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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디자인, 세상을 바꾸는 디자이너

미션잇 김병수 대표

포용력 있는 놀이 공간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영상



매거진 <MSV>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휠체어를 타고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을 위해 만드는, 햇빛이 반사되지도 않고 멀리서도 잘 보이는 안내판. 이 안내판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뿐 아니라 눈이 좋지 않은 어르신들의 불편함까지도 해결해줄 거라는 이야기. 미션잇의 김병수 대표님이 정의하는 더 나은 세상은 바로 이런 세상이에요.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세계, 그래서 결국은 우리 모두를 포용하는 세계.


지난 12월 초 청계천이 내려다보이는 세운상가 근처에서, 미션잇이 기획하고 디자인한 <Play for All> 전시가 열렸어요.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모두가 놀 수 있는 공간을 체험하는 전시였죠. 어쩌면 원대한 듯도 보이는 '포용력 있는 사회'를 가장 간결하게 압축하고 가장 실제적으로 구현해낸 공간에서, 전시 손님을 맞는 김병수 대표님을 만나보았습니다.


* <Play for All> 두 번째 전시는 12월 24일 금요일까지, KOTRA 1층(서초구)에서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과 관람 바랍니다.






지난 <키뮤브릿지 네트워크 포럼>에서 ‘포용력 있는 고용 환경’의 사례를 소개해 주셔서 무척 감사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 응해 주신 것도 감사드리고요. 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디자인과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포용력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소셜벤처 미션잇의 대표 김병수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받지 않는 ‘포용력 있는 사회’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MSV>라는 매거진을 만들고 있어요. 지금 진행 중인 <Play for All> 전시처럼 실제적인 것들도 디자인하고 있고요.

 

저는 <MSV>를 통해 미션잇을 알게 되었는데, 내용이 굉장히 알차더라고요.

<MSV>는 ‘Magazine for Social Value’의 약자인데요. 전문성을 갖추면서도 대중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잡지가 소셜섹터에도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디자이너, 개발자, 정책 입안자를 비롯한 다양한 독자에게 ‘포용성’에 대한 실제적인 정보와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책이고요. 보편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디자인이 우리 사회에 보편적인 혜택을 준다는 걸 <MSV>를 통해 알리고 싶습니다.





<MSV>가 약자의 목소리를 대신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깊이 있는 소비자 분석에도 놀랐고요. 이런 꼼꼼한 조사와 분석을 어떻게 하시는 건가요?

필요한 분들을 인터넷으로 찾아 일일이 연락했어요. 제품 디자인을 할 때부터 실제 사용자의 의견을 듣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는데, 그게 이어져 오는 것도 같네요. 상상으로만 디자인하면 실사용과는 거리가 먼 제품이 나오거든요. 혼자 머릿속으로 디자인하는 것과 사용자의 의견을 듣고 디자인하는 건 엄청난 차이예요. 책이나 전시 기획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MSV> 1호 주제는 ‘Mobility’, 2호 주제는 ‘Job’이에요. 저는, 직업이 있는 장애인을 다룬 2호에서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신 게 눈에 띄더라고요.

실은 저도 이번 <MSV>를 만들며 바로잡게 된 편견이에요. 보통, 장애인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그가 무언가 잘 해내면 ‘장애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걸 해냈니?’라고 묻곤 하잖아요. 그런데 저도 <MSV> 2호 주제를 이렇게 표현했더라고요. “장애를 갖고 있으나 꿈을 실현해나가는 분들을 만났다.” 장애인을 ‘역량 미달’인 사람으로 비추는 표현은 아니었는지 반성했어요. 물론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더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예를 들어, 점자책과 음성책의 부족으로 시각장애인이 공부할 때 제약받을 수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애인이 ‘마이너스’인 사람은 아니거든요. 모두가 그렇듯 강점과 약점이 있는 사람이에요.


키뮤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그래서, 그분들의 강점은 직업으로 연결되게 이끌어내고 약점은 협업으로 보완해내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다룬 <MSV> 3호는 1월에 나온다고 들었어요. 그다음엔 또 어떤 소셜이슈를 다루실 계획인가요?

