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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속 둘리’ 같은 ‘진리의 세계’

특별한 디자이너 진리


작년 7월부터 키뮤와 함께한 ‘특별한 디자이너진리 님의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궁금했습니다. 그와의 소통을 담당하는 허란 연구원이 몽글몽글 부푸는 빵처럼, 다정하게 부풀어오르는 세계와도 같은 것을 그의 그림에서 보았다고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죠. 진리 님의 보호자에게서는 명랑함과 따듯함, 그리고 열정을 느꼈다고 했어요.


다정, 정이 많음. 오랫동안 지내오며 생기는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그림과 말에서 느꼈단 말에, 물어보고 싶은 말들도 차곡차곡 쌓였어요. 그러던 중 마침 진리 님, 보호자들과 마주앉을 고마운 기회가 생겼습니다.

 

1월 28일 특별한 디자이너를 위한 간담회를 마치고, 키뮤가 자리 잡은 공유 오피스 헤이그라운드 2층 라운지에 진리 님과 큰언니 진주 님, 작은언니 진은총 님이 나란히 자리했습니다. 다정하고 명랑한 진리 님의 세계를 저와 함께 들여다보기 위해 말이죠. 생기 넘치는 그림언어와 그 고유한 세계 속 빼곡했던 언니들의 다감한 말들을, 유쾌한 수다로 풀어보았습니다.



왼쪽부터 진은총 님, 진리 님, 진주 님



진주(큰언니): (멋쩍게 웃으며) 진리가 지금 기분이 안 좋아요.


유보라(에디터): 오랜 시간 바깥에 있어서 그런가요?


진주: 제가 잔소리 좀 했거든요. 원래 진리는 더 밝은데.


진리: (문득) 롯데월드?


진은총(작은언니): 아, 어떡해. (웃음) 진리가 지금 롯데월드 가고 싶어서 그래요. 롯데월드 가면 진리는 뭐 탈 거야?


진리: (눈을 반짝이며) 회전목마.


유보라: 진리 님은 회전목마 좋아하세요?


진주: 네, 그리고 바이킹도 같이 타 줘야 해요. 언니들이 바이킹 타면서 무서워하는 걸 진리가 재밌어해요.


진리: 바이킹 안 타요?


진주: 제가 아까 진리한테 바이킹 타는 거 시늉해보라고 했더니, 진리 기분이 나빠진 거예요. (웃음)


진리: 안 해요, 회전목마?


진은총: 나 회전목마 탈 거야. (진리 님의 말을 해석해주는 듯이)


진리: 언니, 그만해.


진은총: 알겠어. (웃음) 진리가 회전목마를 타고 싶어 하는데, 지금 정기점검 중이라 운행을 안 하거든요. 진리가 회전목마를 고쳐달래요.


진리: 고칠래.


진주: 알았어, 그럼 롯데월드 갈 테니까, 진리 기분 풀고 이거 잘해야 돼.


진리: 네, 잘해야 돼!!



인터뷰 내내 웃음이 가득했어요.



유보라: 진리 님은 어떻게 그림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진은총: 진리가 어릴 때부터 수영을 배우던 복지관에 미술 프로그램이 생긴 게 계기였어요. 진리야, 지금 몇 살이지?


진리: 스물아홉 살.


진은총: 그림은 몇 년도에 시작했지?


진리: 미술? 한마음복지관.


진주: 진리 조금 헷갈리는구나? 그림 그린 지는 10년쯤 됐어요. 고등학생 때 시작한 거니까, 조금 늦은 거죠. 그런데 진리가 생각보다 붓질하는 걸 좋아하고, 또 잘하더라고요.


유보라: 저도 진리 님의 그림을 봤는데, 면들의 조합이 특색 있고 예뻐서 인상 깊었어요. 주로 어떤 그림을 그려오셨나요?


진주: 진리가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을 많이 그렸어요. 초반엔 고양이에 완전 꽂혀서 고양이만 수두룩 그렸어요.



