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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례 Jan 27. 2018

남 탓하지 않을 이유

모면할수록 나는 나 자신과 멀어질 뿐이다

그동안 잠잠했던 위염이 다시 도졌다. 웬만해선 거르지 않는 아침도 굶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편의점에 가서 인스턴트 죽을 사 먹었다. 편의점 한편에 마련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창밖을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외롭게 몇 술 뜨다가 그마저도 포기했다. 약을 먹어도 거북한 기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집에 돌아올 땐 약간의 현기증까지 느꼈을 정도였달까. 아무래도 전날 억지로 뜬 도시락 몇 숟갈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전날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화가 나있었다. 여유롭게 출발했지만 지하철이 느릿느릿 달린 덕에 예상보다 40분 이상 지체됐다. 급하게 내려 택시를 타고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클라이언트가 약속시간을 훨씬 지나서야 나타났다. 덕분에 뒤에 있는 모든 일정이 흐트러졌고 연이어 또 다른 문제들을 낳았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해결해가며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번복했고 결국 몸살이 나고만 것이다.



사실 나를 병들게 만든 건 그날따라 느리게 달렸던 지하철도, 약속시간에 늦은 클라이언트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의 모든 과정과 결과를 타인에게 떠넘기는 나의 행동이 문제였다. 물론 모두 내가 자처한 일이 결코 아니었기에 억울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어느 한순간을 모면하기에 이만한 것도 없었고 결국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남 탓은 남 탓이었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공동체에 속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의 실수를 외면할 수 없고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할수록 오히려 비참해진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 또한 온전히 나의 결정에 따른 것일 뿐이라면 결함과 오해를 드러내고 되뇌기보다 어우러 만지는 것이 여러모로 더욱 유익한 해결책이 아닐까. 생각한 대로 생각할 수 있다면 잔뜩 웅크려 고통을 주기 바쁜 내 위도 다시금 제 역할을 해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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