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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태엽 카메라 Nov 08. 2018

궁극의 요리백서를 찾아서
(feat. 촛불집회)

후손이 바라 본 그 날 

   

2016년 겨울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 혁명’. 나는 과연 미래의 인류는 촛불 혁명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지 궁금해했다. 1700만 명의 국민들 스스로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거대한 부조리에 대항하고 승리를 쟁취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억될까. 그저 많은 사건들 중 크게 특출 난 것 없는 하나의 기록에 불과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인가. 

미래의 역사가들이 판단을 하겠지만, 현시대 사람들은 촛불 혁명에 대해 일관된 견해를 갖고 있지는 않다. 미천한 기자 경력이지만, 2016년의 광화문은 나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현장으로 남아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취재기를 쓰는 도중, 문단 문단이 무미건조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취재기보다 인상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 것도 그쯤이었다. 촛불 혁명 승리에 대한 나만의 ‘오마주’를 남기고 싶었다. 

고민 끝에 나온 글쓰기 방법은 공상과학 장르를 차용(借用)하는 것이다. 공상과학 장르를 들고 나와도 어색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은 확고했다. 촛불집회를 점화시킨 ‘국정농단’의 진실이 공상 과학의 상상력을 충분히 뛰어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아주 먼 미래의 어느 날, 호기심 많은 어느 후손이 타임머신을 타고 촛불 혁명의 현장을 방문했다는 상상으로 시작해본다.

후손이 누른 타임머신의 키워드(keyword)는 ‘요리’였다. 먼 미래, 인류의 걱정은 더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갈구였다. 조상들이 즐겨먹었던 음식은 후손이 사는 세상에도 있었지만, 그 맛이 같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후손은 인공지능이 해주는 레시피에 매우 질려있었다. 종이 냄새 풀풀 나는 조상들의 요리백서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후손은 요리백서만 얻을 수 있다면, 비싸게 빌린 타임머신 렌트비용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계산도 있었다. 

세부적인 장소 코드는 청와대로 정했다. 그 시대 최고의 셰프는 청와대에 있을 터. 유명 셰프가 제작한 요리백서만이 자신의 입맛을 충족해줄 것 같았다. 후손은 군침을 꿀꺽 삼키곤 재빨리 출발 버튼에 손을 가져갔다. 

시기는 1972년, 장소는 청와대. 마침 박정희 대통령의 일생일대 요리가 시작되고 있었다.

재료는 헌법. 요리법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 지향, 민주주의 토착화, 실질적인 경제적 평등을 이룩’ 등 거창했다. 겉으로는 국민을 위한 레시피로 포장했지만 속은 달랐다. 사실상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한 꼼수 레시피였다. 2016년의 박근혜 대통령이 있던 청와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헌법은 통치를 위한 한낱 재료에 불과했다. 

국민이 준 헌법 재료를 소중히 다루지 않았고, 먹지도 않았다. 

그저 오래된 친구, 최순실이 해주는 요리만이 그녀의 입맛을 돋우었다. 요리를 인정받은 덕분일까. 최순실은 대통령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 앉아 ‘국민이 준 권력‘을 재료 삼아 양껏 요리해 나갔다. 잡식성이었던 최순실은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 사회 전 영역을 초토화시키며 솜씨를 뽐냈다. 그녀가 요리하고 지나간 영역은 부패해, 썩은 고기만 남아 있었다.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이 주위를 맴돌며 썩은 고기를 즐겼던 건 당연한 이치였다. 국정농단 요리백서 탄생의 서막이었다. 하지만, 2016년 국민들은 1972년 국민들과 달랐다. 유신헌법 요리는 통했을지 몰라도 2016년의 청와대 요리는 실패로 돌아갔다. 쓰였던 재료와 맛의 진실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현직 대통령의 헌법 유린을 알게 된 국민 대다수는 크게 실망했다. 국민들은 스스로 청와대 밥상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장으로 나왔다.    


