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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례 Aug 24. 2017

사랑을 상실하다 사랑을 얻다

니시카와 미와의 장편소설『아주 긴 변명』리뷰

                                                 

『아주 긴 변명』 줄거리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니시카와 미와의 장편소설 『아주 긴 변명』. 인기 소설가 쓰무라 케이가 갑작스러운 버스 사고로 아내를 잃은 후의 이야기이다. 사실 그에겐 어떤 상실의 여운도 남아있지 않지만 오직 주변의 시선 때문에 슬픈 감정을 연기한다. 그런 그의 앞에 같은 날 사고로 아내를 잃은 오미야 요이치가 나타난다. 그렇게 쓰무라 케이는 아내의 절친의 가족의 빈자리에 스며들게 된다.

『아주 긴 변명』 리뷰

니시키와 미와라는 작가의 이름은 사실 처음 들어보았다. 다만 표지 앞에 이미 영화화 된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의 표정에 이끌렸을 뿐이다.

이 책의 초입부, 아니면 중간까지도 나는 쓰무라 케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사치오에 대해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마치 막장 아침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을 매몰차게 몰아낸 남자 주인공을 욕하듯 중얼거렸다. 어느날 덜컥 일을 그만두고 작가를 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그가 유명 작가가 되기까지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온 아내가 불쌍했다. 괘씸한 놈 같으니라고. 

그랬던 그가 사랑에 빠진다. 바로 아내와 같이 사고를 당한 유키의 가족들이다. 요이치, 신페이 그리고 아카리. 마주하고 싶지 않아 외면했던 가족으로부터 사치오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어떤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간 잊고 있었던 생명력에 대해. 오물조물 저녁밥을 삼켜내는 작은 입술에 웃음이 터지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에 녹아든다. 



                                               "사랑을 얻은거지"




하지만 사랑이라는 게 늘 그렇듯 평탄치만은 않다. 꼭 이성이라고 국한 시키지 않아도 사랑은 그렇다. 견뎌야하고 보듬어야 함에도 가끔은 밀어내거나 당겨서 그것들을 말과 행동으로 확인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단순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치오는 다시 요이치 가족이 없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돌아갈 집이 있지만 그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사랑이란 결국 영원할 수 없는 것일까 실망감을 느꼈지만 신페이가 사치오를 그리워하는 대목에서 졸였던 마음을 한시름 놓았다. 사치오만 그들을 사랑했던 게 아니었다. 역시 사랑이라는 감정은 쌍방향인가보다. 신페이 역시 사치오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요이치의 사고로 인해 그들은 다시 재회하고 더 단단해져 간다.

                    "쉽게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헤어지는 건 순간이야. 그렇지?"


사치오의 대사다. 감히 그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너무 정겹고 철학적이기까지하다. 하지만 이 대사가 의미있는 건 그가 이것을 정말로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주어진 것들이 무한한 것처럼 타인을, 환경을 대해 왔던 것에 대한 그의 참회록이다.

그러나 늦었다. 사치오는 이미 그녀를 상실했다. 그것을 직면한 후에야 그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살아있는 시간들을 우습게 본 대가다. 마치 그녀가 곁에 있는 듯하지만 그뿐이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다.

                                        "살고 있으니까 살아라"


칭찬과 필요는 다르다. 후자는 절실함 그 자체다. 사랑은 절실함을 동반한다. 이것 말고도 충분한 상태가 아니라 이것이여야만 하는 것이기에.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최선을 다해야 하나보다. 나한테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기에.  긴 변명보다 진심어린 한마디를 건넬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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