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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가, 무엇을 보지 못하는지

동네 서점에서 질문을 받다

by 김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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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역 근처 작은 책방에는 노란 포장지에 자취를 감춘 책들이 진열돼 있다. 노란 포장지 겉면에 책과 관련된 몇 가지 단어만 적혔을 뿐 책 제목과 작가의 이름이 없다. 나는 주로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를 구입하기 때문에 노란 포장지만 보고서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책을 고르는 일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책이 무엇을 보지 못하는지 아느냐고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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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 무언가를 본다. 사무실에서는 스크롤을 올리고 내리며 모니터를 훑어보고, 집에서는 TV를 보며 무료한 시간을 달랜다. 날마다 똑같은 풍경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나는 먼 훗날의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미래는 노란 포장지로 꽁꽁 감춰진 책 같다. 살짝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미래도 수학문제집처럼 맨 뒷면에 정답이 있어 미리 펼쳐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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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러 공식을 대입해 문제를 풀어보느라 공책 한 바닥을 새까맣게 칠하거나 답답함에 밤을 지새울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도 없이 문제를 읽으며 고통스러웠던 이는 안다. 한 가지 답에 닿기까지 수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긴 시도 끝에 마주한 정답이 얼마나 반가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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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난 내일을 보지 못하지만 오늘 내가 마주한 모든 순간들이 쌓여 내일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까마득하지만 광활한 미래를 기회 삼아 오늘도 있는 힘껏 부딪혀본다. 노란 포장지를 벗겨냈을 때 마주할 또 다른 세계를 기대하면서. 내가 그동안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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