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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이끌어 갔던 힘, the 선비


추사, 벗을 말하다



추사 선생님의 일생을 통해 감동적인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아름다운 순간들 속에는 세속의 이익이나 권세를 넘어선 벗들과 제자들과의 우정이 특히 빛나보였어요. 저도 50줄에 들어섰지만 그런 친구가 있는가 생각해보니 없네요. 인생 헛살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선생께서 벗들과, 가족들과 또 아내분과 나눈 편지를 보면 제가 생각했던 조선시대와 달라서 놀랐는데요, 가부장적이고, 틀에 꽉 막힌 그런 사회가 아닐까 하는 편견이 있었거든요. 벗들에 대해 얘기 좀 해 줄 수 있는지요?




조선이라는 나라는 유학이라는 틀에 세워진 나라라 일상에서 법도를 따지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네. 하지만 서로 간에 예의를 지키는 삶이 관계를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도록 견인하는 역할도 했지.



서로 간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되, 상대를 대하는 마음에는 정성껏 충심을 다하고자 했으니까. 현대인들의 간편한 문화는 편리한 면도 있지만 지나치면 관계의 법도가 무너지네.



‘예禮’를 다하는 관계는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이 관계의 바탕이 되도록 만들어 주지. 어쨌든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고 인격수양이 선비들의 목표였으니까.



겉으로만 그런 척 하는 사람들도 많았네만 사회분위기가 그쪽으로 형성되면 최소한 그 비슷한 삶이라도 살기 위해 노력이라도 하지 않는가.



(회상하는 눈빛이 되는) 지난 일이지만 지상에서 벗들이 없었다면 어찌 했을까 싶네. 스승이었던 초정 선생도 옹방강 선생도 완원 선생도 가족이었던 아버님도, 어머님도, 부인 예안 이씨도 모두 그립네. 물론 몸을 벗으면 그러한 인연도 한 때에 불과했던 것이지만 사람에겐 추억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사람과의 만남에서 느꼈던 진한 감동은 영원의 세계에서도 잊지 못할 기억이라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조선의 선비문화가 참으로 대단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가지 전문분야만 연마한 것이 아니라 폭넓게 공부하고 두루 통하고 게다가 검술도 승마도 해야 하고, 그러고 보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지도했던 분들 중 많은 분들이 향촌의 선비였다고 하지요. 평소에 의관정제하고 에헴, 하면서 엄청 깐깐하게 예법 따지고 양반입세~ 하는 줄 알았는데 위기가 닥치니 다들 언제 그랬냐 싶게 집에 숨겨두었던 검을 꺼내어 의병장이 되었다고요. 역사적으로도 문관이었던 분들이 장군이 되어 전쟁 시 활약했던 예도 볼 수 있었습니다. 권율장군이나 강감찬 같은 분들 말이지요.


추사의 유배지었던 제주, 그 앞바다에서 




서양에서는 ‘젠틀맨’이라고 하여 기본소양과 예의를 갖춘 사람들은 그리 부른다지요. 우리나라에는 그런 ‘젠틀맨’ 문화가 없는 가 했는데, 선비문화였습니다. 새삼, 선생님과 벗들과의 사귐에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참, 저의 시선은 이다지도 외부로 향하고 있었군요! 추사 선생님도 조선 선비 아니셨습니까, 선비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하하하, 알겠다. 조선 선비들이라...., 우선 나의 삶 속에서 그들은 살 맛이 나도록 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정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외려 외적인 조건을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더구나. 추사의 성격이 얼마나 까다로웠는지 모를게다. 그런 성격을 받아내고도 곁에 있어준 벗과 제자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나는 마음의 큰 빚이 있다. 추사를 둘러싼 벗과 학인들과의 사귐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를 보면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일견 당파싸움으로 얼룩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것만으로는 한정 지을 수 없는 서로간의 예의를 지키면서 따뜻한 나눔을 실천했던 사회였단다.



조선은 유학자의 나라였지.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규정하는 철학이나 종교가 있지 않았느냐, 조선은 유학의 이념으로 세워진 나라였지. 유학자들이 추구한 인간상은 군자 아니겠는가. 따라서 조선의 선비라면 관리가 되었건 지방에서 학문을 하였건 군자가 되겠다는 이상을 품고 이에 따라 몸과 정신을 갈고 닦고 학문을 추구하였지. 한 나라의 표준을 ‘군자적 인간’으로 세웠기 때문에 조선이라는 나라는 자의든 타의든 ‘군자적 이상향’이 내세우는 규범에 따라 스스로를 가다듬고 지, 덕, 체를 실천하는 습관을 일상에서 길렀네.


제주 추사관>




선비들은 한 번 지기를 맺으면 평생 친구간의 예와 의를 다하고 일상에서는 솔선수범하여 사람들을 이끌고 위기 시에는 가장 먼저 나서서 국난을 극복하고, 일상에서는 유연성 있게 대처하면서 향촌사회와 조선이라는 나라를 이끌어 갔던 것이 조선의 선비였다. 이런 사회적 풍조가 오늘날까지 일부 살아남아 한국인들이 국제무대에서 모범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사람은 그저 그런 존재가 아니다.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너는 큰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그러니 너의 삶을 아름답게 완성하기 위해서 삶의 방향이 있어야 하고,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 자세를 선비들로부터 배우면 좋을 것 같구나.



문,사,철을 기본으로 시,서,화를 교양으로 겸비했던 선비들은 서로 간의 만남 자체로 문화의 확장이 일어났지. 그런 사회풍조 속에 추사와 벗들도 존재했던 것이란다. 우리가 특별나서 아름다운 사귐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다만 유명했기에 기록으로 남아 후세에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일 뿐. 나와 벗들의 세계가 무궁무진 했던 것만큼 만남의 결과 문화사조가 탄생되고 조선사회에 문화적 흐름을 유행시킨 것은 맞다. 하지만 선비라면 서로 간의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만남을 가졌을 것이다.




출처: 조선의 별, 추사 김정희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139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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