진리 님이 가장 좋아하는 토끼 인형



유보라: 지금은 어떤 동물을 제일 좋아요, 진리 님?


진리: 토끼. (가방에서 토끼 인형을 꺼내 보여주며) 토끼 이쁘다.


진주: 이 토끼는 제가 문구점에서 산 건데, 여태 한 6개 샀을 거예요. 진리가 이걸 동생처럼 생각하고 들고 다녀요. 하늘 구경도 시켜주고 그래요.


유보라: 아이들 애착 인형처럼요. 그럼 자주 빨아야겠는데요?


진은총: 자기가 빨아요, 샴푸로. 그래서 토끼에서 향이 나요. (웃음) 동생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엄마가 고민을 많이 하셨거든요. 진리가 거의 모든 활동을 계속 배워서 생활 지능이 되게 좋아요. 혼자 요리도 해요.



진리 님의 작품으로 카드, 핸드폰 케이스, 텀블러, 이불과 같은 굿즈들을 만들어, 전시하기도 하고 판매하기도 했어요.



유보라: 진리 님 그림으로 만든 굿즈도 꽤 많던데요.


진은총: 진리 그림으로 배경화면도 만들었고, 패브릭에 패턴을 인쇄해 쿠션이나 인형 옷도 만들었어요. 저희 가족 다 같이 진리 그림으로 만든 옷을 입고 놀러 가기도 했어요.


진리: 진리 옷 이쁘다.



‘진리 고양이’ (출처: 진리 님 블로그)



진은총: 아, 저희 동화책 만들어서 전시회 오신 분들에게 팸플릿 대신 드리기도 했어요! (핸드폰으로 동화책 사진을 보여주며)


진주: 이 고양이가 진리의 첫 번째 작품이자 진리의 정체성이에요. 진리가 처음부터 ‘진리 고양이’라고 불렀거든요. 저희가 만든 스토리는 이래요. ‘안녕, 난 진리 고양이야. 지금은 액자 속에 있지만 모두가 잠을 잘 땐 액자 밖으로 나와. 나는 컵에서도 놀고, 수건에서도 놀아. 난 앞으로 친구들과 더 넓은 세상을 여행할 거야. 너의 꿈은 뭐니? 너도 이야기해 줘.’ 글씨는 진리가 썼어요.


유보라: 와, 동화책이라니! 사진을 보니, ‘진리 고양이’가 정말 컵에도 있고 수건에도 있네요?! 풍성해 보여요!


진주: 이때 이거 하느라 바빠서 저희 반 애들한텐, 절대 사고 치지 말라고 그랬어요. (웃음)


진은총: 전 대학원 다니는 중이었는데, 집에 가선 매일 이거 준비했어요. 하하.


유보라: 키뮤에도 ‘특별한 디자이너’뿐 아니라 비장애인 디자이너들이 계셔서, ‘특별한 디자이너’들의 그림을 작품화하고 상품화하는 일을 하세요. 진주 님과 은총 님이 딱 그 역할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진리 님의 작가 소개글. 진리 님의 가족은 진리 님이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나들이를 많이 다녀요. (출처: 진리 님 블로그)



유보라: 진리 님이 그림을 무척 부지런히 그리신다고 들었어요.


진은총: 요즘엔 진리가 아이패드로 그리는 거에 빠져 있어요. 하루에 3-4시간을 그려요.


유보라: 사용법은 언니들이 알려주신 거예요?


진주: 진리 스스로 터득했어요. 저흰 색깔 선택하는 것만 알려 줬고요. 저희가 가르쳐주는 걸 진리가 싫어해요. 저희가 간섭하면 진리 표정이 딱, 이거예요. ‘네가 뭔데 그래, 내가 작가인데!’


다 같이: 아하하하.



