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탄 정조이산과 정약용
정조시대 브로맨스라 하면 빠질 수 없는 관계가 바로 정조이산과 다산 정약용. 정조 이산과 홍국영의 관계가 젊은 시절 불꽃 ‘파바바’ 튀기는 연인 혹은 친구의 만남에 가까웠다면 정조이산과 정약용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 혹은 임금과 신하에 가까운 만남이었달까? 그것은 아무래도 전자는 20대 젊은 나이였기 때문이고 후에는 정조이산의 나이가 훨씬 많았을 때 모범생과 모범생. 천재와 천재의 만남이기에 홍국영과의 관계보다 좀 재미는 없지만 그들이 바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생각한다면 천재의 만남도 가슴 떨리긴 하다.
이제 둘 간의 브로맨스 냄새 흠뻑 담긴 일화를 살펴봅시다.
정조이산과 다산 정약용간에 유명한 일화라고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술을 빼놓을 수 없지요. 요즘도 대학에 술 사발 문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대학을 다녔던 2000년대 초반에는 술 사발 문화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나이들통. 처음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면 막걸리 한 사발씩 들이켜야 했습니다. 어렸던 학생들에게 막걸리는 너무 맛이 없었어요. 근데 요 술 사발 문화가 정조 시대에 비롯되었다는 사실! 아십니까?
정조이산! 그는 공부벌레, 무술천재 못하는 게 없었는데 술도 엄청 세고! 담배도 퍽퍽 피워대는 소위 상 남자였던 것이었죠. 보통 책 많이 읽고, 공부 잘하는 남자에 대한 환상들이 있진 않은가요? 하얀 피부 살랑거리는 머리칼을 한 모성을 자극하는 자태, 뭐 그런 로망이 있잖아요. 그런데 정조이산은 문과남자라기 보단 공대남자 형이었던 것 같아요. 남자들과 우정을 나눈 일화가 훨씬 많고, 주변에 여자는 별로 없었고 관심도 없었던 것 같아요. 실은 또 첫사랑 이야기 하자면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긴 한데, 그 이야기를 하자면 은서와의 관계가 퇴색되는 것 같아서 안 할래요. 궁금해요? 궁금하면 나중에 제 블로그 놀러오세요. 상 남자였는데, 왕이었는데 할 수 있는 것 다 할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한 여자를 줄곧 마음에 품고 있었던 순정파 남자였다는 것도 알게 되어요.
너란 남자....갖고 싶다.
<옥류천> 출처 - 저자가 찍은 사진
창덕궁의 비원에 있는 옥류천이라는 곳입니다. 경주의 포석정처럼 생긴 편편한 돌 위에 술잔 띄워놓고 시작하는 놀이(둘러 앉아 있다가 자기 쪽으로 술잔이 오면 시를 짓는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저기 어드매쯤 정조이산과 정약용이 함께 술자리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 보면 무척 즐거워집니다.
술 잘하는 정조이산은 한 달에 한 번 초계문신(37살 이하의 젊은 중간관리들을 뽑아 3년 동안 규장각에서 교육을 시키는 제도)들에게 시험을 보게 했습니다. 학자 군주답게 정조 이산이 직접 시험문제를 내고 답안을 매기기도 했는데요, 임금이 직접 내는 문제, 신하들이 절대 놀 수 없겠죠. 이들이 공부한 방식은 사서삼경을 무조건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닌 자유로운 해석과 토론으로 풍부한 사고력을 기르는 쪽으로 진행되었다고 해요. 다산 정약용은 시험에서 자주 1등을 했었는데 문제는 다산이 술을 못하는 범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정조이산: 험험 이번에도 1등은 어디보자, 약용이 아닌가?
다산: (기뻐하며) 그렇사옵니다. 저 이옵니다.
정조이산: (하트 뿅뿅) 네, 그럴 줄 알았다. 어디보자....선물이
다산: (선물!!! 책!!!) 아니 괜찮사옵니다. 선물은 무신.....
정소이산: 옛다 술 받아라. 요 필통에 술을 받아 주욱 들이키거라
다산: (당황하는)예엣?
정조이산: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조리 싹~~~ 비워버려야 한다니께. 안 그러면
방에서 나올 생각 마라!
정조이산은 신하들과 술자리를 자주 했다고 하는데 본인이야 술을 좋아하고 술이 세서 좋았겠지만 범생이 기질의 특히 정약용 같은 형들은 힘들었었다.
<농산정> 출처 -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
후원에 있는 농산정이라는 건물인데 왕이 옥류천에 납시었을 때 다과를 올렸던 장소라고 합니다. 후원을 방문했을 때 가이드 분께서는 농산정이라는 이름답게 후원에서 벼농사 행사가 있을 때 이곳에서 숙식을 하셨다고요. 조선의 경제기반은 농업이었기 때문에 임금도 농사를 지었답니다. (물론 본보기로만 이지만, 농민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럼에도 정조 이산은 술을 자주 권했다고 하는데 1등을 해서 임금이 내려주시는 술을 거절하자니 그렇고 먹자니 속이 쓰리고 괴로웠다고 훗날 아들에게 즐거운 듯 토로합니다. 다산은 수석을 자주 차지한 나머지 궁중에서 발간되는 신간은 모조리 획득하는 쾌거를 올리죠. 그 날도 1등을 한 정약용에게 임금은 더 이상 줄 책이 없다고 합니다. 1787년 8월 23일 임금이 내린 시험에 수석을 차지한 다산에게 임금이 이렇게 말합니다.
정조이산: 『팔자백선(정조가 당송팔대가의 글을 뽑아 간행한 책)』은 받았씸?
다산: (줬잖여~) 헛!
정조이산: 그러면 『대전통편』은?
다산: (것도 줬잖여~) 받았씸
정조이산: (어쩐다...책 없는지...^^;) 『국조보감』은?
다산: (것도 줬잖여~~임금님아) 당근!
<존덕정> 출처 –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
만천명월주인옹자서 현판이 걸린 존덕정입니다. 다른 정자와는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모습이나 모양이 다릅니다. 창덕궁에 가면 꼭 한 번 가서 만천명월주인옹자서 현판을 보시고 오세요. 은서와의 추억도 새기면서요. ^^
그러고 나서 정조 임금이 그에게 하사한 책은 『병학통』이라는 군사훈련 교범입니다. 정조 자신이 다방면에 능한 왕이었기에 신하들에게도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교양을 쌓을 것을 당부 하는 거지요. 그래서 규장각의 각신들은 경전 공부 외에도 무예서에서 악론까지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예에는 소질이 없었던 정약용은 왕이 무예까지 익힐 것을 당부하자 정약용은 기겁하고 고향에 은거할 생각까지 했답니다.
약용: 무서워잉~ 니미럴 무술까지 익히라니 집에 갈꺼영
그러니까 요즘 식으로 하면 정조이산은 덩치도 좋고(우리가 현재 보는 초상화는 상상해서 훗날 그린 것, 원래모습이 아니다.), 공부도 잘하고, 술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만능형의 상남자였고 쾌남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은 흔히 말하는 날씬하고 술 약하고 운동 싫어하는 천재학자였다고 해요. 하지만 문과 무의 균형을 중요시 여기는 정조이산 덕에 후에는 활도 잘쏘고 꽤 무예도 제법 익혔다고 하지요. 아름다운 정조이산과 정약용간의 브로맨스는 여기서 끝!
출처: 정조의 비밀사관, 은서 / 베이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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