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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읽어주는 여자]빨간 암탉/폴 갈돈

심지않고 거두려는 자에게 빨간 암탉이 전하는 이야기

by 김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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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나는 4, 5세 어린이들에게 씨앗이 꽃이 되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고자 씨앗 심기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작고 귀여운 손으로 흙을 토닥이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한 학부모가 문자메시지로 새싹 사진을 보내왔다.


“오늘 아침에 보니 이렇게 싹이 올라왔어요. 당연한 일이지만 정말 신기하네요. 아이도 너무 좋아하구요.”


좁쌀만 한 씨앗이라 할지라도 정성을 드리면 싹이 난다. 그뿐인가! 새싹은 꽃을, 꽃은 열매로 이어진다. 신비하지만 당연한 이 이야기는 내게도 일어났다. 동화 『빨간 암탉』을 만나고 나서 딱딱했던 내 마음의 밭에도 새싹이 자랐다.


폴 갈돈의 명작 『빨간 암탉』은 고양이, 개, 생쥐와 함께 사는 작고 빨간 암탉의 이야기이다. 작고 아담한 집에는 네 동물이 함께 머문다. 하지만 집안일은 언제나 빨간 암탉 혼자만의 몫이다. 고양이, 개, 생쥐는 하루종일 따뜻한 볕 아래 꾸벅꾸벅 졸며 게으름을 피우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같이 친구들을 대신해 홀로 마당을 쓸던 빨간 암탉이 밀알 몇 알을 발견한다.

“누가 이 밀을 심을래?”

빨간 암탉이 묻지만 고양이, 개, 생쥐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같이 똑같다.

“나는 안 돼.”


매번 거절당하는 통에 빨간 암탉은 홀로 밀을 가꾸고, 베고, 가루로 만들어 결국 케이크를 만들었다. 드디어 빨간 암탉이 직접 키운 밀로 만든 케이크가 오븐에서 나오자 방에만 있던 세 친구가 웬일인지 부엌으로 모여든다.

“누가 이 케이크 먹을래?”

빨간 암탉이 묻자 이번에는 모두 “나는 돼”라고 외친다.


그러자 빨간 암탉이 말한다.

“나 혼자서 밀을 뿌리고 밀을 가꾸고 밀을 베고 밀을 방앗간으로 가져가서 밀가루로 갈았어. 나 혼자서 막대기를 모으고 불을 지피고 케이크 반죽을 했어. 그러니까 나 혼자서 다 먹을 테야.”

그리고 빨간 암탉은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케이크 한 접시를 깨끗하게 비워낸다. 동화는 빨간 암탉을 중심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청소도구를 든 세 친구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동화를 읽으며 고양이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넷 중 성질이 사납고 가장 덩치가 큰 고양이는 자기의 힘을 믿고 게으름을 부렸다. 하지만 눈앞에 케이크를 두고도 한 입도 맛볼 수 없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왜냐하면 그 케이크는 수고한 빨간 암탉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령’에 익숙해 씨앗을 심지도 않고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대단한 착각에 갇혀있었다. 먼저 씨를 심고 싹을 틔우자. 덥고 힘들어도 때마다 물을 주고 정성을 쏟자. 씨앗이 나무가 돼 열매를 맺는, 놀라운 광경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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