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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흥행 속에는 소박한 휴머니즘이..

Humanism

by 김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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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지난주에는 전체적으로 정리된 시놉시스에 관한 얘기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포스팅을 준비하던 중 한 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걸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시놉시스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쓰고 있던 글을 조용히 덮어버렸다.


문제의 발단은 '초반몰입'이라는 이슈였다. 거장들의 순수문학 작품이 아닌, 보통의 대중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초반 몰입도가 흥행을 위한 1차 진입장벽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작가들은 살짝 전통적인 기승전결 구조를 비틀기도 한다. 원래는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의 순서로 가야 되지만, 독자들은 일단 발단 부분에서 흥미를 잃으면 그 뒤로 진도를 빼지 않고 그냥 중도하차해 버린다. 작가도 알고 독자도 아는 당연한 사실이다.


때문에 나는 전체 시놉시스 구상에 있어서 초반 3화 부분을 어떤 에피소드로 셋팅할지 고민 중에 있었다. 물론 내게도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다른 유수의 작품들에서는 이것을 어떤 식으로 처리했는지 작가 관점에서 좀 더 살펴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얼터드 카본(Altered Carbon)》이라는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그냥 이것저것 돌리다가 우연찮게 발견한 시리즈물이다.


소개멘트를 보고 초반 10여분 정도의 분량을 감상했다. 이 작품은 필자가 구상하는 근미래 SF물과 거의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사이버펑크 장르의 작품이었다. 첫 화면에 폭력성 선정성 높음이라는 태그가 달려있었고 영상은 생각보다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필자가 생각하는 소설적 방향과 소재나 주제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았다. 솔직히 약간 놀라기도 했다. 원작소설은 2002년에 나왔고, 넷플릭스 시리즈는 2018년에 개봉되었다. 작품에는 사람의 의식을 칩에 담아서 몸을 바꿔가며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그런 구상이 등장한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이런 아이디어를 적어도 그 무렵에는 떠올리지 못했다.


나는 자극적인 영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다 보면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도 10~20분 정도밖에 보지 못했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다. 그러나 이 정도 혁신적인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면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아주 수준이 높은 작품이다. 그렇다면 흥행에 성공해야 맞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얼터드 카본'이라는 단어는 없다. 모르는 작품이다. 그래서 나는 궁금해졌다. 과연 이 작품의 대중적인 흥행성적은 어떠했을까? 내가 쓰려고 하는 작품이 딱 이런 스타일인데.. 이 작품이 흥행에 성공했다면 내게도 힘이 될 것이고, 실패했다면 이건 좀 큰 문제다.



휴머니즘 : 철학적? 대중적?


원작 소설의 작가는 리처드 K. 모건(Richard K. Morgan)이다. 이 작품은 2002년 공개되었고 2003년에 SF소설 분야에서 중요한 상으로 여겨지는 필립 K. 딕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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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원작소설은 SF매니아층을 놓고 본다면 흥행에 성공했다. 또 깐깐한 비평가들의 눈높이에도 부합하는 나름 수준 높은 철학적 휴머니즘 세계관을 깔고 있다. 이에 비해 일반 대중을 수요층으로 하는 넷플릭스의 흥행성적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시즌2를 끝으로 종영되었다. 내가 잠깐 감상했던 영상은 시즌1의 첫 화였다. 매니아층에게는 어필했으나 대중적 흥행은 실패한 거다. 이건 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대중적 흥행을 끌어낼 것인가'가 아니라 '이 정도로 좋은 주제와 참신한 소재를 갖춘 작품이 왜 대중적으로는 먹히지 않았을까'하는 것이다. 단순히 나와 같은 취향문제였을까..


챗GPT와 이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눈 결과, 결론적으로 두 가지 문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이 작품에 대중적 휴머니즘이 없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몰입에 어려움을 느낄 정도로 복잡한 설정과 세계관이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한 이슈가 된다. 오늘은 첫 번째 문제인 '대중적 휴머니즘'을 파고들어 보자.


나는 챗GPT에게 물었다. '휴머니즘 측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어때?'


이 작품은 영상만 보고 있자면 휴머니즘보다는 메카니즘을 주제로 한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의외로 이 작품은 휴머니즘을 듬뿍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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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은 휴머니즘인데.. 위와 같은 휴머니즘은 좀 많이 어려운 철학적인 휴머니즘이다. 작가는 의식을 칩에 담는다는 설정을 통해,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것이 사라지고, 육체를 갈아타는 경험을 통해 '나'라는 것의 정체성이 상실되며, 이러한 경험이 돈 많은 소수에게만 허용됨으로써 '불멸'조차도 자본주의적인 현상이 된다는.. 여러 가지 철학적 휴머니즘을 논한다. 이거 내용만 보면 휴머니즘 맞긴 맞다.


