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완 May 31. 2020

양귀자 <모순> - 단지 몇 번 찔'렸'을 뿐

20. 5. 30

최근 몇 년간 비문학만 읽어서 슬슬 문학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언니가 책 쇼핑을 하고 왔길래 하나를 빌려 읽었다. 양귀자 <모순>. 양귀자 선생님의 글은 <원미동 사람들>밖에 읽어보지 못했다. 거기서 으악새 할아버지나 불륜남녀의 이야기를 보고 오 참 신선하고 재밌군, 하던 시절에 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P학교 학생들>이라는 졸렬한 제목의 아류작을 썼다. 원미동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원미동 사람들>이니 P모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이야기가 <P학교 학생들>이다.


 당시 내겐 남의 문체를 베껴쓰는 취미가 있었다. 이름 모를 블로그 아마추어 팬픽 작가의 문체를 닮게 써서 나 혼자 보거나 남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때가 열세 살이었다. 그 버릇은 점차 내 방자한 주관과 합일되어 전혀 다른 제 3의 문체를 낳게 했다. 누군가는 양귀자의 문체를 토속적이라고 평하지만 난 전혀 그렇게 생각 않는다. 너무나도 세련되어서 이 글이 90년대가 아니라 바로 어저께 출간되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시대를 초월해 마음을 파고드는 글은 또 얼마나 대단한 글인가. 평소 눈여겨 읽지 않는 작가의 말까지 완독하고 나서야 나는 조금씩 울컥거리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읽고 나서 얼마 뒤에는 울적해졌다. 여기에는 또 술 먹고 난동 피우는 아버지가 등장하는구나. 아버지를 변호하고 반추하고 끊임없이 끌어안는 안진진이 너무 밉다. 지금도 밉다. 거진 자기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아버지를 사랑하면서 어머니를 질책하는 안진진. 주량이라는 아버지의 토막을 나누어 가졌으면서 또 아버지처럼 갈치를 좋아하는 남동생을 사랑스러워하는 안진진. 그러면서 이모부를 닮은 주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안진진. 안진진은 죽을 때까지 불행할 것이다. 그는 생각이 너무 많다.


 철학자 안진진. 그는 철학인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졌다. 그러면서 남의 심리를 재구성하는 설계자이기도 하고, 그에 앞서 심리학자이기도 하다. 모순을 경계하면서 모순을 갈구하는 안진진. 나는 안진진의 생각 대부분이 작가 양귀자의 육성임을 인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낸 과거와 그와 함께한 현재, 그리고 그가 보낼 미래를 생각하는 데 마음을 쓰고 말았다. 내 안에서 의견이 분분하던 안진진의 남편 찾기도 사실은 제목을 생각하면 쉬운 문제였다. 안진진이 사랑한, 생활이며 환경의 결이 같은 남자 A와, 자신을 사랑해주는 차선책 남자 B. 안진진이 둘 중 아무도 선택하지 않으리라는 상황은 생각도 안 했다. 안진진은 처음부터 결혼을 자기 새 마음가짐의 주춧돌로 삼았고, 그리고 자기 마음 속의 아버지를 놓아주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고 집요한 영혼을 가졌기 때문에, 누군가는 안진진을 다시 새로운 새장에 가둬주어야만 했다. 말하자면 안진진도 떠돌이 비둘기였던 셈이다.


 갇힌 비둘기였던 이모는 자유를 위해 순고한 생명을 기꺼이 희생했다. 그의 편지는 안진진이 불안정할지언정 새장을 외면해야 한다고 지시한다. 하지만 안진진은 새장을 겪어본 적이 없어 모순된 길을 택한다. 야생 들새 같은 어머니와 감옥 안에 떠나간 비둘기라는 또다른 감옥에 갇혀 지내는 동생. 제발로 감옥에 돌아온 아버지. 그러나 어머니는 야생에서 사는 일이 몸가짐에 맞게 된 명랑한 새이고 동생은 언젠가는 출소할 것처럼 비둘기라는 감옥에서도 빠져나올 것이다. 아버지는 이제 새장 안에서 죽을 일밖에 없다. 이모는 새장 안이 너무나 외로워져서 떠났다. 이모부는 설계사에 가까운 건축가다. 그는 자기 부부가 지낼 새장조차 스스로 설계했다.


 안진진의 새장은 무엇인가? 사랑을 명분으로 한 속박?


  야생 들꽃 촬영하기를 좋아하던 남자 A에게 안진진은 술에 취한 채 자신을 가두지 말라며, 감옥에 가두면 죽이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면서 아직 자신의 가정사를 A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다. 그에게 순간 이모를 어머니라 속였듯이. 반면 세상살이와 시간관리를 촘촘한 직물로 된 옷처럼 강박적으로 관리하는 남자 B에게는 모든 것을 털어놓은 상태다. 이에 안진진은 더 사랑하는 A에게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덜 사랑하는(유사 사랑을 하는) 남자 B에게는 무엇이든 털어놓아도 부담이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둘 중 누가 안진진의 새장일까? 자유롭지 못하지만 자유로운 사랑과,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못한 사랑.


 나의 새장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 새장 속에 있는가?


 무엇이 새장이든간에 모든 인간이 모순이라는 새장에 갇혀 있음은 분명하다. 나 또한 그렇다. 다른 삶을 바라면서 다르게 살지 않고, 살고 싶은 만큼 죽고 싶고 죽고 싶은 만큼 살고 싶다.


 안진진도 나도 살아가야 한다. 안진진은 생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나는 단지 몇 번밖에 찔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모순적인 합리화를 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