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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므네 Jun 12. 2023

여보, 나 탈출해도 돼?

’나 지금 스트레스받고 있네.‘

미간에 힘이 빡 들어가고, 목 뒤부터 어깨까지 묵직하다. 가슴과 얼굴에 붉고 뜨거운 뭔가가 터질 것 같다. 쉬지 않는 “엄마!” 소리에 대꾸를 하는데 숨이 가쁘다. 고운 소리가 나가지 않는다. ‘나 지금 스트레스받고 있네.’ 생각한다.


전쟁통 같은 상황에서 태평하게 바닥에 이불 깔고 누워있는 신기한 남편 옆에 따라 누웠다. 아이들이 내 위에 마구 올라온다. 아빠 위에 올라가라고 했는데도(남편은 마사지 같다고 아이들이 올라타는 걸 좋아한다.) 얄밉게 “아니, 엄마 위에!”라고 대답한다. 먹던 숟가락으로 장난을 치다 이젠 던질 기세인 둘째에게 “안 돼!”를 외치고, 남편에게 통보하듯 묻는다.


“여보, 나 탈출해도 돼?”




아이들에게 짧은 만화 두 편을 틀어주고, 식탁을 대충 정리한다. 가방 안에 아이패드, 키보드, 내면 소통 책, 잉크까지 꾸역꾸역 보부상 가방에 욱여넣는다. 그리고 지갑과 노트, E-book이 들은 빵빵한 손가방. 손목에 무리가 갈 것 같은 가방 두 개를 들고 나와,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턱 내려놓는다. 출발하려니,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묶기만 하고 안 가져온 게 생각난다. ‘하…’ 다시 집에 들어가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두 손가락으로 집고, 잠든 남편을 조심히 지나, 혹시나 누군가에게 붙잡힐까 현관 미닫이 문을 조용히 닫고 현관문을 나온다.


드디어 차를 타고 집을 나선다. ‘혼자다! 만세!’ 외치고 싶은데 카페에 자리를 잡기 전까지 아직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영화 <쇼생크 탈출> 저리 가라다.


엄마의 모든 시간은 가족의 시간에 포함되어 있다. 가만히 있다간 엄마라는 이유로 나의 시간은 모두가 빌려 쓰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요즘 나는 가족에게 빌려 준 내 시간을 다시 조금 빌려온다. 조금 뻔뻔하게, 살짝 눈치 보여도 모른 척.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모임을 한다. 머릿속을 맴돌던 문장을 몇 글자라도 눈에 보이게 남긴다. 빌려 온 시간들을 모아 나는 내가 된다. 시끄러운 음악과 옆 테이블의 수다 소리는 금방 음소거된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고요함 속에 나를 찾는다. 내가 된 나의 말을 받아 적으려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내가 맘에 든다.




방금 탈출한 따뜻한 감옥에서 전화가 온다. 시끌벅적 아이들 소리. 올 때 뭐 사 오라고 난리다.


“여보, 우릴 잊지 마.”

“아니, 잠깐만 잊을게. 나 나온 지 30분도 안 됐거든? ”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 사랑스럽고 감사하고 힘들고 원망스러운 존재. 글을 쓰고 나면 나는 다시 사랑만 가지고 집에 돌아갈 것이다. 쓰고 나면 나에겐 좋은 것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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