하지만 보통 휴머니즘이라고 하면,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보듯 친구들과의 사랑과 우정이라든지, 무협 쪽 히트작인 '화산귀환' 같은 작품에는 억울하게 멸문당한 문파의 복수, 반지의 제왕 같으면 마족의 야욕에 저항하는 인류애 같이 쉬운 휴머니즘을 말한다. 거창하지 않고 철학적이지 않으며 복잡하지 않다. 그래서 대중적이다. 한마디로 소박한 휴머니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챗GPT는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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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얼터드 카본'이 매니아층에는 어필했지만 일반대중 흥행에 있어서는 그리 부각되지 않았는지 이제 그 이유가 선명해졌다. 꼭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철학적 휴머니즘을 다룬 작품이 대중적으로 흥행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몇 가지 엇비슷한 사례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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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챗GPT가 어벤져스를 철학성이 낮고 대중성이 매우 높다고 제시한 것을 보는 순간 빵 터졌다. 헐리우드에 어벤져스가 있다면 우리에겐 무협이 있다. 그렇다면 무협 역시 어벤져스와 마찬가지로 평가될 것이다. 현재 기획 중인 필자의 신작 구상은 근미래 SF 판타지 소설에 동양식 무협의 클리셰와 감성을 접목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표대로라면 얼터드 카본에 어벤져스를 접목시키겠다는 얘기가 된다. 이건 그냥.. 상충되는 모순(矛盾) 아닌가. 이까지 생각이 미쳤기 때문에 나는 지난주에 포스팅을 올릴 수가 없었다.



소박한 휴머니즘으로 시놉시스 수정


오늘에라도 포스팅을 올리는 이유는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방법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해법을 찾은 것이 아니라 방법을 정리한 것이다. 모순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에는 딱히 뚜렷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해법을 찾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뭔가 방법은 찾아야 된다.


지난주까지 기존의 구상에 있어서 '주인공 서사'는 솔직히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소재와 세계관 부분에서 자신이 있었고, 빌런에 대한 체계적인 설정을 생각해 둔 것이 있어서 주인공 자체는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이제 보니 참으로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부분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정리했다.


기존에 아무 생각 없이 추구했던 철학적 휴머니즘은 철저히 수면 아래에 숨긴다. 이건 지난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던 바다. 하지만 오늘 그 필요성이 더욱 확실해졌다. 그 대신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휴머니즘 서사를 추가한다. 그리고 그 서사는 주인공의 이야기여야만 된다.


주인공 서사라.. 지금까지 구체적인 고민이 없었던 부분이다. 또 더 솔직히 말하면 이런 게 왜 중요할까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나는 말로는 소설을 구상한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소설 스타일로 쓰는 것을 준비한 셈이다. 그러니까 주인공보다는 소재와 세계관에 충실했던 거다. 지난 포스팅에서 빌런의 특징을 살폈는데 그나마 그런 생각이라도 떠올렸던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에세이에는 주인공 서사가 필요 없다. 주인공이 없으니까. 하지만 정작 잘 읽히는 소설에는 주인공 서사가 기승전결을 관통하면서 독자들을 끌고 가는 가장 힘 있는 요소가 되는 것 같다.


주인공 서사란 것에 대해 곰곰 생각을 했다. 기존에 필자는 우리의 주인공이 타락한 AI의 만행을 응징하는 스토리를 구상했다. 어떤 세계관 하에서 어떤 소재를 동원해서 주인공이 놈을 무찌를 수 있을까 이런 걸 생각했다. 오늘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 왜 꼭 우리의 주인공이어야만 하는가? 그리고 왜 꼭 놈을 무찔러야만 하는가? 이게 주인공 서사인 것 같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일주일을 꼬박 고민했다. 소박하고 원초적인 휴머니즘 같은 것을 고민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억지로 하나 만들어냈다. 나중에 또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걸로 가기로 했다.


주인공은 쌍둥이 형제였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둘은 아버지의 절친 아저씨 집에서 자랐다. 형제는 서로에게 깊이 의지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형은 운동을 잘했고, 동생은 공부를 잘했다. 또 아저씨 집에는 동갑내기 여자아이가 있었다. 성인이 되면서 형제의 길이 갈라진다. 형은 빌런 AI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게임 업체로, 동생은 샤만테크로. 형이 AI의 하수인이 되었다는 것은 한참 후에야 알게 된다. 동생은 형을 구하기로 한다. 한편 타락 AI 역시 무찔러야 된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형제가 기억을 공유하는 부모가 있다.


별 것 아니라고 보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난생처음 해 보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얘기가 옆길로 샐까 봐 말은 안 했지만, 필자의 실제 모습은 휴머니즘과는 거리가 먼 차가운 성격이다. 소재나 세계관 같은 것들은 얼마든지 쉽게 머리를 쥐어 짜낼 수 있다. 하지만 휴머니즘이라.. 그것도 일반 대중이 쉽게 공감하는 휴머니즘이라.. 필자가 제일 못하는 게 이건데.


오늘 포스팅에서 지적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 중에 '독자의 이해가능성'이란 것이 있었다. 이것 역시 휴머니즘만큼이나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다. 이건 다음 주에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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