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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Dec 20. 2016

김탱통은 무엇으로 사는가?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쌀국수를 먹었다. 나는 소고기 볶음 팟타이를 시켰고 친구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매콤 해물 쌀국수 비슷한 음식을 시켰다. 내가 주문한 소고기 팟타이는 맛있었다. 면에 불향이 잔뜩 감겨있고 간장 베이스로 달콤 짭짤한 맛과 중간중간 씹히는 소고기와 계란 스크램블의 부드러움이 좋았다. 친구는 지금은 이름도 가물거리는 매콤 뭐시기를 보자마자 "어? 짬뽕라면이 나왔네?"라고 말했고 맛도 실제로 짬뽕라면이었다. 기껏 고민해서 주문한 음식이 11000원짜리 짬뽕라면이라니.. 친구는 옛날부터 그랬다. 항상 심각하게 고민한 음식은 상상보다 별로였고 약간 당황해하다가 결국 조용히 입 다물고 묵묵히 먹는다. 그 한결같은 모습이 날 안심시켰다.

밥을 먹은 후, 자주 들르는 커피집을 간다. 코코아와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자리에 앉아 떠들었다. 처음으로 이름이 실린 잡지를 건네주며 싸인도 해 주었는데 약간은 부끄러워 싸인 밑에 '번창하세요. 쌀국수 잘 먹었습니다' 따위의 말도 안 되는 멘트를 쓰고 잔뜩 웃어댔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주로 나이 들어감과 체력에 관한 주제였다. 친구는 일주일 이상을 눈꺼풀이 이유 없이 떨린다고 했다. 피곤하면 그런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친구도 휴식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공감했다. 카페에서의 시간 동안 몇 번이고 불쑥 튀어나오는 친구의 불안을 들었다. 죽는 것 아니냐며 엄살을 부리는 통에 "고작 눈꺼풀 떨림 따위로 암환자 앞에서 까불다니.." 따위의 농담을 주고받았다.

 






둘 다 각자의 이유로 피곤한 탓에 새해에 보자는 약속을 하며 자리를 매듭지었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친구의 눈꺼풀 떨림이 마음에 걸린다. 가소롭다는 듯이 받아쳤지만 사실 친구의 불안함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나일 것이다. 


암 치료가 끝난 후의 삶은 마치 자그마한 머그컵에 불안함이란 액체를 찰랑거리게 담은 채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잘 지내면서도 어느 날 피곤해서 얼굴이 약간 욱신거린다던지, 손 끝이 자꾸 갈라진다던지, 심지어 밥을 잘 먹고 배부른 직후에도 문득문득 시도 때도 없이 불안한 마음이 흘러넘치곤 하는 것이다. 그런 불안을 항상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스트레스받는 일이 아니다.


한 달에 몇 번씩은 꼭 죽게 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만약 죽게 된다면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상황은 암의 재발에 의한 죽음일 것이다.

의사에게 죽는다는 선고를 받는 순간 아마 펑펑 울 것 같다. 분노와 절망, 좌절과 슬픔이 뒤범벅된 눈물일 테지. 하지만 그 눈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단 슬픔만이 담겨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속에는 지긋지긋한 육체로부터의 해방감과 무력감으로부터 탈출한다는 기쁨이 들어있음이 분명하다. 죽음을 떠올리며 흘리는 눈물에 기쁨이 섞여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삶이 기쁘지 않다는 반증인 셈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을까? 난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었는데. 목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느냐는 질문에, 톨스토이는 '사랑'을 카잔차키스는 '자유'를 부르짖었으니 이제 나의 해답을 진지하게 찾아볼 때이다.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보고자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지, 그 무엇이라도 괜찮다. 정말 한심할 정도로 사소하고 찰나의 것일지라도 '이것' 때문에 살아가고 있구나 라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그런 다짐을 한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며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차의 붉은 후미등이 아름답게 수 놓인 도로에서 문득 느낀 떨림을 짓궂은 운명이 눈치채고서 질투심에 훼방 놓을까 두려워져, 너무 시끄럽게 뛰어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 무엇이라도 괜찮아. 순간이 온다면 나는 기뻐 울다가 나를 꼭 안아줄 거야.. 그리고 수고했고, 고생했고, 살아 있어서 다행이고,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말해줘야지.."









치열하고도 소소하면서 대단히 개인적이고 무척이나 쓰잘대기 없는 저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물론 마찬가지로 큰 기대는 안 하셔도 좋습니다. 조금씩 짤막하게 자주 쓰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잘 부탁드립니다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오늘 사랑한다는 말을 못 들으신 분들은 '♡' 이거 하나씩 주머니에 챙겨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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