후손은 어리둥절했다. 1972년을 거쳐 순식간에 2016년을 와보았지만 아직 음식은 구경도 못했다. 목적지까지 변경되어 타임머신은 청와대에서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후손은 타임머신 문 앞에 기대어 밖을 내려다보았다. 집회라는 생소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 곳곳마다 불빛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세종로를 비롯해 청와대가 있는 효자동까지 모든 도로는 촛불을 든 사람들로 붐볐다. 타임머신이 광장에 다다르자 촛불은 큰 파도를 이뤄 출렁이고 있었다. 후손이 하늘에서 본 촛불 파도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거대하게 출렁이는 촛불 파도는 흡사 국민의 성난 민심을 대변하듯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곧이어 이어진 촛불 소등식. 백만 개의 촛불이 일사불란하게 꺼졌다. 빛이 사라지면서 소리도 함께 삼켰다. 고요한 적막이 흐른 뒤, 하나둘씩 촛불들이 다시 기지개를 켰다. 촛불 하나하나가 켜질 때마다 마치 희망의 씨앗이 발화하는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곳곳에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라고 외치는 국민들의 목소리와 하모니를 이뤄 거대한 연극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타임머신에서 내려온 후손은 광장 안으로 향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 “국정농단, 진실촉구” 광화문광장에 성난 국민들의 목소리들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손에는 저마다 종이컵으로 포근하게 감싸여 있는 촛불을 들고 있었다.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종이컵은 잘 차단하고 있었다. 촛불은 계속 빛을 내며 추위를 쫓아냈다. 후손이 본 광장 사람들의 첫인상은 진지하다는 것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 어느 하나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매서운 눈을 가지고 있었고, 귀는 열려 있어 집회에서 나오는 모든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결연한 각오를 하듯 힘차게 구호를 외쳤고, 자유발언대에 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아기 엄마의 울먹거림에 같이 흐느끼기도 했다. 국민들은 가끔은 웃음을 머금었지만, 내면에는 엄청난 불안감이 서려있었다. 열기는 유명가수 양희은 씨가 이어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노래, 「상록수」를 열창했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노래가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면서,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촛불을 쥔 손을 좌우로 흔들면서 노래를 부르자 또 한 편의 장대한 그림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집회는 행진을 끝으로 자정이 다 돼서야 마무리됐다. 사람들은 광장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치우고 있었다. 후손은 손수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이 여간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봇들이 해주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지, 사람이 할 일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후손이 재밌게 청소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중, 한쪽에서 고성이 터져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후손은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쓰레기들! 너넨 자격이 없어! 왜 찍어!!” 

후손은 크게 놀랐다. 사람이 사람에게 화를 낸 것은 처음 봤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당하는 쪽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커다란 장비를 들고 있었다.



후손은 왜 싸움이 났는지 알고 싶었다. 아주 먼 미래에도 싸움은 재미난 구경거리였나 보다. 사실을 확인한 결과, 집회에 참여한 국민 몇 명이 고성을 지른 것이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큰 장비를 주섬주섬 챙겨 자리를 피한 사람은 방송국 기자였다. 후손이 알아보지 못했던 큰 장비의 정체는 방송용 카메라였다. 카메라 앞과 옆에서는 방송국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붙여있었다. 기자는 카메라를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로고를 급히 가리면서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기자는 주변 건물의 모퉁이를 지나서야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손엔 작은 떨림이 일었다. “후우.. 이게 다 자업자득이지 뭐...” 긴 한숨 탓인지 담배연기는 하염없이 뿜어져 나왔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후손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곧이어 동료로 보이는 사람이 합류했다. 그들의 얼굴에서 집회 취재를 잘 마쳤다는 홀가분함이 보였다. 농담도 주고받으며 하루를 정리하는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후손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추운 날씨였지만 국민들의 뜨거운 집회 열기에  놀랐고, 촛불이 만들어내는 영상이 대단해,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여기까지는 후손이 느낀 바와 별 반 다르지 않았다.


 

그 뒤, ‘국민의 시선이 정말 무섭다. 현장에서 만큼은 어느 방송국보다 열심히 취재했다고 생각한다. 영상기자들은 모두 한마음일 것이다. 현장의 모습을 더 간결하고 인상 깊게 전하고 싶음 마음뿐이었다고. 현실은 국민에게 진실을 전달하지 못한 죗값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기 시작했다. 후손은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됐다. 그들의 반성과 자조 섞인 말속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국민들의 매스미디어에 대한 성토는 집회 중간중간에 발언자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매스미디어 종사자 중 집회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라곤 큰 카메라에 회사 이름을 붙이고 다니는 기자들뿐이었다. 광장에서는 회사 로고가 붙은 카메라를 매고 다니는 기자들이 그 회사 자체였다. 그리고 매스미디어에 대한 불만들은 대표성을 띈 그들이 온전히 껴안고 있었다. 

더 큰 로고가 그려진 회사차가 그들을 실어 나르자, 광화문 광장은 고요함이 밀려왔다.

후손은 다시 타임머신에 올랐다. 요리백서를 얻기 위해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큰 집회가 일어난 이유를 더 알고 싶어 졌다. 타임머신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 현시대의 인터넷 세상으로 들어갔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집회에 대한 내용이 포털 초기화면에 주를 이뤘다. 그는 하나둘씩 읽어가면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후손이 사는 미래에도 독재와 권력자의 기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처럼 인류 역사상 폭력 없는 대항은 미래에 사는 후손에게도 생소했다. 또한, 현 대통령의 온갖 비리와 부정 탄압의 산물이 국민들의 입장에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분노도 이어졌다고 생각했다. 후손은 100만 인파가 광장으로 모인 태동(胎動)이 온라인 공간이었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기도 했다.     

