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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례 Aug 08. 2017

[동화 읽어주는 여자]빨간 암탉/폴 갈돈

 심지않고 거두려는 자에게 빨간 암탉이 전하는 이야기

작년 여름, 나는 4, 5세 어린이들에게 씨앗이 꽃이 되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고자 씨앗 심기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작고 귀여운 손으로 흙을 토닥이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한 학부모가 문자메시지로 새싹 사진을 보내왔다.


“오늘 아침에 보니 이렇게 싹이 올라왔어요. 당연한 일이지만 정말 신기하네요. 아이도 너무 좋아하구요.”


좁쌀만 한 씨앗이라 할지라도 정성을 드리면 싹이 난다. 그뿐인가! 새싹은 꽃을, 꽃은 열매로 이어진다. 신비하지만 당연한 이 이야기는 내게도 일어났다. 동화 『빨간 암탉』을 만나고 나서 딱딱했던 내 마음의 밭에도 새싹이 자랐다.


폴 갈돈의 명작 『빨간 암탉』은 고양이, 개, 생쥐와 함께 사는 작고 빨간 암탉의 이야기이다. 작고 아담한 집에는 네 동물이 함께 머문다. 하지만 집안일은 언제나 빨간 암탉 혼자만의 몫이다. 고양이, 개, 생쥐는 하루종일 따뜻한 볕 아래 꾸벅꾸벅 졸며 게으름을 피우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같이 친구들을 대신해 홀로 마당을 쓸던 빨간 암탉이 밀알 몇 알을 발견한다.

“누가 이 밀을 심을래?”

빨간 암탉이 묻지만 고양이, 개, 생쥐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같이 똑같다.

“나는 안 돼.”


매번 거절당하는 통에 빨간 암탉은 홀로 밀을 가꾸고, 베고, 가루로 만들어 결국 케이크를 만들었다. 드디어 빨간 암탉이 직접 키운 밀로 만든 케이크가 오븐에서 나오자 방에만 있던 세 친구가 웬일인지 부엌으로 모여든다.

“누가 이 케이크 먹을래?”

빨간 암탉이 묻자 이번에는 모두 “나는 돼”라고 외친다.


그러자 빨간 암탉이 말한다.

“나 혼자서 밀을 뿌리고 밀을 가꾸고 밀을 베고 밀을 방앗간으로 가져가서 밀가루로 갈았어. 나 혼자서 막대기를 모으고 불을 지피고 케이크 반죽을 했어. 그러니까 나 혼자서 다 먹을 테야.”

그리고 빨간 암탉은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케이크 한 접시를 깨끗하게 비워낸다. 동화는 빨간 암탉을 중심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청소도구를 든 세 친구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동화를 읽으며 고양이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넷 중 성질이 사납고 가장 덩치가 큰 고양이는 자기의 힘을 믿고 게으름을 부렸다. 하지만 눈앞에 케이크를 두고도 한 입도 맛볼 수 없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왜냐하면 그 케이크는 수고한 빨간 암탉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령’에 익숙해 씨앗을 심지도 않고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대단한 착각에 갇혀있었다. 먼저 씨를 심고 싹을 틔우자. 덥고 힘들어도 때마다 물을 주고 정성을 쏟자. 씨앗이 나무가 돼 열매를 맺는, 놀라운 광경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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