4호 주제로 ‘시니어’를 생각하고 있어요. 고령층의 디지털 접근성을 다뤄보고 싶거든요. 저희 부모님도 그렇고, 어르신들은 디지털을 정말 어려워하시더라고요. 60대 어르신과 70대 어르신이 또 다르고요. 그들에게 적합한 디지털 디자인을 함께 찾아보고 싶어요.



아이들이 올라가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는 거대한 지관통



지금 우리에게 딱 필요한 이야기 같아, 기대됩니다. 이제 전시 얘기를 해볼게요.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가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을 전시하셨어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시민액션플랜’이라는 시민참여 플랫폼이 있어요. 시민의 문제 제기와 사회적 기업의 문제 해결을 연결해 주는 곳인데요. ‘장애 아동도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달라’는 시민의 요청에 따라 공모한 사회적 기업에 미션잇이 선정된 거죠. 주어진 예산 안에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놀이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할지 고민하다가 체험형 전시로 풀었어요. ‘지관’이라는 종이 소재를 선택한 것도 처음엔 예산 때문이었는데, 지금 보면 타이트한 예산이 크리에이티비티를 발현시킨 요소가 된 거죠.


전시를 위한 다큐멘터리 영상과 브로슈어를 보며, 이 공간이 다양한 의견을 반영한 곳이란 걸 알 수 있었어요.

장애 아동 양육자, 놀이터 디자이너, 조경 전문가, 그리고 특수교육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며 전시를 준비했어요. 그러면서, 장애 아동을 위해 무언가 특별한 것을 만들 필요는 없단 걸 알게 됐고요. 장애 아동도, 비장애 아동도 다 숨바꼭질을 좋아해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도 좋아하고요.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놀 수 있는 ‘통합 놀이터’에 가보면 ‘휠체어 그네’가 있는데요, 전 그게 사용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걸 탄다는 건 오히려 ‘난 너희와 다른 장애인이야’라고 말하는 셈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했어요. 각기 다른 신체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낮은 데서 놀고 싶으면 낮은 데서 놀고, 높은 데서 놀고 싶으면 높은 데서 놀 수 있도록요.



<Play for All> 전시장 한쪽에 마련된 놀이공간



아이들뿐 아니라 어르신들도 함께 놀 수 있는, 말 그대로 포용력 있는 공간이네요. 이번 전시처럼,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해 디자인한 경험을 더 듣고 싶어요.

일반 기업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근무할 때 청소기 디자인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국내 사용자와 미국 사용자의 특성을 조사하고 그에 따른 디자인 전략을 세웠죠. 조사해 보니 우리나라 사용자는 미국 사용자와는 다르게, 틈새를 청소할 때 ‘헤드 브러시’를 뺀 상태로 청소하더라고요. ‘틈새 청소용 브러시’는 생각보다 사용 빈도가 낮았고요. 그래서 저희는 파이프에 고무 소재를 달아, 아예 파이프만으로도 틈새를 잘 청소할 수 있게 디자인했어요. 또 다른 케이스로, 냉장고도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잘못 설계하면, 문을 열 때 힘이 많이 든다든지 하는 불편함이 생기니까요. 냉동실 안에 넣는 ‘아이스 메이커’의 경우에도, 그곳에 물을 부을 때 어떤 자세가 가장 편한지,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한지 같은 걸 계속 관찰하고 인사이트를 찾아내려고 했죠.


제품 디자인에선 특히나 사용자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한데, 왜 보편적이지 않은 사용자의 필요는 제품에 잘 반영되지 않는 건지 궁금해지네요.

일반 기업에선 보편적이지 않은 사용자 집단을 별개의 시장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보통은 40대 프리미엄 고객, 신혼부부 같은 특정 타깃층이 정해져 있거든요. 장애인 고객층은 파이가 작을 테니, 그들을 위해 뭔가를 만들자는 생각을 굳이 안 하는 거죠. 그런데 함께 생각해볼 점이 있어요. 우리나라 브랜드가 만든 세탁기 모델 중, 한국에서 판매되는 세탁기에는 없는 기능인데 미국에서 판매되는 것에는 있는 경우가 있었어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이스 컨트롤 기능이었는데요. 이 차이는 법 때문에 생겨난 거였어요. 유럽이나 미국에선 장애인 접근성을 위한 제도가 법제화되어 있거든요. 변화를 위해선 법과 규제가 필요한 듯해요.



