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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 Sep 13. 2018

메르스... 되돌아가는 3년 전의 기억

 

중동에서 귀국한 61세 남성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병원을 거치는 동안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접촉했다. 환자가 메르스 감염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가에 대해 언론과 국민들의 반응이 뜨겁다. 2015년 여름의 그 아찔했던 기억이 채 잊히기도 전에, 대한민국은 3년 만에 다시 메르스의 공포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

 


 

2012년, 명확한 감염원과 감염경로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중동 지역의 낙타와의 접촉을 통해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되는 ‘중증 호흡기 증후군’, 이른바 “메르스”가 발병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15년, 중동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온 68세 남자에 의해 국내에 처음으로 상륙하게 된다. 메르스는 밀접 접촉 (확진 또는 의심환자를 돌본 사람(의료인, 가족 포함), 환자 및 의심환자가 증상이 있는 동안 동일한 장소에 머문 사람)을 통해 확진된다. 비말감염, 즉 환자의 침이나 체액을 통해 감염된다. 최초 보균자를 통해 접촉한 의사와 간병인들을 통해 메스르는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부의 안일한 초동대처까지 더해져 나라 전체는 병들어갔다.

 

 정부는 더 이상의 확진을 막기 위해 ‘자가격리’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수 천명의 의심환자들이 자가격리 조치를 받았다. 여기저기서 그들의 관리 소홀 문제가 터져 나왔다. 스스로가 진단하고 감염되지 않았다고 여기는 일부 자가격리자들이 평소처럼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자가격리자인  60대 여성이 질병관리본부의 허술한 시스템을 비웃기라도 하듯, 휴대전화를 꺼 놓고 어느 날 자취를 감추는 일이 벌어졌다. 규정된 2주간의 격리기간을 무시한 채 미리 약속을 해 놓은 골프를 즐기기 위해 지방에 내려갔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시민들과 사회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정부의 허술한 통제를 틈타 얼마나 많은 의심환자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우리는 그 여성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주거지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의심환자가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민들이 크게 동요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취재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찌는듯한 태양 아래, 호흡조차 쉽게 할 수 없는 두꺼운 특수 마스크와 장갑 등으로 중무장을 했다. 데스크로부터 몇 번의 전화가 왔다. ‘의심환자와는 절대 접촉 금지하라’. 사내에서도 수차례 교육을 받고, 관련 자료도 많이 읽었다. 밀접 접촉만으로 전염된다고 하지만 그 강력한 전염성 때문에 두려움이 다리를 끌었다. 환자의 주거지를 차라리 못 찾았으면 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한참을 헤맨 끝에 정오가 다 되어서야 여성의 집을 찾아낼 수 있었다. 장비를 점검하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오르는 다리가 무거웠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마침내 현관 앞에 섰다. 규정상 자가격리자는 자택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우리는 현관을 사이에 두고 인터폰으로 인터뷰를 시도하기로 했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 스피커 사이로 카랑카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우리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취재 여부를 물었다. 흥분한 여성이 자기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각격리자의 신분이 된 경유와, 격리를 받는 동안에 그 여성이 받은 조치 그리고 왜 자가격리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골프여행을 감행했는지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꺼운 현관 철문 너머로, 메르스 감염자가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 방문했던 사실, 격리 관리를 받았던 내용 등에 대해 상기된 목소리로 답했다. 자가격리 신분으로 외출을 했다는 일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은 안했냐는 질문을 던졌다. 철문 너머에선 10초간 정적이 흘렀다.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있던 현관이 갑자기 30센티가량 열렸다. 현관에 기댄 채 마이크로 녹취를 하던 우리는 너무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대로 얼어버렸다. 대응할 틈 조차 없었다. 분을 삭이지 못한 여성은 문틈 사이로 소리를 질러댔다.


 
“자가격리 조치를 받은 지 이제 2주가 다되어가지만 내 몸에 발열이나 기타 아무런 증상이 없다. 난 메르스 환자가 아니다. 날 환자 취급하지 마라. 그 병원에 방문하기 훨씬 전부터 잡아놓은 골프 약속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조용한 복도가 쩌렁쩌렁 울렸다. 여성의 성토를 카메라는 가감 없이 기록했다. 

통제할 수 없이 퍼져나가는 전염병 때문에 경제, 정치, 산업의 전반에 걸쳐 온통 쑥대밭이 됐다. 그녀의 변명은 분노를 넘어 상실감마저 들게 했다. 한동안 그녀의 변이 이어졌다. 



“골프장은 OO지방에 위치하고 있고, 우리는 다 같이 고속버스 2대에 나눠 타고 내려갔어요. 몇 번의 라운딩을 다 같이 하고 식사도 하고 올라왔어요”

 마이크를 타고 선명하게 전해져 오는 말들에 나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흘렀다. 국가에서 내린 자가격리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밀접 접촉 전염병 보균 의심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망각한 채 그 짧은 기간 동안 버스를 타고 전국을 활보하고 다녔던 것이다. 버스에 동승했던 사람들, 같이 골프를 즐긴 사람들을 찾는 것이 시급했다.

 한참을 분을 토한 여성은 현관을 쾅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끔찍한 취재는 여기서 마무리됐다. 카메라를 쥐고 있던 손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사전에 마스크와 장갑 등 철저히 보호장비를 갖추고 취재에 임했지만, 흥분해 급작스럽게 현관을 열고 문틈으로 우리에게 열변을 토한 그 자가격리 여성 덕분에 보건소로 직행해야만 했다. 각종 검사를 받고 회사에서도 자가격리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출근금지, 자가격리 처분을 받았다. 메르스 의심환자가 자가격리 상태이기 때문에 절대 문밖으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과 대응이 초래한 벌이라고 생각하고 집에서 2주간 자택에서 격리된 채 꼼짝없이 자숙했다. 최전방에서 아주 용감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의심환자의 처절한 발언 속 쏟아지는 침을 맞아가며 낱낱이 증언을 담아준 마이크는, 쓰디쓴 전용 소독제와 함께 뜨거운 직사광선 아래 고통받았다.

 

 2015년 5월부터 7월까지 약 두 달간 38명의 사망자와 186명의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 무려 1만 6693명의 격리됐다. 이로 인한 국내총생산 손실액이 10조 원에 이르는 대형 참사였다 자가격리는 메르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최후의 방어책이었다. 개인의 판단으로 간단하게 무시될 수 없는 지침이었다. 그 현관에 다다랐을 때 부모님과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를 악물었다. 이런 사태는 한 번으로 충분했다. 또 발생할지 모르는 안전의식 없는 자가격리자들이 꼭 알아야 할 사건이었다. 마이크는 그 모든 걸 누구보다 용감하게 가장 앞장서서 담아주었다. 온몸에 메르스 균을 뒤집어쓰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우린 자주 이런 현장에 맞닥들인다. 사회의 안녕과 국민의 권익을 위해 가장 위험한 곳에 서야만 하는 일이 잦다. 나와 함께 내 손에 들린 마이크는 이런 현장의 소리를 고스란히 담는다. 어떠한 두려움에 주저함도 없이.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진실된 소리를 들려주려 노력한다.

 

 인류는 과거 패스트, 사스와 같은 치명적이고 지독한 몇 번의 전염병과 힘겹게 싸워 이겨냈다. 이런 경험들로부터 공중보건은 물론, 인간사회의 배려와 도덕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배워왔다. 메르스에 대한 뚜렷한 항바이러스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주변 사회에 대한 믿음과 신뢰 그리고 철저한 배려와 도덕이 이 무서운 전염병의 항체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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