키뮤 디자이너로서 그린 진리 님의 그림들 ⓒ KIMUSTUDIO


유보라: 진리 님의 개인 작업과 키뮤에서의 작업 방식에 차이가 있었나요? 하나의 스타일이 나오기까지 축적해온 자기만의 방식이 있을 텐데, 그걸 바꾸는 게 쉽진 않을 텐데 말예요. 진리 님이 키뮤와 함께 일하는 건 어떠시대요?


진주: 초창기엔 회화 작업을, 최근까진 아이패드 작업을 주로 했는데요. 키뮤에선 연필 스케치 작업을 주로 해야 해서, 진리가 처음엔 조금 힘들어했어요. 지금은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저희는 오히려 진리가 손으로 작업할 시간이 생겨서 좋구요.


진은총: 이전엔 본인의 일상과 경험에 대해 그렸는데 키뮤에 와서는 새로운 주제를 그려야 해서, 진리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어요. 지금은 진리도 즐기고 있어요. 새로운 주제가 왔을 때 어떻게 그릴지 고민을 하고 그림을 그린다음 저희에게 보여줘요. 그럼 저희가 엄청 칭찬해주죠. 진리 스스로도 이걸 그림으로써 새로운 역할이 주어진다는 걸 이해해요. 성장을 위한 좋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진리 님이 아끼는 가방이에요. :)



애착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귀기울여 듣다가, 문득 자리에서 일어서는 진리 님. 망설임 없이 복도 쪽으로 걸어가는 진리 님의 뒷모습을 보며, 진리 님에겐 때때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은총 님이 설명해주셨어요. 진리 님은 천천히 산책하듯 곳곳을 구경하며 공간에 머물렀어요.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진리 님을 향한 언니들의 시선으로 이어졌습니다.



유보라: 진주 님, 은총 님도 원래 디자인이나 굿즈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진주: 아뇨. 저희 둘 다 교사거든요. 정보나 노하우가 하나도 없어서 고군분투했어요. 진리는 저희 뮤즈나 마찬가지예요. 저희도 진리의 그림을 보며 영감을 받기 때문에, 진리의 작품을 상품화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알고 싶어요.


유보라: 언니들께서 진리 님의 1호 팬이셨네요! 세 분 사이도 정말 좋아 보여요.


진주: 엄마가 사랑이 무척 많으세요.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애를 체득한 것 같아요. 그런데 모든 장애인의 형제자매가 우리 같진 않더라고요. 요즘은 그런 이슈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핸드폰으로 책을 보여주며) 제 동생이 이 책을 번역했어요.


진은총: 제가 특수교육을 전공했거든요. 저희 교수님도 장애인의 형제자매인데, 미국 장애인 형제자매들이 쓴 책을 한국 장애인 형제자매들이 같이 번역하자고 해주셔서 최근에 번역한 책이에요. 이 책을 본 또래에게 연락이 오기도 했어요. 자기 오빠도 지적장애인이라고. 어제 만나서 얘기도 했어요.





유보라: 저희 딸도 발달이 조금 지연되었어요. 처음엔 난청 진단을 받았다가 다행히 치료가 됐는데, 이게 후천적인 발달 지연으로 이어진 케이스예요. 그걸 계기로 난청인을 비롯한 장애인의 정체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어요. 사실 더 많은 사람이 관심 가져야 할 이슈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더 많은 분이 봐주시면 좋겠네요. 책을 간략히 소개하신다면?


진은총: <장애 형제자매와 동행하기>란 책이에요. 교수님과 현직 특수교사인 제자들, 총 4명이 ‘넘어울림’이라는 팀으로 번역했고요. ‘넘어울림’은 편견을 넘어 울림을 주겠다는 뜻을 가진 비장애 형제자매 모임이에요. 코로나 전엔 장애인 형제자매들과 함께 놀러 다니기도 했어요. 비누공방도 갔었어요.


유보라: 그렇구나. 한 번은 어떤 보호자 분을 만나서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께서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장애를 가진 자녀분이 혼자가 아니라 키뮤스튜디오에 출근해 다른 분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하신다고. 대화가 많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게 좋은가 봐요. 진리 님은 그림 말고 또 무엇을 좋아하시나요?