후손은 하지만, 한계도 알고 있었다. 국민의 의식이 점점 깨어나고 있고, 그들의 목소리가 인터넷으로 시작해 광장을 통해 내뿜어져 나오고 있지만 아직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을 미래에 살고 있는 후손이 모를 리 없었다. 정치공학적으로, 현 대통령이 물러난다고 해도 다른 정치세력에서 대통령이 선출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참여민주주의가 활화산같이 일어남에도 현시대의 민주주의 제도는 국민의 삶을 확연히 바꿔주질 못한다.

국민 모두가 바라는 민주주의 제도는 후손이 사는 미래에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보다는 더 나은 보완책들이 생겨 국민의 참여를 극대화했다는 점은 달랐다. 다만, 부패하고 조악한 지도자를 믿고 의지하는 것보다 더 나은 지도자를 바라는 2016년도를 사는 국민들의 노력이 대단해 보였다. 



삑삑.. 삑삑.. 타임머신의 알림등이 울렸다. 


남은 시간에 대한 경고였다. 후손은 큰돈을 지불하고 타임머신을 48시간 대여했는데, 벌써부터 경고등이 울리며 시침은 -12H를 가리켰다.

시간 대비 가장 싼 타임머신을 골랐더니 고장이 난 모양이다. 후손은 콘텐츠 코드(code)로 요리를 골라 과거로 왔지만 버전 1의 타임머신이 다른 해석을 내려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드니 미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후손은 그래도 정신 차려야 했다 아직 12시간은 남았다.  원래 날이 뜨면 청와대 주방으로 갈 작정이었다. 요리백서를 얻기 위한 마지막 도전이었다. 하지만 후손은 주저했다. 과연 청와대 주방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음식일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지탄의 대상이 된 청와대의 음식은 더 이상 매력이지 않았다. 국가 최고 위정자를 위한 음식은 주방의 생기부터 다를 거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초상집과 다를 바 없었다. 후손의 귓가에 여전히 맴도는 100만 국민의 함성도 청와대 주방이 심리적으로 멀어진 이유이기도 했다.

후손은 이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후손은 어디로 갈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후손은 다시 현시대의 인터넷에 접속했다. ‘맛집’을 검색어로 넣으니, 수백 개가 나왔다. 몇 분여를 헤매다, 맛집이 몰려있는 전통시장으로 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후손은 해가 뜨자, 광화문 광장과 그리 멀지 않은 전통시장으로 갔다. 그곳엔 광장에서 봤던 ‘국민’이 있었다. 

후손에게 익숙한 모습들이었다. 전을 부치는 할머니, 국밥을 배달하는 청년, 떡볶이를 먹는 어머니와 꼬마 아이.. 모두 전날, 광장에서 봤던 얼굴들이었다. 다른 점은 그들의 얼굴에 일상이 주는 평상심이 묻어있다는 것이었다. 전을 부치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정이 넘쳤다. 구둣가게 아저씨에게 국밥을 전하는 청년의 얼굴에는 보람꽃이 피었다. 꼬마 아이의 입에 묻은 빨간 양념을 닦아주는 어머니의 모습엔 사랑이 담겨있었다. 

후손은 이러한 국민들이 어제는 열정적인 투사였다는 게 도무지 상상이 안됐다. 그리고 괜스레 마음이 미어져왔다. 국민이 원하는 삶의 의미는 이렇게 단출한데, 대통령은 권력이 주는 쾌락에 취해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장 구경을 마친 후손은 음식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태블릿 노트에 빠짐없이 적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곤 재빨리 다시 타임머신에 올라탔다. 버전이 낮은 타임머신을 빌린 탓에 궁극의 요리백서는 결국  얻지 못했다. 하지만 후손은 의외로 섭섭지 않았다. 주머니 속 태블릿 노트에 쓰인 빈대떡 조리법이면 퍽 만족할 수준이라고 

느껴졌다. 

그보다 후손은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후손은 보도 영상박물관에 갈 계획이었다.  박물관에서 2016년 12월 이후의 대한민국 뉴스를 찾아보고 싶었다. 촛불집회 이후의 대한민국 모습이 너무 궁금했다. 어제 광화문에서 큰 카메라를 매고 다니는 기자들이 찍은 영상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후손은 그 결과에 대해 예측할 수 있었다. 후손은 역사시간을 통해 대한민국은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는 사회’라고 배운

 기억이 난 까닭이었다. 

이제 타임머신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을 위한 엔진 예열을 시작했다. 후손은 마지막으로 광화문 광장을 눈에 담아보았다.  광장의 탁 트인 잔디밭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그리워질 수도 있겠다. 그래도 후손은 ‘희망의 과거’를 봤기에 행복했다.

리턴 버튼을 힘차게 눌렀다. 

그와 동시에, 대한민국도 다시 정상으로 가는 리턴 작업이 시작되었음은 물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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