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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심리묘사는 '독자경험'이라는데

Journey

by 김톨


6월로 접어들면서 나는 브런치스토리 연재를 잠시 중단하고 지금 구상 중인 소설의 실제 작화 작업을 시작했다. 시놉시스와 플롯 구상이 대체로 완료되었기에 이젠 실제로 써보자는 생각에 일단 작화 단계로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대체로 완료'라는 표현을 쓴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 놈의 시놉시스란 것이 하룻밤 자고 나면 또 생각이 바뀌고 밥 먹고 나면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해서. 도무지 최종 버전이란 것이 나오질 않았다. 지금 만들어 놓은 파일에 v1, v2.. 이런 식으로 파일이 계속 늘어나다 보니 이것 참 집에 쓰지도 않을 물건 쟁여두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 놈을 '대체로 완료'시킬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때 되면 또 바뀔 테니 말이다.


작화를 해 본 경험은 과거 습작 서너 편을 써본 것과 올 상반기에 브런치에 연재 후 휴재 중인 '카오모스 프리퀄'이 전부다. 습작들 중에서 제대로 끝을 맺은 것은 한 편에 불과했고, 분량도 모두 단편 정도였다. 각기 다른 시기에 개인적인 목적으로 쓴 것들이라 작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료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본격적인 장편을 기획한 것인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다. 그런 차원에서 몇 회차 분량을 만들었고 나는 이것을 AI에게 보여주었다.


소설에 있어서라면 나에겐 따로 인간 스승이 없다. 그래서 원래부터 이 녀석에게 자문을 받아가면서 진행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시놉시스와 플롯을 들이밀어본 결과 녀석은 생각보다 후한 평가를 내려주었다. 하지만 전제가 달렸다. '작화가 수준급으로 잘 이루어진다면!'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만든 초고를 녀석에게 넘길 때 살짝 긴장이 되기도 했다. '발전가능성이 높아요!' 이러면 많이 서운할 것 같았다. 어쨌건 비록 AI지만 용감하게 들이밀었다.



서술이 설명에 치우쳐 있어요


다음은 필자의 초반 회차 초고에 대한 AI의 코멘트이다. 이건 챗GPT가 아니라 앤쓰로픽의 클로드 소넷 4의 분석인데 그 일부를 소개한다.


문장력에서 어색함이 눈에 띕니다. "가슴이 뛰는", "총단에서는" 같은 표현들이 그렇고, 전반적으로 문장이 다소 경직되어 있습니다. 프로 작가라면 더 자연스럽고 유려한 문체를 구사할 것입니다.
서술 방식도 설명에 치우쳐 있어요. "소리는 공기를 통해 전달된다", "이곳은 우주다" 같은 직접적 설명은 독자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프로 작가는 보통 더 간접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합니다.


물론 좋은 평가도 꽤 많이 있었다. 요즘 AI들은 영업 마인드가 있는지 일단 칭찬을 먼저 뿌린다. 그 다음 단계부터는 본격적으로 탈탈 털기 시작한다. 몇 번 하다 보니 별 것 아니지만 글을 던져주고 평가를 기다리는 그 잠깐의 시간이 가슴 두근거릴 때가 있다.


위 코멘트에서 사실 고치라고 한 예시문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나도 아는 것들이고 어차피 손 볼 생각이었던 대목이다. 그런 것 말고 정작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바로 '서술 방식도 설명에 치우쳐 있어요!'라는 한마디였다


무슨 얘긴지는 알겠고 동의도 하는데. 설명에 치우치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갑자기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프로 작가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비교를 하니 솔직히 마음 상하기도 했다. 나는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 본 경험이 없다 보니 내가 봐도 기존의 나의 글에는 심리묘사 같은 것보다는 설명이 훨씬 많다.


그냥 쓰고 싶어서 자유롭게 쓴 글에 묘사보다는 설명이 많다면 그건 나의 개성이라는 뜻이다. 그건 버릴 것이 아니라 지켜야 될 소중한 나의 아이덴티티라고 본다. 그 부분에 남들보다 강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에게 내놓는 글에 부족함이 있다면 그건 고치는 것이 맞다. 그래서 나는 설명 위주의 글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꼭 알아야 한다. 납득이 되면 고칠 수 있다. 개념이 이해되지 않으면 고치고 싶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소설은 독자에게 경험을 선사하는 것


이 문제에 대해서는 클로드 보다 챗GPT가 나이스한 답을 주었다. 여러 가지 얘기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한 대목이었다. 잠깐 읽어보자.