진주: 롯데월드타워를 거의 사랑해요. 구조물의 생김새와 반짝반짝 빛나는 걸 좋아해요. 오죽하면, 진리가 층수도 다 외웠고요. 차 타고 가느라 타워가 저 멀리 사라질 땐 아예 뒤돌아서 타워를 쳐다보고 있어요. 롯데와 컬래버레이션도 하고 싶어요. 하하.


유보라: 앗, 작년에 키뮤가 <롯데 다양성 포럼>에 디자인으로 참여했어요. 이다음에 진리 님이 참여한 디자인이 롯데월드타워에 걸리게 되면 좋겠네요!



핸드폰 갤러리에 빼곡한 진리 님의 작품들



진은총: 진리가 뭐 하나에 빠지면, 그 오브제를 계속 그려요. 진리가 처음으로 그렸던 캐릭터 고양이는 5-6년을 그렸고요. 그다음엔 오리, 그다음엔 토끼를 오랫동안 그렸어요. 롯데월드타워는 지금 3년 정도 그린 것 같아요. 사실 저희는 진리가 빨리 다른 오브제를 그렸으면 하는 조급함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 엄마는 진리를 믿으라고, 그냥 놔두라고 하더라고요. 옛날에는 저희가 엄마한테 그랬거든요. 엄마가 모르는 거라고, 요즘 트렌드가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 아냐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두는 게 맞았던 거예요.


유보라: 어머니께서 정말 현명하시네요.


진은총: 맞아요. 진리도 처음엔 머리를 스스로 못 감았는데 엄마가 계속 훈련시킨 거예요. 처음엔 저 끝에 있는 수건을 집어오라고 하고, 그게 되면 이제 수건을 머리에 대보라고 하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지금은 진리가 머리를 정말 야무지게 감아요. 생활 면에선 진리를 도와줄 게 하나 없어요. 오히려 진리가 저희를 도와줘요.


진주: 진리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의사소통이 하나도 안 됐거든요. 그래도 저희는 진리가 자립하는 걸 엄청 중요하게 여겼어요. 상동행동이나 스케줄 집착 같은 자폐 특성을 계속 좋은 방향으로 틀어주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지금 보면, 진리가 짠 스케줄에 춤추는 시간도 있고 우쿨렐레 시간도 있어요. 진리가 진짜 성실해요. 저희보다 잘 살아요. (웃음)


유보라: 진리 님이 훈련하는 것을 처음엔 싫어하셨을 텐데, 어떻게 하셨어요?


진주: 왜 공부해야 하는지 처음엔 직접적으로 얘기하기도 하고. 그리고 칭찬을 엄청 많이 해줬어요. 새로운 거 해낸 거 대단하다, 너무 멋있다 하고요. 진리가 집에서 뭘 하면, 저희 가족은 난리가 나요.


진은총: 저희 엄마는 저희가 숨만 쉬어도 칭찬해요. 숨 잘 쉰다고. 하하하. 진리도 사랑이 많아서 저희가 퇴근하고 오면 저희를 항상 안아줘요. 근데 몸이 항상 따끈따끈해요. (웃음) 어릴 때는 장애 정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는데, 지금은 진리가 집에서 자기 역할을 다 해요. 진리도 자기 자신과 계속 싸우고, 훈련한 거예요.





진은총: 특수교육비를 아까워하는 분도 계시잖아요. 물론 형편상 못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요. 생각해보면 비장애인을 키울 때도 교육을 많이 시키잖아요. 그러니까 진리에게는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면 안 된다고 엄마가 그랬어요. 진리가 엄마의 그런 신뢰를 다 아는 것 같아요. 엄마는 내가 잘 될 거라고 100% 확신하고 있어,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진주: 진리 어릴 때는 수영 같은 예체능 특수교육비가 되게 비쌌대요. 그땐 정부지원도 잘 없었고요. 엄마는 그래도 없는 돈에 무리해서 진리에게 이것저것 시켰대요. 꾸준히요.


