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3대 재즈바 '뱀부 바' 후기
3번의 방콕 단기 여행 후 3달 간의 방콕 장기 여행을 결심한 한량. 이전에는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연극배우였고 잡지사 기자였고 방송 작가였으나 잔 우물만 파다가 31살을 맞이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당분간 생업 전선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발동해서 돌연 방콕 장기여행을 결정했다. 까놓고 말하면 도피이나 긍정적인 사고를 발휘해 40세부터 살고 싶은 나라 태국을 미리 공부한다고 과대 포장하는 솜씨를 발휘하는 중.
지난 목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전날 감기에 걸린 태국인 친구를 보고 이 더운 나라에서 감기가 웬 말이냐 비웃었거늘. 코 앞도 모르고 떠들길 좋아했다. 장기 여행자의 장점이라 하면 구석구석을 천천히 오랜 시간 동안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지만 또 그만큼 여유가 있다 보니 계속 미루는가 싶어 감기 기운이 도는 몸을 이끌고 최근 내 위시리스트에 업데이트된 방콕 3대 재즈바 '뱀부 바(The bamboo bar)'에 방문하기로 했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주소
48 Oriental Avenue, Bang Rak, Khwaeng Bang Rak, Khet Bang Rak, Krung Thep Maha Nakhon 10500
원래 BTS를 타고 Saphan Taksin 역에서 걸어갈 계획이었으나 몸이 좋지 않은 관계로 택시를 이용했다. 푼나위티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해 뱀부 바가 있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까지는 총 160밧이 나왔다(고속도로 비용 제외). 충분히 편안한 차림도 출입이 가능했다는 후기로 보아 드레스코드가 깐깐한 것 같지 않지만 나름 목요일 밤을 즐겨보겠다는 의지로 아껴온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여행 중엔 전혀 들어볼 일이 없었던 작은 클러치를 들고 기분 좋게 떠나는 길. 내가 지내는 푼나위티는 시내에서는 외진 곳이기 때문에 건물이 반짝이는 방콕의 밤 풍경을 보고 설레기 시작했다.
역 근처에서 도로가 많이 막혔지만 다행히 1부 공연이 시작되는 9시 이전에 도착해서 안내를 받았다.
택시에서 내리면 호텔 직원이 "뱀부 바?"라고 물어본다. 고개를 끄덕이니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보통 루프탑 바깥은 경우에는 엘리베이터 타러 가는 길부터 난감할 때가 있는데 뱀부 바는 호텔 로비에서 오른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긴 길을 따라가면 된다.
엄청 고풍스러운 느낌의 뱀부 바. 옛날에 비해 명성이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나 홀로 방콕 장기 여행자에겐 너무 화려하지도 적막하지도 않은 적당한 여행지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내부가 넓은 편은 아니었다. 연주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공간과 그 뒤쪽 공간이 하나 더 있는데
밤 10시쯤 되어서는 내부의 거의 모든 좌석이 다 찼다. 바닥, 천장, 벽, 소품 등 영화로만 봐온 고풍스러운 재즈바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주류는 럼, 보드카, 칵테일, 위스키, 맥주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고 칵테일은 490 바트이다. 기본 안주로 양념이 가미된 캐슈너트과 고추를 바삭하게 말린 과자가 나온다
칵테일 종류를 잘 모르지만 아래 들어간 재료들이 쓰여있어서 상큼한 맛의 칵테일을 주문했다. 위에 파인애플 말린 것을 얹어주는데 저것 또한 맛이 일품이었다.
9시 즈음 연주를 준비하는 재즈바 팀원들. 첫 곡으로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색소폰의 연주곡을 들려줬고 이후로 싱어가 나와서 연주에 맞춰 노래를 했다. 노래를 청하는 이와 부르는 이. 우리 모두 얼굴색이 다르고 하고 있는 일도 다르지만 한 공간에서 한 시간에 모였다는 것이 참 감동스러웠다.
30여분의 연주 후 15분의 브레이크 타임을 갖고 다시 연주가 시작됐다. 그사이에 칵테일 한잔을 더 주문했다. 새콤한 맛이 일품이었는데 이곳 직원들은 수시로 칵테일 맛이 괜찮은지에 대해 물어보곤 한다.
로맨틱한 공간에 혼자, 또는 둘씩, 또는 여럿이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을 듣는 곳. 물론 연주하는 곳과 거리가 먼 장소에서는 열띤 토론이 한창이었지만 방해받지 않고 연주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Fly me to the moon'을 연주할 땐 너무 사랑스러운 곡이라 옆에 같이 들을 누군가가 없다는 게 안타깝기도 했다.
그토록 고대했던 뱀부 바도 클리어!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서비스 차지가 10% 붙는다.
집으로 돌아올 때도 택시를 이용했는데 호텔 로비에 있는 직원에게 택시를 타고 싶다고 말하면 무전으로 근처에 있는 택시를 불러주고 택시 번호까지 내 손에 쥐어 준다. 덕분에 혼자서도 잘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