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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례 Oct 16. 2017

내겐 너무 완벽한 10

10월에 관한 사진 그리고 에세이


매년 10월의 마지막 날 밤, 나는 잊지 않고 라디오를 켰다. 비스듬히 누워 팔짱을 끼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을 들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 노래를 들은 게 꼭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났다며 푸념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열 달을 쉴 새 없이 보냈는데 움켜쥔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내 두 손이 비었다.





나는 유난히 숫자 10에 약하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듣기 평가에서 0.5점짜리 문제 20개를 다 풀고 10점을 채우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0점을 채워본 적이 없었다. 내가 갓 스무 살을 넘겼을 때 유행한 2PM의 노래 ‘10점 만점에 10점’ 후렴구마저 나를 좌절시켰다. 10은 완벽을 의미하는 기준점이지만 그 기준점에 영영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열병 비슷한 것을 느꼈다.





결함 없이 완전함을 뜻하는 ‘완벽하다’라는 동사가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세계에서 완벽하다는 것이 실제 존재할까. 그 누구도 완벽한 것을 두 손에 쥐어본 적이 없는데도 그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는 불완전한 우리가 완벽을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고로 나는 10 앞에 좌절하는 게 아니라 아직 채울 것이 남아 있다는 것, 다가올 시간을 꿈꾼다는 것을 생각한다.






10. 두 자리 수의 시작이지만 한자리 수와는 전혀 다른 기괴한 모습이 아니다. 한자리 수인 1과 0이 나란히 옆에 섰을 뿐이다. 왼손과 오른손을 합치면 10을 만들 수 있듯 10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숫자가 아닐 터. 10월을 보내고 11월을 맞이하는 10월의 마지막 밤, 올해는 가뿐한 잠을 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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