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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희 Apr 27. 2021

캔버스 백과 가벼움

 2017년 봄에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이 시국에 떠올리는 유럽 여행이라니, 전생 이야기인가...?) 우리는 파리의 트렌디한 동네라 알려진 마레 지구를 찾았다. 그 거리에서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던' 편집샵 <Merci>를 들렀을 때다.

 

 Merci는 가히 듣던 대로였다.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마음을 방방 들뜨게 하는 예쁘장한 것들이 넘쳐났다. 그런데 그게 구경 온 관광객의 눈에서는 맞는데, 실제 지갑을 열어야 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또 달랐다. 구경의 초반부가 지나고부터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느낌마저도 살짝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내 주관인 것이 Merci 계산대의 줄은 한참이나 길었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인종도 다양했다. 아마도 내가 그저 그랬던 이유는 서울에서도 이른바 핫하다고 회자되는 곳인 압구정, 한남동, 성수동의 편집샵에서 느낀 감흥과 크게 다를 바가 뭐야? 했던 생각 때문 일거다. (여행하며 자주 K-문화의 수준을 실감한다.) 또 해외 여행지에서는 구매품의 '무게'를 빼놓고 소비를 논할 수가 없다. 그 까닭에 요래 저래 스킵하다 보니 별로 손이 가는 게 없기도 했다.


 2층부터 1층으로 찬찬히 구경을 마치고 막 매장을 빠져나가려던 참이었다. Merci에서 빈손으로 나오는 아낙네는 나 밖에 없을 거야, 하던 내 눈에 순간 뭔가 하나가 탁! 낚아 채였다. 잠깐만, 저어- 쪽에서 저게 뭐지. 가볍게 발도장이나 찍고 갈까나.


 캔버스 백인가?


 전면 하단에 Merci라는 하얗고 조그만 글씨가 박힌 걸로 봐서 자체 제작한 캔버스 백인 듯했다. 아, 생각해보니 캔버스 백은 에코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나 보다. 보통 동물 가죽을 이용하여 가방을 만드는데 반해 그것으로 만들지 않아서 에코(eco)백인 건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본 가방 역시도 직물, 즉 천으로 만든 가방이었다. 단순한 네모 형태에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끈이 달린, 만지작 거리던 건 말 그대로 canvas(천) bag(가방)이었다.


 나는 그전까지 캔버스 백이라는 걸 한 번도 들고 다녀 본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하면 그걸 '가방'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캔버스 백은 왠지 후줄근해 보인다, 저렴해 보인다, 같은 어떤 특정한 소신을 가지고 캔버스 백을 들지 않은 것은 아님을, 캔버스 백을 처음 만나 탐구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었다. '가방이라면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을 체크하는데 위와 같은 이유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이런 느낌들이라면 모를까?


 자체 제작한 기념품 치고 무척이나 튼튼한 천인 게 신선하네! (매장 기념품이라고 하면 왠지 휘뚜루마뚜루 만들었을 것 같은 이미지는 나에게만 있나?) 너무 얇아서 내용물의 비밀보장이 전혀 안되거나, 무거운 책 같은 건 손에 들어야 하고, 가벼운 것만 살랑살랑 담아야 하는 모순에 당착하는 가방 같지도 않았다. 나는 외출할 때 가방 외에는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가뿐한 상태를 좋아한다. 그런데 캔버스 백은 어쩐지 두 팔, 두 손을 '열일' 시킬 것만 같은 연약한 존재처럼 보이지 않나. 그런 점을 역으로 고려해봤을 때 그 백은 참으로 야무졌다. 짙은 네이비색의 천이 탄탄하고 톡톡했다.

 

 손잡이가 되어줄 끈과 가방을 이어주는 박음질의 모양새가 성의 있게 정교한 것도 놀라웠다. 이렇게까지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가방은 끈의 길이감도 중요하다. 몸과 가방이 친밀해지는 과정에서 가방이 몸에 어떻게 달라붙는지를 끈 길이가 결정하는데 그것도 적당했다. 가방을 어깨에 휘릭 둘러 메보니 허허, 거 참. 어지간히 엉덩이에 착 감기는 거라. 또 손으로 들었을 때 바닥에 질질 끌리지도 않고. 이거 뭐, '캔버스 백 is 천 쪼가리' 점점 나의 공식을 깨뜨리는 가방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겉면에 쓰인 레터링이 마음에 들어왔다. 굵은 산세리프 서체(san-serif : 획의 끝처리에 꺾임이 없는 직선의 간결한 형태)로 'SAVE THE SEA' 라고 덧입혀진 오렌지 색 문구가 좋았다.

