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국 2년 차인 지금은 마스크가 원래 내 피부였나, 싶은 착각마저 아스라이 든다. TV에서 노 마스크로 재채기하는 사람을 보면 화면에서 침방울이 튀어나올 리가 없음에도, 별안간 무의식에서부터 번지는 불쾌함, 두려움과 조우하기도 한다. 그런 걸 보자면 인간의 상황 적응력이 새삼 놀랍다.
생전 처음 겪는 전염병의 창궐도, 아무 데나 쏘다니면 안 되는 것도, 사람을 노트북 카메라를 통해 만나는 것도, 그런대로 받아들이겠는데 코로나가 터진 초반 나에게 의외의 복병은 마스크였다. 한 줌 될까 말까 하는 공간에서 숨을 쉬는 갑갑함은 코로나라는 현실을 가장 깊게 그리고 몸소 실감케 하는 대목이었다. 좀... 애잔했다.
어느 날 기대하지도 못한 장소에서 나는 마스크의 갑갑함을 해소해 줄 구원 투수를 만났다. 코로나 사태 반년만에 동네를 벗어나 한남대교 북단으로 넘어간, 마음먹은 외출이었다. 외출의 오롯한 목적은 명상할 때 피울 향초를 사는 것이었다. 명상이란 행위에 향까지 덧 입히는 건 얼마나 또 사랑스러울지, 향초를 고르는 내내 에버랜드 가기 전 날의 아이 같은 마음이 못내 반가웠다. 향은 네이버 쇼핑 창에서도, 쿠팡에서도 맡아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직접' 살펴야만 가능한 게 아직 남아있다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고 싶은 하나를 바구니에 골라 넣고는 다른 것들을 염탐하고 있었다.
한쪽에 곱게도 진열되어 있는 '히노키 오일'에 나는 급격하게 관심이 쏠렸다. "여기요!" 매장 점원 언니에게 이게 욕조에 넣는 입욕제인 건지, 헤어 오일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히노키 나무로 만든 테이블 표면에 오일링을 하는 건지 이것의 용도를 물어보는 게 좋겠다 싶었다. 상냥한 점원 언니 왈,
손님, 가장 좋은 건 마스크에 한 방울 떨어뜨리는 거예요.
마스크 좀 잠시 줘보시겠어요?
TV에서 비말이 튀어나올까 움찔하는 나에게 면전에서 마스크를 벗으라니... 순간 갈등했지만 상대라도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잠시 건네주었다. 히노키 오일 한 방울을 톡 떨군 마스크를 돌려받았다. 그리곤 평소처럼 얼굴에 뒤집어썼다. 웬 일...! 서울시 종로구에 히노키 숲이 있다면 여기다. 일본어인 '히노키'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편백'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편백나무를 말한다. 편백의 톡 쏘면서도 부드러운 향에 마스크 속 호흡이 탁 트이고 시원해졌다. 편백 향을 맡는데 눈 앞에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지는 느낌은 왠 걸까?
히노키 오일은 진정 마스크의 답답함을 타파해 줄 고마운 구원 투수였다.
오히려 어느 때는 마스크를 쓰지 않을 때보다 더 좋았다. 아로마 테라피를 즐겨 버리게 된 것이다. 아로마 테라피라고 하면 아로마 오일을 손에 비벼서 얼굴에 (특히 코 근처에) 스치면서 힐링을 하거나, 몸에 직접적인 마사지를 하면서 향을 즐기는 모양새다. 그런데 '마스크 아로마 테라피'는 별 손을 쓰지 않고도 마스크만 얼굴에 척 갖다 대면 편백향이 폴폴 난다. 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또 효과적인지. 나만 아는 나만의 편백 숲이다.
다소 거북스러운 취급을 받던 마스크는 그날 이후 나의 외출 메이트로 단숨에 입장이 바뀌었다. 미웠던 게 이내 예뻐지고, 예쁜 게 미워지는 게 이렇게 순식간이다. 내 삶의 오점이라 생각한 것도 잘만 극복하면 범접불가한 장점이나 특기가 되기도 한다. 마스크는 염치가 있다면 히노키 오일에게 최소 밥 한 번은 사야 할 것 같다. 이게 다 히노키 오일 덕분이니까. 하긴, 세상 만물 중에 덕분에 살아가지 않는 게 어디 있겠냐만. 공기 덕분에 (살아) 숨 쉰 나의 오늘도 이렇게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