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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 Nov 05. 2018

사이판 태풍 고립, 절체절명의 군 수송기 작전

 새벽 5시,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프로펠러와 각종 기계들이 내는 소음이 귀를 찢을 듯 울어대고 격렬한 진동이 벌써 세 시간째 내 몸을 흔들고 있다. 컴컴한 기내는, 손바닥만 한 창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강렬한 햇살 덕에 낮인지 밤인지 정도만 간신히 구별할 수 있었다. 난생처음 타보는 군용기는 그렇게 나를 사이판으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26호 태풍 ‘위투’가 휩쓸고 지나간 사이판은 공항이 마비되어 1800명이 넘는 한국인 관광객이 고립된 상태였다. 정부에서 급파한 공군 수송기는 사이판공항에 고립된 이들을 괌 공항까지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현장이 현재 어떤 상황이고, 군용기에서 내리자마자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어떤 것들에 우선순위를 두고 취재에 임할 것인지 수 백번 머릿속에서 예행연습을 했다. 


  앤더슨 기지에서 중간 급유를 하는 바람에 사이판공항에 도착하기까지는 출발로부터 꼬박 8시간이 걸렸다. 활주로에서 본 사이판공항의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처참했다. 관제탑은 무너져 내렸고, 격납고는 지붕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항공기와 여객터미널을 연결하는 연결통로는 엿가락처럼 휘어 땅을 향해 곤두박질쳐있었다. 전기는 고사하고 물의 공급도 원활하지 못한 최악의 상황이었다. 함께 온 외교부 신속대응팀과 함께 입국 수속을 마치고 황급하게 빠져나왔다.  

 공군 수송기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공항에 바깥쪽에 미리 나와 있던 한국인 관광객들이 순식간에 신속대응팀과 우리 쪽으로 몰려들었다. 군용 수송기가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인원은 공군 크루를 포함 100명 (실제 탑승 가능 인원은 80명), 사이판에서 괌 공항까지의 비행시간을 고려했을 때 해가 지기 전까지의 하루 최대 이동 가능한 횟수는 네 번이다. 


  사이판에 고립된 모두에게 사정이 있었고, 먼저 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신속대응팀도 누굴 먼저 태우고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분별이 없었던 상태라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려 카메라를 꺼내 들었지만 취재가 불가능했다. 흥분한 관광객 몇몇이 카메라를 막아섰다. 서로를 밀치며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였다. 투약이 필요하다는 사람부터, 태풍으로 부상당한 사람, 노약자, 어린아이 동반 가족, 임산부 등 누구 하나 후순위로 밀리면 안 되는 사람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장면이 벌어졌다. 모두가 다급했고 반드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수송기 탑승이 예상보다 지연됐다.  탑승 관광객 선별과정만으로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당초 계획했던 수송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현지 한인회와 영사관, 여행사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게 외교부 신속대응팀장이 탑승 가능인원과 현 상황의 물리적인 한계를 다시 한번 설명했다. 다행히도 주변이 서서히 진정되고 관광객들도 조금 더 탑승이 급한 사람에게 양보하기 시작했다.



 

<휘발유를 넣기 위한 긴 행렬(그림좌), 곳곳에 붕괴된 건물들 모습>


 탑승객을 조정하는 동안 우리 취재진은 사이판 시내 교민 피해 상황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동 중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내의 모습은 흡사 전쟁터와 같았다. 길에 보이는 대부분의 전신주는 도로를 가로질러 쓰러져있었고, 대부분의 건물에 사용된 양철 지붕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고 뼈대만 남았다. 물을 얻기 위한 줄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져있었고, 차에 가솔린을 넣기 위한 줄도 마찬가지였다. 섬의 자랑이자 오랜 시간 가꿔 온 야자수들은 강력한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허리가 꺾인 채 흔들거리고, 거리의 차량들은 창문이 깨지거나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헬멧을 비롯한 안전장비를 착용했지만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다니며 취재할 때는 그 긴장감에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했다. 언제 이 잔해들이 내 몸을 덮칠지 모를 노릇이었다. 주변을 몇 번이고 살피며 안전 확인을 한 후에 근접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많은 교민들이 부상을 입었고 큰 재산 피해를 입었다.  

 “2톤이 넘는 트럭들이 종잇장처럼 날아다니고, 신호등은 엿가락처럼 휘어졌으며, 콘크리트로 지어진 커다란 건물들도 맥없이 바람에 휘청거렸다” 카메라 앞에 선 교민들은 태풍이 불어 닥쳤던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그렇게 묘사했다. 


