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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사람들, 특별한 영화
<학교 가는 길>

영화 <학교 가는 길> 정난모 어머니, 김정인 감독 인터뷰

정난모입니다. 영화에서 재준이 엄마로 나오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학교 가는 길 제작한 김정인입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릎을 꿇은 어머니들이 있다. 영화 <학교 가는 길>은 발달장애인의 어머니들이 특수학교를 짓기 위해 투쟁한 과정과 그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푸르른 나뭇잎이 하늘을 채우는 5월, 영화의 빛나는 주역인 정난모 어머니와 김정인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과 함께 영화 <학교 가는 길>, 그들의 일상과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았다.


*정난모 어머니의 자녀 김재준 군은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인터뷰 속 삽입된 그림들을 통해 그를 간접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김재준 군의 그림. 굵은 선의 사용, 다양한 색감과 크기의 사각형들이 돋보인다.



영화 <학교 가는 길>을 처음 봤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정난모 (이하 정) 낯설고 신기했죠. 한 컷 한 컷 영화 속 장면이지만, 모두 저희에게는 과정이잖아요. 살면서 제일 열심히, 강렬하게 살았던 순간들을 영화로 만들어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김정인 (이하 김) 저의 마음 속 가장 일 순위 관객분들이 우리 부모님들이셨어요. 그래서 부모님들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실지가 큰 두려움이었어요. 막상 보셨을 때, "애걔!" 이러시면 안 되잖아요.


감독님, 많은 분들이 영화 너무 잘 만드셨다고 칭찬했어요. (웃음)


영화를 보며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감독님께서 이렇게 영화를 구성하신 계기가 있으셨나요?


주민들이 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이유를 조사했을 때, 장애를 향한 차별 이전에 가난한 지역 주민들을 향한 뿌리 깊은 차별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런 근본적인 이유를 함께 담아야 영화가 균형감을 잃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입장만 다뤄졌다면 지금처럼 많은 공감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정말 균형도 잘 이루고 따뜻한 영화인 것 같아요. 눈물 포인트도 있고, 웃음 포인트도 있고 다양하잖아요.


어머님들께서 농성을 하며 춤을 추시는 장면이 웃음 포인트였어요.


 이은자*가 춤을 못 추는 거고요, 저는 조금 나아요. (웃음) 저희가 농성하면서 요구할 내용은 강하게 요구하지만, 늘 심각하지는 않아요. 긴 시간 동안 함께 있으면서 더 친해지고,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이은자 님은 영화 <학교 가는 길>에 출연하는 어머님들 중 한 분이다.


춤 말고도, 어머님들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이들 없는 틈에 엄마들끼리 자조모임*을 가져요. 강사 분들을 초청해 미술, 심리, 운동 교육을 받으면서, 저희 걸로 만들 수 있는 영양가 있는 활동을 하려고 해요.

*자조모임은 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며 도움을 받는 모임이다.


김재준 군의 그림. 형형색색의 생명체들이 한 곳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비장애인이 발달장애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나요?


발달장애인이 갑자기 손뼉을 치거나, 겅중겅중 뛰는 걸 낯설어하는 건 당연한 반응이에요. 그래서 가까워지려면 익숙해져야 하고, 익숙해지려면 많이 만나야 해요. 아이들의 그런 행동들도 자주 보면 '그냥 루틴인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김 잘 모르고, 접해보지 않았을 때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는데, 자주 만나다 보니 그게 아니란 걸 너무 쉽게 깨달을 수 있었어요.


비장애인으로서, 발달장애인 분들께 배우게 된 부분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우리 아이들은 계산된 삶을 살 수가 없어요. 계산해서 사람을 대할 수 없으니까 솔직하죠. 저는 제 아이 재준이 덕분에 많이 웃어요. 재준이 때문에 웃는 게 집안의 포인트일 정도에요. 다른 아이들도 자세히 보면 하나씩 매력이 있답니다.


