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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완 May 22. 2020

양두구육

2019. 02. 01

많이 컸다. 누가 컸느냐면 내가. 어디가 컸느냐면 머리가. 어떻게 컸느냐면 찧이고 상처 입으면서. 회색 도트로 찍은 조연 그래픽처럼 움직이면서. 왜 누구누구는 날 사랑하지 않고 누구누구에게 사랑받으려면 누구누구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하지, 하면서. 그러니까 세상은 억울하다. 비합리적이다. 그런 매도를 하면서, 컸다. 머리가 컸다는 말은 아마 꼰대가 되어간다는 말이지 싶은데. 꼰대라는 게 남 얘기 안 듣고 지 할 말 하다가 자기 혼자 상처받고 또다시 기대하고 한 번 더, 속절없이 무너지는 그런 딱 지금의 나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면 말이다.



사람한테 염증을 느끼는데 사람을 못 놓는 건, 누구나 그런 걸까. 비겁하게 물었다. 내 문제를 일반적인 고민들에 종속시켜서 해결 가능하다면 마음 놓고 징징대기 위해 혹은, 해결 불가능하다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내가 깰 수 있을 리 없지, 속 편한 패배주의에 젖기 위해. 아이러니한 건 속 편한 짓들을 하다 보면 반대로 속이 쓰려오는 지점을 지나게 된다는 것이다. 신뢰를 버리니까 편해. 대답을 들었다.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더 모이더라고. 외롭지는 않느냐고, 외로울까 봐 무섭다 했다. 외로움보다 편안함이 커서 괜찮단다. 사람은 관심받으려고 아등바등할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게 된다면서. 맞는 말이다. 알고 있었는데. 완전 좆됐다. 반대로 행동하고 살았으니까. 아니면 너무 과하게 관심 없는 척을 했거나. 모든 관계에서 승자는 사람을 남보다 많이 만나본 사람, 그러니까 시쳇말로 인싸다. 그리고 진정한 인싸는 그런 걸로 이기네 마네 하지 않음.



일평생 집착하지 마시오, 슬퍼하지 마시오, 외롭지 마시오 하는 뇌내 불법 선전물에 코웃음 치며 살다가 막상 전시상황이 들이닥치니 아무 잡스런 광고 문구라도 잡게 된다. 사람이 외로운 건 당연한 거야. 다들 인간, 사람 사이, 관계를 지키는 파수꾼들인 거야. 참으로 양두구육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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