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5. 22
요즘 밤마다 이를 간다.
열받고 억센 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런 건 늘상 존재한다. 새삼 이를 갈 것도 없다는 의미다. 턱에 힘이 들어가서인지 아니면 모가지에 힘이 들어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가지에 힘 줄 만한 일은 최근 겪어본 적 없고, 아무튼 이유없이 이를 간다. 물론 이유는 있겠지만 우리는 이유를 모를 때 이유없다고들 하니까 그냥 그렇게 알면 된다. 누가 알면 되는 걸까? 나 자신?
이 가는 소리 때문에 가족이 불면을 겪기도 했다(요즘은 내 방을 벗어나 가족과 함께 잔다.). 내 치아 건강은 그렇다 치고 이게 너무 안타까워서 턱에 힘을 풀고 잔 날은 그나마 덜 간다는 말을 들었다. 가족이 깊이 잠들어서 못 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날의 특별한 적막은 영영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
좌우지간 브런치 작가 신청에 통과했다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여지껏 힘이 들어간 턱이 신경 쓰여서 나 혼자 알아도 될 이야기를 해버렸다. 그런데 그럼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누구에게 말해져야 하는가?
아침부터 고통 속에서 과제를 하는 중에 문자가 도착했다. 3월부터 날 애타게 만든 법정공방(형사사건은 아니다.)이 드디어 결론이 났으며 종국에는 내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해결되었다는 취지의 연락이었다. 그렇게 학수고대했는데도 전화를 끌어안고 방방 뛰고 턱에 들어갈 힘을 대신 광대에 넣으며 기쁨의 함성이 질러지지가 않았다. 그냥 낯설었다. 요새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 그랬나? 하지만 되는 일은 일단 시도를 해야 생기는 거고, 나는 5월달 들어서는 두 가지밖에 도전하지 않았다. 하나는 인턴십이고 하나는 브런치 작가 신청이다. 전자는 너무 매몰차게 떨어져서 불합격이라는 글자에 후드려 맞는 느낌이었고 후자는 한 서너 번은 더 시도해야 통과되지 않을까 기대도 버렸던 부분이기에 당혹스러워서 기뻐할 겨를도 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내가 작가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지난 3년 간 쌓아두었던 영화 리뷰들이며 단문들을 발행시켜놓고 오랜 시간 생각했다. 이 글들로 한번에 통과가 됐다. 정말 내가 한 치의 고심도 망설임도 없이 키보드를 피아노 치듯 농락하며 써내린 그냥 내 말들이다... 난 왜 통과된 걸까? 알 수 없다. 왜 이리 의문스러워하지. 그냥 사건을 사건 자체로 받아들이면 될 것을. 좋은 일을 너무 오랜만에 겪어서 그런가? 그 생각을 하니까 너무너무 슬프다. 내가 불쌍하다. 2018년 이후로는 스스로를 불쌍해하지 않기로 했는데 나라도 날 가엾게 여기지 않으면 정말 쓸쓸해지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울해진다. 입을 벌린 우울로부터 오래되어 삭은 냄새를 맡는다. 우울이 말한다. 좋은 일에 기뻐하지 말고 슬픈 일에 슬퍼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져라. 우울이 대답한다. 네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