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끝나고, 꽤 그럴싸한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카페에는 리드미컬한 알앤비 힙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 손엔 붓펜이 있었고 그 밑엔 종이가 있었다. 붓끝으로 춤을 추었다. 붓이 멜로디를 타고 흐르다 ‘두둠칫’하는 부분에 같이 ‘두둠칫’ 했다. 모든 감각이 신나게 놀았다. 노래가 끝나고, 꽤 그럴싸한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필통에서 가장 밝은 펜을 찾아 ‘두둠칫’ 부분을 칠하고 얼굴도 그려주었다.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종이와 펜을 든 내 안의 아티스트는 마구 뛰고, 날아다녔다. 생각하는 모든 것을 시도할 수 있었다.
디지털은 무한하고 편리하다. 언제든 바로 삭제할 수 있다. 그건 실수를 허용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모든 것을 실수로 여기게도 한다. 그 안에서는 많은 것이 가득 생겨났다가 아주 간단히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타노스의 ‘딱’처럼. 나는 컨트롤 z 없이 그리는 것이 두려웠다.
컴퓨터는 당신의 아이디어를 쫑내기에 딱 좋다. …
컴퓨터 앞에선 왠지 엄격한 완벽주의가 발동되어 우리는 아이디어를 갖기도 전에 아이디어를 편집하기 시작한다.
오스틴 클레온,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아날로그는 흔적을 남긴다. 하다 못해 지우개 자국이라도 남긴다. 진짜 삶과 닮았다. 요즘 아날로그의 손맛을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