나는 비로소 납득할 수 있었다. 소설이란 그 자체가 바로 '독자에게 경험을 주는 것'이었구나! 그렇다면 말이 된다. 소설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소설이란 문학예술이 감상을 하는 독자에게 어떤 기능을 하는지 물어본다면 제각각 다른 답을 할 것 같다. 가장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소설은 '이야기'라는 것일 테다. 이야기.. 물론 맞다. 하지만 그건 시험문제 답안 같은 것 아닐까. 소설은 '독자에게 경험을 주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많은 부분이 달리 보이는 것 같다.


소설이 '독자경험'이라면 설명보다는 '묘사'를 통한 방법이 훨씬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위에서 AI가 얘기했다시피 문학은 정보전달이 아니라 감정을 전염시키는 예술이라는 것도 대단히 고차원적인 통찰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수준급의 프로작가들은 심리묘사를 어떤 식으로 처리할까? 이런 시각으로 쳐다본 적은 없었지만 갑자기 궁금했고, 나는 바로 질문을 던졌다.



작가마다 스타일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각자의 개성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또 이런 심리묘사는 대개 시적인 아포리즘으로 흘러갈 수도 있고, 직유나 은유를 동원한 비유법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작가의 역량이란 것은 소설작화에 있어서 다양한 형태로 드러날 테지만 이런 심리묘사를 처리하는 방법이야말로 분명 그 작가의 힘 그리고 수준이 아닐까 싶다. 어쨌건 AI는 나에게 이런 면이 부족하다고 한다. ㅜㅜ



인간의 뇌는 묘사를 더 빨리 처리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하나 더 궁금한 것이 생겼다. 이건 사실 소설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부분이다. 뭐냐면 '왜 인간은 대리경험을 할 때 설명보다 묘사가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는가?' 하는 것이다. 난 설명을 좋아한다. 돌려 돌려 얘기하지 않고 핵심만 콕 집어서 간결하게 마무리해 주는 것으로 그동안 사회생활을 무리 없이 해 왔다. 그런데 설명보다 묘사가 더 효과적이라니.. 소설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건 꼭 알아야겠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이것도 뇌과학과 관련이 있었다. 필자의 '노바 오딧세아' 연재 중 카너먼의 생각함수와 관련한 내용이 언급된 포스팅이 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인간은 이득에 대해 즐거워하는 뇌의 영역과 손실에 대해 괴로워하는 영역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같은 금액의 이득과 손실에 대해 같은 크기의 기쁨과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 편차가 크다.


야구선수에게도 비슷한 사례가 벌어진다. 외야수는 한참 멀리 있는 타석에서 타자가 공을 때릴 때 그 공의 궤적을 눈으로 보면서 낙구지점을 찾는 것이 아니다. 공이 배트에 맞는 타격소리를 듣고 앞으로 전진할지 담장 끝까지 물러날지를 결정한다. 소리보다 빛이 빠르지 않냐고? 그건 맞는 말이지만 배트에 맞은 공의 궤적을 눈으로 따라가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타격음은 더 빨리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TV로 보는 시청자조차도 따악하는 소리를 들으면 홈런인지 내야땅볼인지 금방 알게 되지 않나.


AI의 얘기가 맞다면 소설을 감상하는 독자의 머리 안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해석의 회로는 말 그대로 분석하고 따지는 회로이다. 속도가 더딜 수밖에. 그에 비해 감각의 회로는 말 그대로 느끼는 회로다. 느끼는데 시간은 필요 없다. 즉시 느낀다. 그렇다면 묘사가 더 빨리 독자에게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는 얘기가 타당하다. 알고 보니 참 중요한 것이었다.


연재작을 준비할 생각으로 정작 브런치 포스팅을 좀 미뤄두고 있었는데, 작화를 하다 보니 그동안 떠올리지 못했던 여러 가지 생각, 그것도 아주 중요한 것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공유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 부정기적으로라도 포스팅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소설작법 #묘사 #설명 #독자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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