<사이판 'Northern Marianas College'의 태풍 피해를 입기 전과 후의 모습>

                    



  

  수송기 출발시간에 함께 괌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황급히 현장 취재를 마치고 사이판공항으로 돌아왔다. 어렵게 1차 탑승인원이 확정되고 군 수송기를 타기 위한 절차가 시작됐다. 노약자와 임산부, 어린아이를 동반한 관광객을 우선했다. 공항 시스템이 완전히 마비된 상황이라 모든 출입국 절차는 담당 직원의 수기로 진행됐다. 더디지만 그렇게 한 명 한 명씩 군용기에 오르기 시작했다. 

  밝고 알록달록한 외관의 친근한 민항기와는 달리 시커멓고 투박한 군용기는 커다란 프로펠러를 휘두르며 활주로에서 직접 탑승객을 맞이했다. 턱이 떨릴 정도의 강렬한 진동과 쇠붙이를 비비는듯한 기계음이 몹시 불편할 만도 한데, 영원이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던 사이판에서 드디어 탈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몇몇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군 수송기를 실제로 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낯선 환경에 바로 옆사람과의 대화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소음과 컴컴하고 무더운 기내 에지만 다들 표정만은 밝아 보였다. 대략 한 시간가량의 시간이 흐르고 비행에 조금은 적응될 즈음 요란하게 덜컹거리며 수송기는 괌 공항에 바퀴를 내렸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심이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자신들을 위해 애써준 공군에게 마음을 담아 고마움을 전했다.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이 순간들을 담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타국의 섬에 고립된 자국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10시간이 넘게 쉼 없이 밤새 비행하여 날아왔다. 그리고 쉬지 않고 곧바로 임무를 위해 수송 비행에 투입됐다. 기내에서 초코바와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래 가며 버티는 이들에게 이 보다 더 큰 위로가 있을까. 

 활주로에 내린 승객들은 공항 직원의 인솔을 받아 터미널로 이동했다. 정부와 군, 그리고 민간이 협동하여 태풍으로 인해 사이판에 고립된 우리 국민들을 괌으로 안전하게 이송시킨 첫 번째 비행이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관광객들을 우선으로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자신은 이제는 집에 갈 수 있게 됐지만 아직 섬에 남아있는 천여 명의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걱정도 인터뷰에 묻어났다. 

 괌 공항에서 뉴스를 위해 지금까지 취재 한 내용들을 본사로 차례차례 송출했고 이 영상들은 지상파와 종편, 뉴스 채널을 통해 전국으로 방송됐다. 



<필자가 취재장비를 들고 군수송기에 탑승하고있다.>

 이날 이후로도 군 수송기는 사흘간 10번의 비행으로 우리 국민 799명을 사이판에서 괌으로 쉬지 않고 실어 날랐다. 

 최대풍속 시속 290Km의 슈퍼 태풍 ‘위투’는 평화로운 휴양지 사이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즐거운 휴가를 떠났을 여행객들은 예기치 못한 재난으로 타지에서 발이 묶였다. 도심기능은 마비되고 건물들은 무너졌다. 

 현지 교민들, 그리고 체류객들과 연계한 언론의 빠르고 정확한 보도와 정부와 군의 재빠른 대처로 우리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물론 현지에 발이 묶인 여행객들에 치중된 보도와 구호로 인해 사이판에 거주하는 교민들의 피해에 대해 상대적으로 둔감했다는 비판도 언론이 주목하고 반성해야 할 점이기도 하다.   



 

 재해재난 지역의 취재는 언제나 극도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현장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수많은 플랜을 짜지만 그대로 취재가 진행되는 일은 거의 없다. 준비단계부터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안전장비와 취재 도구를 챙기지만 현장 상황에 따라서는 이 모두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막대한 분량의 재난 취재 매뉴얼도, 다년간 쌓아온 경험도 그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하지는 못한다. 

취재진과 취재원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수 없이 교육을 받아왔지만 그것들이 완벽하게 담보되는 재난현장은 드물다. 정신없이 현장에 놓이게 되면 쫒다 보면 보도의 순기능인 방재와 예방에 맞춰져야 할 포커스는 놓치고 쉴 새 없이 자극적인 장면만 찾게 된다. 그로 인해 기자는 주변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위험한 상황에 고립되게 된다. 취재진과 취재원이 함께 위험상황에 그대로 노출되는 순간이다. 

재해와 재난으로 인해 고립된 상황을 전파하여 구호와 복구를 호소하고 이로 인해 추가로 발생하는 위기에 대한 예방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재난 취재의 목적임에도 말이다.


 격렬하게 이뤄진 취재 뒤에는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사이판에 고립됐던 이들과, 한국에서 기다리는 가족들, 피해 입은 교민들. 나는 그들 사이에서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취재에 임했는지 돌아보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혹 먼발치에서 불구경하는 이들만 즐거운 자극적인 그림을 찾아 목적 없이 하이에나처럼 현장을 누빈 것은 아닌지. 흔들리는 나를 부여잡고 처음 김해공항에서 수송기에 올랐던 때로 테이프를 되돌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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