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브로맨스
정조이산과 홍국영

1탄 정조이산과 홍국영/ 2탄은 정조이산과 다산정약용 - 2탄까지 꼭 보고가세요옹.


1탄 정조이산과 홍국영

인물이 좋고 재주가 빼어났던 홍국영을 정조이산은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정조 시대에는 유독 ‘브로맨스 삘’이 나는 이야기가 많다. 정약용과 정조이산, 박지원과 홍대용 그리고 김홍도와 신윤복 등 말이다. 흠,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이후 동궁에서 쓸쓸하게 자랐던 정조이산. 자신의 세력하나 없는 가운데 노론집안의 그것도 '홍'씨 인 홍국영이 인물도 수려한데다 재능도 뛰어나고, 누구하나 세자를 비호해주는 이 없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비호해주니, 그도 홍국영에게 껌뻑 넘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중록에 의하면,

“주상이 홍국영을 아끼는 모양새가 사내가 첩에 혹한 꼴이라 화를 내었다.” 라는 구절이 있다. 암요, 우리는 알지요. 두 사람은 20대 때 찰떡궁합처럼 붙어 다녔다. 나이도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차이 인데다가 둘 다 천재, 둘 다 외로운 처지였기에.


사실, 두 사람이 붙어 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정조 이산은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정치적으로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 몸을 바짝 숙여 지내야 했고, 홍국영은 홍씨 집안에서 약간 내 놓은 존재였다. 다방면에 재능이 많고, 사람들과 세력 만드는 것을 즐겨 하지 않는데다 풍류를 즐겼던 홍국영을 노론 집안에서는 꺼려했다고 한다. 성향도 처지도 비슷한 둘의 만남이었으니 처음 봤을 때 서로 불꽃이 파바바 튀었을 터! 남녀관계만 불꽃이 파바바 튀는 건 아니다.


그 후 홍국영은 자기 여동생을 정조이산의 후궁으로까지 들이고 승승장구 하는 듯하더니 완풍군 세자책봉 사건(홍대용의 누이 원빈홍씨가 후계자 없이 죽자, 홍국영에 의해 원빈의 양자가 되어 명목상 왕위계승자가 되었으나 후에 모반죄로 몰려서 자살한 안타까운 인물)을 계기로 파직당하여 유배를 간다. 너무 젊은 나이에 권력의 최고봉에 섰다가 자신의 야심을 감추지 못하고 빠르게 몰락한 홍국영. 이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배운다. '권력' 이란 게 뭔지 한 번 손에 넣게 되면 뵈는 게 없게 만드는 요물.


여기서 말하는 권력이란 ‘정치적 파워’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어떤 힘도...준비가 되기 전에 주어지면 말로가 비참할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조절할 수 있는 노련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홍국영이 이렇게 된 데 정조이산도 잘못이 없는 건 아녀. 흥칫풍! 왕이 확 당기면 누가 안 넘어가겠어. 왕인데. 안 그래요? 물론 국영이가 너무 욕심을 낸 건 맞지만. 사람과의 만남엔 관계의 조절이 필요한 법이라는 걸 홍국영과 정조이산의 관계를 통해 배운다.


서로 계급장을 떼고 만났더라면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을 수도 있겠지만 왕과 신하사이엔 엄연한 신분계급이 존재하던 시절이라. 아무리 친해도 왕과 신하라는 구별이 있는데 국영이....(어떤 면에서는 난 자네 심정 이해가네) 왕족이 아닌 너는 임금과 아무리 친해도 신한게여. 신하. 그걸 인지했어야지. 그런데 홍국영은 왕의 총애를 받자, 누이를 후궁으로 삼아, 그가 아들을 낳으면 이를 등에 없고 계속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국영이도 이산도 모두 어린 시절. 정조이산 25살, 그리고 국영이는 29살이었기에. 그래도 정조이산이 다른 왕과는 확실히 다른 것은 보통 왕의 권력을 넘보면 죽이는데 그렇게 까지 하진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후 유배를 간 홍국영은 화병으로 일찍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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