매력덩어리입니다, 매력덩어리.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말 순수하고 솔직한 친구들이에요. 또 친구들마다 다르지만, 굉장히 꼼꼼한 편이에요. 한 사람, 한 사람 찬찬히 보면 비장애인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어요.


맞아요. 자폐 친구들이 특별히 잘할 수 있는 영역들이 분명히 있어요. 예를 들면, 비장애인은 반복적인 루틴을 견디기 힘들어하거든요. 우리 친구들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김재준 군의 그림. 두 그림 모두 톡톡 튀는 색감의 사용이 돋보인다.


이런 장점을 살려서 발달장애인 분들이 사회에서도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어렵게 학교를 다니지만, 많은 친구들이 졸업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이런 친구들에게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면 우리 사회 속에서도 능동적으로, 큰 역할들을 많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 예전에 단팥빵 만드시는 사장님이 계셨는데, 우리 친구들이 빵에 들어가는 팥 소를 너무 성실하게 만들어서 계속 채용을 해주시더라고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도 꼼꼼하게 해내니까요. 이렇게 작은 역할이라도 맡겨주시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 <학교 가는 길>을 누구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으신가요?


사회복지, 사범대 학생들처럼 관련된 직업을 택할 분, 국회의원 분들처럼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분들이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중고등학생 교육용으로도 좋아요. 저희 조카가 고등학생 남자애인데 영화를 보고 엉엉 울었대요. 엄마들이 투쟁해서 얻어낸 게 다른 것도 아니고 학교라서 너무 충격이었다고요.


 다 보셔야 됩니다. (웃음) 아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선생님들과 제 또래의 엄마, 아빠들이 많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셨던 주민 중 저와 동년배였던 아빠가 한분 계셨거든요. 그런 분들도 영화를 보시면 조금 더 이해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김재준 군의 그림. 꼼꼼한 채색과 상상력 넘치는 구성이 돋보이는 트럭의 모습이다.


영화 <학교 가는 길>이 두 분께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영화가 우리 부모님들께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재준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부모님들께서 힘들었던 속내를 꺼내 주셨을 때, '많이 외로우셨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작품을 보시고 어머님, 아버님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있다는 걸 느끼셨으면 했어요.


정말 힘을 많이 받고 있어요, 감독님.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우리 아이들이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 이 영화가 제일 재밌었대요. 아는 친구들이랑 엄마들이 나오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스크린을 가리키면서 "재준이 나온다, 지현이 나온다." 하면서 정말 신나게 봤어요. 그만큼 <학교 가는 길>은 저희와 아이들 모두에게 축제같은, 선물같은 영화예요.


감독님께서 '과거에 부모님들이 많이 외로우셨겠다'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아요.


제가 어렸을 때는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소통창구도 없고, 어딜 가든 거절당하기 일수였거든요. 하루는 홀로 성당 미사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모르는 신자의 장례미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엄청 울고 나왔어요. 그런데 울고 나니 엄청 속이 시원한 거예요. 그 후로도 죽고 싶도록 힘들 때에는 장례미사에 갔어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객관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고, '그래도 살아야 되지.'라고 다짐하고 왔던 것 같아요. 특이하죠? 그렇게 장례미사가 저에게 위안이고, 에너지원이 됐어요.




아이가 좋았다가, 힘들었다가 하는 건 일반인들도 똑같잖아요.
단지 아이가 장애가 있는 것뿐이거든요.
그 안에서 저희도 같이 성장하고 배우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영화 <학교 가는 길>이 자신과 재준이를 평범한 사람으로 비춰주었기에 좋았다는 정난모 어머니였다. 그만큼 김정인 감독은 영화 속 발달장애인과 그의 가족을 보통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전달해 냈다. 정난모와 김정인, 두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발달장애인과 자연스럽게 일상을 공유하는 날을 조금이나마 더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그들의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 그를 통해 더 나아질 세상에 대한 희망을 느끼게 된 5월의 푸르른 저녁이었다.



Article by

키뮤매거진 이현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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