진은총: 수영도요, 그땐 장애인고용공단 수영장이 시에서 하나, 집에서 엄청 먼 골짜기에 있었대요. 엄마가 진리를 차에 태워 데리고 다녔는데, 진리가 한 달 내내 수영복을 못 입은 거예요. 수영복이 몸에 붙는 게 진리에겐 너무 힘든 감각자극이었던 거죠. 그래서 엄마는 하루하루 목표를 정했대요. 오늘은 수영장 가서 손 담그는 걸 해내자, 이런 식으로요. 그러다 하루는 엄마가 밖에서 진리를 기다리면서 막 울었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유보라: 마음이 정말 아프셨겠어요. 그땐 장애 복지에 대한 인식이 더 많이 부족했던 때니까.


진주: 이제는 저희가 나눌 수 있는 건 나눠서 하고 있어요. 진리랑 무언가를 같이 하는 게 스트레스받는 일이 아니에요. 저희도 재밌고, 즐거워요.


진은총: 진리 지금은 기분 좋은가 봐요. 저한테 이렇게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어요.


유보라: 다행이에요. (웃음) 진리 님의 작품을 소개할 기회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럴 땐 어떻게 소개하세요?


진주: 보통은 진리를 소개하는 물건을 담은 박스를 엄마 차에 싣고 다녀요. 진리 양말, 진리 쇼핑백 등 다 들어 있는 박스예요.


진은총: 아, 동물 캐릭터로 만든 퍼즐과 엽서도 있어요. 대학생 창업 동아리와 함께 펀딩 프로젝트로 만든 굿즈예요.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여주며)



진리 님이 그린 동물 캐릭터, 왼쪽부터 <루루> <링가와 몽> <지지 배배> (출처: 텀블벅)



유보라: 와, 동물 캐릭터들이 너무 예뻐요. 캐릭터 설명 좀 해주세요. 어, 그런데 이 고양이는 ‘진리 고양이’ 아니에요? 여긴 ‘루루’라고 적혀 있네요?


진주: 협업하는 쪽에서 캐릭터 이름을 만들어 달래서 바꿨어요. (웃음) 캐릭터마다 스토리도 있어요. 진리가 자동차 아래에 있는 고양이를 보고 고양이에 꽂혔는데, 또 진리가 롯데월드타워를 좋아하잖아요. 그걸 ‘루루’ 스토리에 녹여냈어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보는 고양이라고.


진은총: ‘지지배배’는 큰 오리 ‘지지’와 작은 오리 ‘배배’ 캐릭터예요. 진리가 좋아하는 탄천에 떠 있던 오리들을 보고 그린 거예요. 진리는 이 오리들이 탄천에 사는 우리들이래요. 그리고 이건 남한산성에 사는 원숭이 ‘링가’와 ‘몽’이에요. 진리가 어릴 때 엄마가 매일 진리를 남한산성에 데리고 다니셨어요. 그땐 진리와 말이 아예 안 통했을 땐데, 엄마가 초콜릿으로 달래면서 데리고 다니셨대요. 그 기억을 진리가 그림으로 표현한 것 같아요. 엄마 원숭이가 ‘링가’, 아기 원숭이가 ‘몽’이에요.


유보라: 동물 캐릭터들도, 진리 님도 너무 사랑스러워요. 스토리가 재밌으니까, 캐릭터들과 좀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음, 그런데 남한산성에 원숭이가 있다고요? 전 남한산성 근처에 살 때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신기하네요.


진주: 아, 자기 마음대로 그러는 거예요. 우리가 여기 어디냐고 물어보면 진리가 항상 남한산성이라고 해요. 하하.


유보라: 너무 재밌어요. 진주 님과 은총 님도 진리 님의 그림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 자체를 즐기시는 것 같아요. 언니들께서 키뮤스튜디오 처음 오셨을 때 어떠셨는지도 궁금해요.


