 그 후이다.

동생과 일본식 선술집에 간 적이 있다. 처음에 나오는 샐러드를 본 순간 이 집을 아지트로 만들기로 동생과 다짐했다.

샐러드에 오이를 썰어주는 섬세함이라니.

어떤 요리를 내와도 정성을 가득 담을 집이라는 것을 뜻한다.

주문한 오코노미야끼는 역시 훌륭했다.

가다랑어포 이빠이 구다사이

“동생, 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된다면 생명연장 치료 따위는 하지 마.” 뜬금없이 튀어나왔다.

“알겠어,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화장해줬으면 해” 뜬금없는 말에 대답해주는 동생이 고마웠다.

“오빠는 어떻게 해줘? 역시 화장인가?”

“아니, 나는 그냥 묻어줬으면 하는데. 더 이상 몸에 어떠한 짓도 하고 싶지 않아.”

“알겠어. 꼭 그렇게 해줄게” 동생이 선심 쓰듯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걸 봐왔잖아.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의연하게 죽는 게 참 멋있어 보이더라.”

"죽으면 그냥 죽는 거지 의연하게 죽는 건 뭐야?" 이공계 석사인 동생다운 질문이다.

“어느 정도 치료를 받다 보면 의사들도 포기하는 순간이 생기거든 별다른 진전 없이 그저 약물만 계속 투입하는 거지.” 오코노미야끼의 가다랑어포가 잔뜩 올라간 부분을 한입 먹은 후 다시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기적 같은 희망을 가지고 어떻게든 아등바등 버텨보려고 하는 건 의연한 죽음이 아니야. 안쓰럽기까지 하지.”

“그래도 희망이 있으면 도전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아?”

“환자들에게 가장 잔인한 단어가 ‘희망’이야.”나는 치를 떨며 대답했다.

암 병동의 화장실 변기에는 항상 명언들이 붙어있었는데, 날 가장 화나게 했던 문구는

- 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손 안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나폴레옹 -이였다.

화장실에 붙어있던 글귀

희망이야 말로 꼴불견인 죽음을 만드는 원흉이다. 이 글귀를 써 붙인 사람은 크게 아파보지 않은 사람임에 분명하다.

이따위 응원보다는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것이 도와주는 거라는 것도 모르고.

방사선 치료 후 1년간의 평화로운 시간 후, 암 재발 징후가 보여서 입원을 했다. 조직검사 후 병실에서 누워있는데 젊은 인턴 의사가 와서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큰 키에 여느 인턴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던 인턴은 병원 생활의 무감각에 찌든 교수들과는 다르게 호탕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있는데 내가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 티가 났던지. 인턴이 말을 걸어왔다.

“환자분 뭐가 그렇게 떨려하세요.” 뭐가 우스웠는지 인턴은 호탕하게 웃었다.

“재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떨리네요.”

“아직 확진이 난 것도 아닌데 걱정하지 마세요. 희망을 가지세요!” 아... 나는 어렸고 의사라는 전문직이 건네는 과일은 너무 달콤했다.

“감사합니다. 안심이 되네요.”

암은 재발했고 희망이 내게 준 절망감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인턴이 희망을 주지 않았더라도 암은 재발했을 것이고 검사의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 인턴을 원망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찌질하고 고통스럽다.

아무래도 찌질하면서 고통스러운 것보다는 단순히 고통스러운 게 더 견딜만하니까.

쓰고 나니 나란 사람이 참 삐뚤어져 보인다. 그만큼 병원 생활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약에 취해 눈이 감길 때면 “아.. 이 정도 아팠으니까 이제는 죽겠구나. 아무렴, 몸이 이런 고통을 견딜 리가 없지. 안녕 세상아. 안녕 어머니. 아차.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아니요, 이틀째 똥을 못 눴어요.’ 따위로 끝나는 건 아무래도 부끄러운데. 아 이제 상관없으려나.” 따위를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곤 했다.

이렇게 아플 바에야 빨리 죽어버리고 싶은데 절대 죽어지지 않는다. 젠장. 아무리 죽을 의욕이 넘쳐도 내 몸은 아직 팔팔한 20대이다. 암에 걸린 몸이지만 튼튼하다.

미묘하다.

정말이지 주인을 닮아서 미묘하고 짜증 나게 하는 애매한 몸이다.

지겨웠다. 죽는 것을 기다리는 것조차 지겨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을 궁리만 했다.

한 번은 공기를 주입해서 수백 명을 죽인 미국의 사이코패스 간호사에 관한 글을 읽고서는 간호사가 주사를 놓을 때마다. “설마? 혹시?” 하는 기대를 품고는 했다.

저 안으로 공기가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하지만 자살할 용기 따위는 없었다. 아픈 것이 싫어서 죽고 싶었는데 자살을 하기 위해서는 아파야 한다.

그건 좀 아이러니하다.

자살도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견딘 나를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별 것 없다. 단지 자살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사하기를 기다리다 나도 모르게 살게 된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 아프다 보니 어느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롭고 조용한 일상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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