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01
잘 산다. 예전에는 잘 살고 싶어서 울었다. 웃고 싶은데 안 웃어져서 울었고 웃을 일이 없어서 울었다. 그렇다고 딱히 내가 울보였던 것은 아니다. 눈물 나는 인생이었던 것도 아닌 것 같다. 아닌 것 같지 않지 않나? 모르겠다. 늘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기 위해 생각이라는 걸 하는 모양이다.
성남 가는 버스에 올라 창밖을 보았는데 이웃 버스 너머 투과된 거리가 보였다. 활주로처럼 관통성을 지닌 투명한 이미지였다. 사진을 찍고 보니 창에 구름이 비쳐서 옛 흑백영화 연출을 연상케 하는 구도가 되어 있었다. 난 시시때때로 영화 같은 삶을 꿈꾼다. 그건 기막힌 서스펜스나 가슴 시린 로맨스 이벤트 따위가 아니라 그냥 스크린 속 인물이 머무르고 가만히 앉아 있고 아무 사건도 없이 지나가는 그런 이야기속 행간들을 의미한다. 그런 지루한 독립 영화이고 싶다. <짐승의 끝>이나 <남매의 집> 같은 정적으로 지난한 이야기 말고.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아무 일 이외의 것들은 전부 일어나서 좋을 일들이다. 나쁠 것 없는 일들이다. 나는 내 평생이 요즘만 같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언젠가는 내가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리라는 것을 이제는 깨닫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무 생각도 안 하기로 했다. 그렇게 카이로스의 날개처럼 한 순간에 후회할 가치도 없이 스쳐서 시간답게 흩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