“함께 논다는 것은 모두에게 성장의 기회”



장애인 고용정책도 그런 의미에서 더욱 필요한 거겠죠? 디자이너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어요. 원랜 다른 공부를 하시다가 디자인 공부를 시작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여러 계기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프랑스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 만든 ‘레몬 착즙기(Juicy Salif)’예요. 착즙기의 유선형 보디를 따라 레몬즙이 또르르 떨어져 내려오면 얼마나 먹음직스러워 보일까 싶었어요.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사진도 계기 중 하나고요. 이런 작품들을 통해, 가치를 경험하게 하는, 또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조형과 오브제의 힘을 알게 되면서 디자인을 시작하게 됐어요. 책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을 읽고선, 디자인으로도 충분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겠단 생각을 했고요.


그런데 제품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쌓아오시다가, 영국에 가서는 ‘사회적 기업가정신’을 공부하셨네요.

원래는 영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할까도 했는데요. 신앙적인 이유로 ‘사회적 기업가정신’을 배우게 됐어요. 사각지대의 사람들이 눈에 계속 밟혔거든요.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라는 주제로, 자원 순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디자인적 방법에 대한 논문을 썼어요. 그렇게 계속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해왔던 것 같아요. 지금은 ‘포용력 있는 사회’란 목표를 위해 미션잇을 운영하고 있고요.


영국 유학을 통해 소셜이슈에 대한 생각이 더 풍성해졌을 것 같아요. 영국에서 경험하신 것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시민의식이요. 장애인, 영유아 동반자 같은 교통약자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묻고, 순서를 양보하고, 그들의 탑승을 기다려주는 걸 매번 경험했어요. 그 누구도 빨리 타라고 재촉하지 않았어요. 사실 지하철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가 훨씬 좋거든요. 영국에서 교통약자들이 장벽 없이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는 건 성숙한 시민의식 덕분인 거죠.





대표님이 평소 좋아하시는 브랜드나 디자이너도 궁금해요.

저는 빛과 자연에서 영감 받는 걸 좋아해서 건축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데요. ‘빛의 건축가’라고도 불리는 장 누벨을 굉장히 좋아하고요. 전통적인 요소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중국 건축가 왕수나, 정형적이지 않으면서 과감한 시도가 인상 깊은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도 좋아해요. 건축물은 소재나 공간 구성을 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 공간에 들어섰을 때 시선을 어디로 향하게 하는지, 동선은 어떤지, 빛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같은 것들에서 감동을 느껴요.


마지막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아요. 먼저, 소셜섹터에 속한 선배 디자이너로서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심미적 가치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자. 디자인이 줄 수 있는 사회적 가치가 굉장히 크단 걸 알려주고 싶어요. 의사가 사람을 고치듯, 디자이너도 누군가의 삶을, 혹은 어떤 지역을 낫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 땐 공모전을 준비하며 사회적 가치가 담긴 디자인을 하기도 하는데, 취직하고 나면 그때의 마음을 많이 잊더라고요. 그게 항상 아쉬웠어요. 많은 디자이너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디자이너로 성장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소셜임팩트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키뮤의 디자이너들에게는 응원의 메시지가 되겠는데요? <키뮤 매거진> 독자들에게도 마지막 한마디를 부탁드립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디자인은 결국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란 걸 기억하며 함께 고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키뮤 매거진>은 키뮤스튜디오의 안과 밖 이야기와 더불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브랜드와 사람,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인사이트를 담아내는 키뮤의 브랜드 매거진입니다. 키뮤스튜디오는 '특별한 디자이너'와 함께 콘텐츠로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유니크한 소셜벤처입니다.


인터뷰 - 유보라, 허란  │  사진 - 이로운  │  정리·편집 - 유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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