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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Jul 23. 2021

잠깐의 멈춤이 대화를 바꾸더라

8년 전 취업을 준비할 때, 낮은 학점과 변변치 않은 대외활동으로 인해(추정되는) 대기업 서류 통과율은 주변 대학 동기들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단 한 번의 면접 기회는 그만큼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면접 스터디를 동시에 참여하고, 운영도 하며 수많은 연습과 피드백과 자기 관찰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 나의 고질적인 단점 한 가지를 발견했다.


그건 바로 대화에서의 '잠깐의 멈춤'이 없다는 점. 상대방의 질문에 즉각적인 대답을 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 문장과 문장 사이의 쉴 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는 모든 질문과 모든 소재에서 잘 준비된 능력자라면 문제없었겠지만, 한 두 차례 자신이 없는 분야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속 빈 강정, 혹은 무슨 말을 하는지 대체 모르겠다는 피드백이 나오기 일쑤였다.


면접에서 내 역량을 최대한 '말'로 입증해야 한다는 긴박감 내지는 본래 급한 성격에서 기인했던 것 같다. 20년 넘게 살며 처음 마주한 내 못난 말하기 습관을 처음 목도했을 때에는 참 난감했다.


이후 수차례 실전을 겪고, 사회생활을 해 오며 대화할 때마다 나 스스로에게 새기는 명령어는 바로 '잠깐만 틈을 줘'. 잠깐의 멈춤. 이것만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다양하면서 모든 대화에서 통용될 만큼 효과적인 루틴은 없다고 확신한다.


커뮤니케이션 업을 하는 내가 겪는 다양한 상황에서 이러한 '잠깐의 멈춤'은 노력에 비해 많은 효과를 안겨주고는 했다. 이를테면 대표적인 세 가지 상황은 이렇다.


상황 1. 직장상사나 이해관계자가 어떠한 팩트나 의견을 물어볼 때,

이때의 '잠깐의 멈춤'은 말 그대로 생각할 시간을 버는 것과 동시에 해당 사안에 대해 진중하다는 인상을 줄 수가 있다. 다만 이 잠깐의 멈춤이 다소 긴 정적이 될 경우 대답에 대한 신뢰도가 약화될 수는 있기에, 적절한 '잠깐'이 필요하다.

Tip) 팀장님은 대부분 두괄식을 선호한다.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내놓자.


상황 2. 친구나 연인과 감정적인 갈등이 있을 때,

이때의 '잠깐의 멈춤'은 놀라울 정도로 나 자신을 칠링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대부분의 말싸움 자체가 한 발만 떨어져 보면 별 일 아닌 경우가 많다. 서로가 상처 주는 말을 하기 전에, 잠시 멈추는 행위를 상대방이 인지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상황에 대한 노력으로 받아들여져 기분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Tip) 목소리를 한 단계 톤 다운하면 더욱 좋다.


상황 3. 낯선 사람과 첫인사를 주고받을 때,

사실 이 부분은 면접할 때 특히 차별화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때의 '잠깐의 멈춤'은 상대방이 조금 더 나 자신을 세심하게 관찰하거나 인상 깊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을 부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볼 때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고, 정적을 없애려 하지만, 아주 약간의 멈춤이나 정적만으로도 차별화된 첫인상을 각인시킬 수 있다. 상대방이 누군지 충분히 인지하고, 인사를 건넨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기에, 진중한 사람이라는 이미지 또한 전달할 수도 있다.

TIp) 상황에 맞는 미소는 필수다. 잠깐의 멈춤이 불편한 정적이 되게 만들면 안 된다.


물론 이 외에도 대화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들은 많이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내 삶에서 적용이 가능했던 이 루틴은 그 무엇보다 심플하고, 강력하면서, 실천하기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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