 

 그 날 이후로 'SAVE THE SEA 캔버스 백'은 장장 4년 간 외출하는 나의 간택을 가장 많이 받은 놈이다.  그때 그 즉시 가방을 산 거다. 샀다 뿐이게? 심지어 두 개를 사서 하나는 쟁여놔야 하나 (정녕 그러진 않았지만) 진지하게 고민까지 했었다. 주말인 오늘 아침에 남편과 브런치를 먹으러 나갈 때도 '별생각 없이' 골라 잡았던 유일무이한 캔버스 백이다.


 요즘은 가치관의 변화로 real 가죽 가방은 사지 않지만 Merci에 갔을 당시의 우리집 옷장에는 가죽이나 가죽 모양을 띈 인조 가죽 가방’만’ 있었다. 그중에는 글로벌 명품이라 불리는 고가의 가방도 있었고, 흠모하는 국내 디자이너의 값나가는 가방도 두어 개 있었다. 그 날 만난 캔버스 백은 30~40유로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대략 5만원 정도 했다.


 몇 년 동안 밖에 자주 들고나갔던 가방을 머릿속에 줄 세워 보자니 웃음이 난다. 명백히 가격에 반비례하는 순이라서 말이다. 명품을 혹은 명품을 사는 행위를 비하하고 싶진 않다. 나는 '명품이란 이유만으로' 명품에 환장하는 사람이 아닌 건 맞지만, 명품 중에 (표현력이건, 컨셉이건, 마감처리건) 디테일이 아름다운 제품을 보면 실제 구매하는 것과는 별개로 ‘욕심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이 많이 가는 가방이 그것의 가격이나 명성에 정확히 역순이라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 볼만 한 재밌는 일이다. 명품 가방이 당근 마켓에 팔리지 않고 무사히 옷장에 잔재하는 이유가 그 가방을 샀을 때의 '추억' 내지는 '정' 때문 정도란 걸 생각하면 재밌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캔버스 백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벼운 게 최고 매력이다. 무게만 가벼운 게 아니라 그날 의상의 분위기도 덩달아 가볍게 띄운다. 블레이저나 린넨 재킷 같은 겉옷에 깔끔한 하의로 살짝 성숙하게 입었다면 어떤 가방을 매치할 것인지 외출 전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선다. 대체로 각이 살아있는 진지한 가방 하나와 SAVE THE SEA 캔버스 백, 두 후보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렇지만 캔버스 백은 가볍게 차트 1위의 명맥을 잇는다.


   잡힌 명품 백은 발라드 같다. 우아하고 기품이 있다. 그런데 어느 때는 이런 느낌도 없지 않다. 뭐랄까, 느끼하다고나 할까? 사람에 가방만 분리되어 동동뜨는 낌일 때가 그렇다. 맹목적인 명품 랑으로 다가올 때 유독 그런  같다. (허나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느끼한  당기기도 한다.) 캔버스 백은 약간 오버  하자면 힙합 같다. 투팍의 것처럼 간지 철철 흐르는 다크한 힙합 말고, 크러쉬나 PH-1 같은 뮤지션들의 청량한 비트처럼 친근하고 쉽다. 캔버스 백을 두른 날이면 보폭도 그에 걸맞게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다.


한강과 캔버스 백.jpg
댕댕이와 캔버스 백.jpg

 

 최근 들어 노트북처럼 무거운 짐짝들을 캔버스 백에 한가득 넣고 다녔더니, 이것도 끈의 이음새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앞에서는 손에게 아무것도 안 들게 해야 가방 다운 가방이라고 떠들어댔는데, 살짝 무겁다 싶은 물건은 반대 손에 들고 다니는 모순이 시작됐다. 나란 인간, 가방에 애지중지 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SAVE THE SEA 캔버스 백' 만큼은 입장을 좀 변호해주고픈 의무감 같은 이건 뭔가? 그동안 그가 증명해 낸 역량과 내게 선사한 즐거움이 지대하다. 빈 손 그거 놀려서 뭐하겠나, 무거운 물건쯤은 웬만하면 노는 손이 거들어야 가방도 숨이란 걸 쉬지 않겠는가? 아... 캔버스 백 만큼 가벼운, 갈대 같은 나의 마음이여. 나 아직은 그와 잘 지내고 싶다.


떠나지 마 캔버스 백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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