진주: 저희는 복지관 선생님을 통해서 키뮤를 알게 됐는데, 복지관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장애인을 이렇게 존중해주고 자유롭게 해주는 데가 많지 않다고. 이상적인 곳이란 생각을 했어요.


진은총: 저는 키뮤 대표님과 이야기할 때 깜짝 놀랐어요. 진리가 가리는 음식이 진짜 많아요. 돼지고기, 소고기 향 같은 감각자극을 힘들어해요. 김밥도 분해해서 먹어요. 한 번은 저희가 진리를 생각해서 베이컨 피자를 시켰는데, 와서 보니 거기에 소고기, 돼지고기 다진 게 들어 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진리가 울더라고요. 그래도 저희는 사회생활할 때 못 먹는 게 나오면 그냥 못 먹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대표님이,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아봐야겠다고 하셔서 감동이었어요. 존중받는 느낌이었고요.


진주: 제가 막 그랬어요. 대표님 혹시 특수교사시냐고. 하하.


유보라: 대표님이 발달장애인 미술교육을 오래 하셔서, 어떤 걸 신경 써야 하는지 잘 알고 계세요. 지금은 코로나로 조금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일주일에 몇 번은 특별한 디자이너들을 포함해 전 직원이 다 함께 점심을 먹었거든요. 그럴 땐 시간에 민감한 특별한 디자이너가 있을 수 있으니 식사 시간을 꼭 지키자, 이런 얘기를 하신 적도 있어요.



인터뷰 전 함께 핸드폰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세 자매



진주: 저랑 동생이 공유하는 생각이 있어요. 장애인의 그림이라서 예쁘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예쁜 그림, 사고 싶은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유보라: 동의해요.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나 ‘리빙디자인페어’ 같은 전시에서 만난 고객들을 보면, 특별한 디자이너에 대한 설명을 듣기 전부터 그림을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특히 색감이 정말 독특하다고 그러세요. 어디서 들었는데, 미술 하시는 분들은 비전형적인 그림을 위해 왼손으로 그리기도 한대요. 그런데 특별한 디자이너들은 일부러 그러지 않아도 유니크한 색과 선을 그려내시니까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누구라서 잘했다, 누구치고 잘했다, 이런 말은 필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그림들인 거죠. 마지막으로, 발달장애 가족들에게 해주실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진리 님의 작품을 보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 말씀 해주세요.


진은총: 엄마가 자주 해주시는 이야기가 있어요. 아기 공룡 둘리가 빙하 속에 있었잖아요. 빙하를 파고 파서야 둘리가 나왔고요. 사람에게도 둘리 같은, 빙하 속 보석이 있대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치료받고 교육받다 보면 그 사람의 보석이 나올 거래요. 진리에게 그 보석은 그림이었던 거예요. 많은 발달장애 가족들이, 보석이 나올 것을 꼭 믿고 아낌없이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진주: 진리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사랑스러운 색감들이 진리 작품을 보는 분들에게 잘 전달되어, 더 행복해지면 좋겠어요.



도란도란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피웠던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자,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던 진리 님이 다가왔어요. 조금은 피곤한 기색의 진리 님은 언니들에게서 등을 돌리곤 홀로 점심을 먹었어요. 진리 님의 언니들은 잘 기다렸다며, 장하다고 한참을 칭찬해 주었고요.


집에 가는 길에 좋아하는 롯데월드타워를 볼 거라며 경쾌하게 손인사를 건넨 진리 님. 앞으로도 보석처럼 빛날 진리 님의 세계가 더 기대되는 마음입니다.




<키뮤 매거진>은 키뮤스튜디오의 안과 밖 이야기와 더불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브랜드와 사람,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인사이트를 담아내는 키뮤의 브랜드 매거진입니다. 키뮤스튜디오는 '특별한 디자이너'와 함께 콘텐츠로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유니크한 소셜벤처입니다.


인터뷰·편집 - 유보라  │  사진 - 이로운, 백가영  │  키뮤스튜디오  홈페이지  │  인스타그램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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