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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Uye May 05. 2020

인상주의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나의 시작은 끝이 아닌 완성을 향하고 있다

최근 그림 전시회에 갔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인상주의'라는 미술 사조의 시작이 사실 '조롱'의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음악과 춤에 관심이 많았지만 미술만큼은 예외였다. 어렵고 따분했다. 그러나 생각지 못했던 웃픈 '인상주의'의 역사에 단번에 교집합이 생긴 듯했다.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레, 카미유 피사로, 에드가 드가 등 인상주의의 대가들에게도 씁쓸한 과거가 있었다. 연례 공식 전시회인 파리 살롱전에 불합격한 것. 좌절스러운 결과였지만 그들은 이를 계기로 1874년에 독자적인 전시회를 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적대적이었다.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 대해 한 비평가는 "이것은 단순한 '인상주의' 일뿐"이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거칠고 완성되지 않은 모습을 비유하기 위해 사용한 '인상주의'란 단어가 이후 예술가들에 의해 하나의 사조로 채택됐다.


그림들을 만나기에 앞서 내가 가진 '인상주의'에 대한 인상은 강렬하고 제멋대로이며 독보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인상주의'는 사소로운 시선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었다. 하늘은 하늘색이 아니었다. 회색도, 노란색도, 핑크색, 빨간색도 하늘이라는 캔버스를 자유자재로 누비고 있었다. 


반듯한 액자에 걸린 그림 속 구름은 바람을 타고 흘러갔다. 내가 잠시 몽롱해진 탓이 아니다. 캔버스에 닿은 붓의 결이 그러하게 만들었다. 붓이 지나간 수많은 흔적들 모여 바람의 방향과 세기와 습도를 만들어냈다. 간지러울 만큼 세세한 실선들, 의미 없어 보이는 작은 점 하나하나가 모여 촉감을, 향을, 온도를 전했다. 


훗날 자신이 위대한 작품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리 없었던 그림 속 인물들을 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 또한 이 세상이라는 대단한 풍경 속 한 사람이라는 걸 쉬이 잊고 지냈던 건 아닐까 싶어서.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마주할 때"그림 같다"라고 말하면서 그 순간이 나 자신의 것임을 깨닫지 못했던 많은 시간들이 스쳐서. 


나는 성미가 급한 사람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창조적이진 못하다. 그래서 앞서 간 것들을 차용하기를 좋아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실수할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인상주의의 대가로 불리는 이들의 시작은 달랐다. 그 이유가 반항도 두려움도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이 주체였다. 


한때 나는 인생에도 시작종과 마침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해진 시간을 견디기만 하면 되는 그런 상태. 하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다. 우리는 서로 다른 출발점에 던져져 감히 끝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더 마음껏 움직이기로 했다. 시력을 잃으면서도, 전쟁 중에도, 인정받지 못해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그들처럼.  


시작했다면 누군가의 무관심과 조롱은 그 흔한 장애물도 될 수 없다. 내가 할 일은 꾸준히 들여다보는 것, 그것을 표현해낼 기술들을 연마하며 완성을 향해 갈 뿐이다. 실패의 혜택을 감당하겠다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람들의 발길만 스치는 자리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피어난 꽃들을 보다가 울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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