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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사춘기가 두 번 찾아온다


인생에는 사춘기가 두 번 찾아온다.


10대 때 한 번 


그리고 40대 중반 혹은 후반에 한 번 


오늘은 일단 10대 때 일어나는 사춘기 현상에서 이야기 해 보자.


그것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처음의 사춘기는 이제 부모님 곁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을 하면서 


한마디로 개딸, 개아들이라는 소리를 듣는 시기인데


엄마가 하는 말


아빠가 하는 말


권위를 가진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는 어떤 것도 반감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는 시기인데, 이 시기에 많은 엄마들은 내 몸에서 나온 자식이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시기의 반항은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시기로, 부모님의 곁에서 독립할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부모와는 떼려야 뗄 수 없었던 관계였던 것이


180도 변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다.



아직은 서툴러서 


조화와 균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은 반항하고 기존의 질서에 NO 하는 것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힘들긴 하겠지만 그것은 독립의 한 과정이며


인격체로 성장해 나가는 시기에 일어나는 자연의 당연한 이치인 것과 같다. 



이 시기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비로소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엄마나 아빠, 혹은 나를 둘러싼 관계에 대해 전혀 의심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독립된 객체로서의 나를 인식하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때이다. 



사회가 부여하는 짐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이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밖으로 나아가 사물과 대화하고, 밖의 시선으로 자신을 파악하기도 하고


또 내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적성, 취미, 체질 같은 것을 공부하여 근본적으로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국영수 사회과학 과목에 치여서 정작 영혼의 존재인 나를 위한 공부는 등한시 하게 되는데...... 


이제는 지성의 시대를 지나 영성의 시대라고 한다.


예전에는 자본이나 재산을 모으는게 중요했다면 이제는 경험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사람은 몸과 정신을 가진 존재라서, 어떠한 경험이든 정신적인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사실 굉장히 중요한데, 그러한 의문을 마음 속에 미친듯이 가지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지만 


마음이 아프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는 어떤 존재인지, 내가 왜 태어났고 왜 살아가는지를 아는 문제에 대해 이제는 등한시 하고, 그것을 알고자 하는 노력을 스스로를 위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개성을 가진 존재이기 이전에 본성이라는 것을 가졌다.


누구나 본성이 있지만 그것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내가 싸고 있는 여러 가지 


옷들을 벗어야 한다. 계속 그 옷을 벗어나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본래 나의 자리


그것을 만나야 적어도 태어난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내 이름


내 나이


내 학교


내 직업


내가 하고 있는 일 


등등 모든 것들에 대해 잊어버리는 연습을 하자


그것은 그냥 하나의 역할모델로서 수행하는 것일 뿐


나라는 거대한 존재를 막아서는 안 된다.



잘난 사람일 수록 수련이 어렵다는 말은, 


잘날 수록 자신이 쓰고 있는 역할이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보호받는 것이기에


그 만큼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우주처럼 큰 존재라는 것을 


내 이름이 뭔가요?


몰라요


내 직업이 뭔가요?


몰라요


내 나이가 몇 살인가요?


몰라요

몰라요

몰라요....


몰라요, 몰라요, 몰라요~~ 하다보면 


정말로 그 무게 만큼 내가 안았던 것들이 풀려나가면서


가벼워 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해보라

앉아서 떠 오르는 모든 생각에 몰라, 몰라, 몰라~~~

누가 뭐라고 하면 그런겨 그런겨 그런겨 하면서 흘러 보내라.....

무언가 마음 저 깊숙이 느껴지는 온전한 느낌이 있다. 온전한 느낌. 원래 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 같은

시간을 초월하여 늘 있었던 것 같은 그런 느낌. 그것을 찾아라. 그것과 연결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나는 본래의 나의 모습에 가까워 지는 것이다.  



몸에 좋은 것을 먹고


잘 배변을 하면 몸이 가벼워 지듯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나를 짓누르는 것에 대해


그것이 나를 짓무를 만큼 중요한 것인가?


내 직업이 나를 짓무를 만큼 중요한 것인가?


내 나이가 내 학교가 나의 정체성을 다 말해줄 만큼 큰 것인가?



내가 서울대를 나왔다면 


나를 서울대에 갇히게 할 것인가? 아니면 그로부터 자유로워 질 것인가


내가 의사나 변호사, 혹은 박사라면 그런 것에 나는 가두어 둘 것인가 


자유로워 질 것인가?



자유로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디든지 갈 수 있어서 이다.


팔색조로 변할 수 있어서 이다. 



그런 사람은 생각보다 먼데 있지 않다. 


평소에는 동네 의사로 일하다가 주말이 되면 농장에 가서 농부가 되는 아저씨


평소에는 누가봐도 공무원 같은 얼굴을 하다 퇴근 후만 되면 밸리댄서가 되는 그녀 


그렇게 나의 직업이나 역할을 떠나 잠시라도 다른 일에 몰두해 보면 또 나는 그렇게


달라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비워있는 존재이다.


나는 가능성으로 가득 찬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구별되는 개성을 지닌 존재이다. 



글만 읽으면 지겨우니까, 이 아저씨 동영상도 한 번 봐주기 바란다.


대통령직도 그저 하나의 역할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무히까 아저씨.


자신은 농부라고 한다.


태초에 인간은 모두 농부였다. 

https://youtu.be/EKdhGkGNe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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