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기자의 미래
2017년 11월, 지극히 평범했던 일요일 저녁.
나는 소파에 앉아 내일이면 시작될 한 주의 시작을 조금이나마
밀어내고자 리모컨을 움켜쥐었다. TV 소리가 저무는 주말의 아쉬움을 달래듯 거실을 가득 메웠다.
맹목적 유희만을 쫓아 분주히 움직이던 리모컨이 갑자기 멈추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하고 아련한 음악이 내 마음 깊이 파고들었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엔 후회는 없노라고. 그대여."
故 신해철.. 그의 노래가 후배 가수의 입을 통해 TV 안에서 다시 숨 쉬고 있었다.
나는 흥얼거리며 그의 노래를 감상했다.
왜일까. 멜로디 안, 가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뇌리에서 나가질 않는다. 처음은 아니었다.
신해철 특유의 철학적 가사는 이렇게 불현듯 내게 깊이 찾아온다.
하지만,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라는 이 노래를 듣고 순간 멍해진 건 처음이었다.
내 삶 전체가 반추됐다.
그의 노래가 내게 질문을 던진다.
‘지나간 세월엔 후회는 없냐’며 묻는다. 부끄러움이 얼굴에 번져 가렵다.
무자극과 나태함으로 점철된 내게 그가 나의 30대에 마지막 숙제를 던져주었다.
작금의 시대에는 ‘영상기자의 전성기는 끝났다 ‘는 평가가 줄을 잇는다.
촬영을 무기로 하는 직업들이 카메라 기기의 대중화로 희소성을 잃은 게 주 이유라고 말한다.
우리가 현장에 가서 취재한 영상보다 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이 뉴스에 더 적절히 쓰이는 사례는
이제 비일비재하다. 우리보다 먼저 찍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팩트’가 더 많이 담긴 제보 영상이 뉴스에 많이 쓰이고 있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로 영상기자의 전성기가 지났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자기반성 없는 현실 부정일 뿐이다.
우리가 너무 신세한탄에만 절어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미디어 생태계는 어느 산업보다 변화무쌍하다. 우리는 그 변화의 요구에 성실히 부응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아쉬운 점은 우리 중 누군가는 이러한 시대적 응답에 전혀 대꾸조차 하지 않는 갈라파고스(Galapagos)에 사는 거북이라는 것이다. 취재현장에 나가기 귀찮아하는 기자, 진화하는 新장비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 기자, 소위 짬으로 모든 일을 후배에게만 미루는 기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미디어 빅뱅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전혀 닿지 않는 곳에 사는 듯하다. 생물학적 진화에 급급하여 나이는 먹었으나 기자로서의 성장은 답보상태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거북이처럼 ‘고립’이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이들에게 우리는 아직 ‘동료‘라는 이름을 붙여 줄 수밖에 없어 허탈감까지 느끼게 한다.
나 역시, 반성의 칼을 목에 겨누어본다. 잔인하게 들릴 수 있는 이 말속엔 내 의지가 또렷이 담겨있다.
자아성찰을 통해 본 나는 아직은 갈라파고스 제도에 있지는 않다.
하루빨리 삼엄한 정글, 아마존으로 가야 한다.
변화에는 변화로 대처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우리 자체적으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SBS 뉴미디어국이 대표적이다. SBS 뉴미디어국에는 2명의 영상기자가 속해 있다.
그들은 기존 TV 플랫폼으로 제작하는 뉴스를 탈피해 스마트폰 등의 뉴 플랫폼에서 보도 영상이 살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비디오 머그’라고 불리는 콘텐츠를 개발, 이슈가 되는 보도 영상을 재가공하여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이기도 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크게 이슈된 선수들의 영상을 페이스북을 통해 선보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 예이다.
또한, ‘위기 속에 기회’라는 말을 자기변화로 실천하는 동료들이 주위에 있다는 건 내 큰 위안이다.
이들은 변화를 즐긴다. 공부를 두려워하지 않고, 주어진 임무에는 게으름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아마존 정글에 사는 카멜레온 같다. 어떤 후배 기자는 드론 저널리즘이 자리가 잡히기도 전, 이미 드론에 심취했다.
드론 촬영으로 얻게 될 보도 영상의 가치를 남들보다 먼저 알아봤다.
드론 비행의 기본과 실무를 닦아놓았던 그 기자는 우리 회사에서 드론 저널리즘에 가장 자명한 기자가 되었다. 영상편집에 관심이 많은 선배도 있다. 그는 편집에 정통하기 위해 고가의 맥(MAC) 컴퓨터를 구입했다.
그리고 편집 툴(TOOL)은 물론, 컴퓨터 그래픽 툴까지 섭렵해 나갔다.
우리 회사에서 새해 영상을 비롯해 각종 특집 영상 중에 그의 영상취재와 편집이 안 들어간 것을 뽑는 게 어려워질 만큼 그의 능력은 독보적이다. 그들은 아마존에 사는 카멜레온 같다. 정글의 먹이사슬 밑단에 위치해 어떻게든 변화를 모색에 자신만의 살 길을 찾는 방법이 무척 닮아있다.
미디어 생태계에서 영상기자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그들의 노력은 생존의 몸부림이다.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책모임을 하며 우리가 가는 길을 기록하려 한다. 일반 독자들에게 우리의 직업적 사명과 고뇌, 그리고 노력이 책으로써 전해진다면 우리 업계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세미나 참여와 수습기자교육을 맡으며, 나의 역할과 노하우가 다른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진지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미래사회에서 기자라는 직업은 기로에 서있다.
‘사라질 것이다, 살아남을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의문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는 기자는 살아남을 확률이 크다는 점이다.
영상기자에게 의문을 무엇일까.
하루가 다르게 획기적인 카메라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 그 카메라가 과연 진실 전달에 어떤 도움이 될까.
내가 하는 취재행위가 사람들의 삶에 어떠한 이로움을 줄 수 있을까.
계속되는 의문에 스스로 질문을 해야 한다.
나태해진 나 자신의 바보 같은 초상에도 그 이유를 반드시 물어야 한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故 신해철의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의 노랫말이 머릿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밤이다.
그는 내게 20대에 큰 감성을 일깨워 준 은인이다. 이제 그는 불혹을 앞둔 내게 다시 은인이 되어주려 한다.
그리고 그에 다한 보답으로 내 생이 끝나가지 전, 내가 이 직업에 몸담고 있는 지금, 질문에 답해야 한다.
‘변화에는 변화로 성실히 응답하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