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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 May 16. 2019

[독서여행]  좋은 글쓰기의 왕도?!?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나는 말보다 글이 쉽고 편하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글솜씨가 특출 나서가 아니라, 말이 어설퍼서 혹시나 뱉어버린 말로 실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말을 시작하면 혀가 꼬이고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방금 한 말들을 지우개로 싹싹 지워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글쓰기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자유로운 생각들로 시간을 가득 채우고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어서 좋다. 책으로 출판되지 않는 이상, 인터넷상에 올린 글은 언제든지 편집, 수정이 가능하니 실수할 확률도 줄어든다. 

그렇다고 글쓰기에 대한 대단한 자신감이 있는 건 아니다. 어디에서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몇 번 들어본 강의(고3 논술학원 강의와 임용고사 논술 특강)는 모두 시험대비용. 과연 이런 수업들이 현재 글쓰기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단기간의 효력 정도 아니었을까 싶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제목 참 상투적이다 싶었다. 이 책은 다른 시험대비용 강의 혹은 책들과 얼마나 차별화되어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책에 언급된 좋은 글쓰기의 뼈대는 시험대비용 책들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제 분명, 의미 있는 정보, 명료한 논리, 정확한 어휘와 문장

좋은 글쓰기를 위한 방법도 자주 듣던 얘기다. 많이 읽고 많이 써라. 다른 점이 있다면 못난 글을 구별하는 분별력 키우기를 권장한다. 분별력 신장을 위해서는 좋은 글, 바른 글을 많이 읽어라. 무엇을 하든 기본기가 필수라는 말씀. 

多读, 多写, 分别力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시험대비용 논술 책보다 재미졌다. 가장 큰 이유는 실제로 쓰인 문장을 잘못된 글쓰기의 예시로 사용해서가 아닌가 싶다. 읽다 보면, 이렇게 실명을 거론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종종 든다. 유시민 작가가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생각을 소신 있게 표현하"며 "미움받기를 겁내지 않는 용기"를 책 속에서 몸소 실천하고 있는 듯했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한 건축가가 쓴 책을 읽었다. 읽는 내내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읽기가 힘든거야? 그러다 이 책 속에서 우연히 그 불편함의 이유를 찾았다. "주장"과 "취향 고백"의 불분명함. 그 건축가는 자신의 취향을 시종일관 강요하고 있었다. 물론 그 안에 재미있는 정보와 사실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 정보들을 뒷받침할 논리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문구들이 많아 강매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논증의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한 3가지 규칙" 
취향 고백과 주장을 구별한다.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한다. 


미국에서 사회복지 수업을 2년 동안 들었다. 수업의 반 이상은 늘 토론으로 채워진다. 미국 친구들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한다. 부족한 영어실력 탓에 토론에 참여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 대화의 흐름을 제정신으로 따라가는 것조차 벅찰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내 영어는 언제쯤 향상될까'를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서른 넘어 말로 배운 영어는 언제나 제자리걸음,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 책의 구절 하나가 내 문제의 근본적인 뿌리를 알려주고 있었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말하고 글 쓰는 것뿐 아니라 생각하는 데에도 언어가 있어야 한다.  모국어를 바르게 쓰지 못하면 깊이 있게 생각하기 어렵다.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외국어도 잘하기 어렵다.

토론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을 영어실력 탓으로만 돌렸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모국어로 깊이 사유하는 연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국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영어실력을 빨리 향상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불러일으킨 결과다. 책을 읽어도 언어 공부를 위해 되도록 영어 책만 찾았다. 내용을 음미하면서 읽기보다는, 어휘량을 늘려가는 목적으로 읽었다. 거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생각이 누락된 언어 습득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언어는 생각이 없는 텅 빈 그릇 같았다. 이 때문에 질문에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는 있었지만, 창의적인 질문을 하거나 주체적인 생각을 표현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야 창의적으로 생각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말과 글은 서로 영향을 준다. 영어실력 향상의 압박은 내 모국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영어로 된 논문이나 책을 읽고 일주일에 짧고 긴 리포트를 쓸 일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 날 한국어로 글을 쓰려는데 첫 문장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쓴 글마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히 한글로 만들어진 문장이건만, 단어 간의 조합이 어색하고 말의 구성이 뒤죽박죽이어서 의미 전달이 잘 되지 않았다. 부족한 영어에 괴로워하다 모국어마저 어설퍼지는 나 자신이 기가 막혀 한숨짓던 순간이었다. 

시간 순으로 보면 감정과 생각이 먼저고 언어는 그 다음이다. 언어에서는 말이 글보다 먼저다. 말보다 먼저 글을 배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중에는 선후를 가리기 어려워진다. 글이 말을 얽어매고 언어가 생각을 구속한다.  

 

글쓰기의 기술과 요령을 단기간에 배워 남들이 '좋아요'를 누르는 글을 쓰고 싶다면, 이 책은 읽지 않는 게 낫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오히려 글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유시민 작가는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글쓰기가 얼마나 오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인지를 이야기한다. 좋은 글쟁이가 되려면, 내 내면을 똑바로 마주하고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이 늘 필요할 것 같다. 글은 결국 나의 경험, 상상, 생각에서 흘러나와 문자화 되는 것이니 말이다. 만약 나 자신의 생각, 가치관, 정체성, 감정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면 그 글은 의미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결코 누군가의 공감을 얻어낼 순 없을 것이다.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다. 물론 글쓰기만 아니라 사람 하는 일이 다 그렇다.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로 인생을 채운다. 내면에 있는 생각, 감정, 욕망을 제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삶이 답답해진다. 각자의 내면에 무엇이 있으며 또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느라에 따라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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