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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Jul 29. 2021

가족도 변하기 마련이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한 가지 개념이 있다. 어렸을 때에는 그게 참 슬펐는데,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 사실.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라는 점.

그중 나를 조금 더 슬프게 '했던' 한 가지가 바로 '가족' 또한 변한다는 점이다.


가족의 구성원을 분류하자면 보통 이렇다.

나의 상위 직계 = 부모님

나의 수평 관계 = 형제자매, 배우자

나의 하위 직계 = 자녀


이 상위의 관계들은 모두 가족이지만,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늘 변화하고 있다.


부모님과 형제자매, 즉 나를 중심으로 'ㅗ' 형태의 가족 구성원으로 우리는 유년기를 살아온다.

하지만 결혼한 이후에는 배우자와 자녀, 즉 나를 중심으로 'ㅜ' 형태의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암묵적으로 꾸릴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족의 범위가 중첩될 수 없는 건, 바로 가족의 범위가 다른 두 명이 결혼을 통해 결합하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서로의 가족을 존중을 하되, 둘은 새로운 가족의 범위 'ㅜ'를 구성하며 이 범위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가족은 나에게 끼치는 영향 또한 가변적이다.

가족 중 누군가는 나에게 인생의 제일 큰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누군가로 인해 큰 고통이나 환멸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가족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도 그 범위는 시기에 따라 가변적이고 그들의 영향이나 의미 또한 절대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가족을 위해서라면 이러한 어려움은 감내할 수 있다' 식의 휴머니즘 영화나 오디션 프로그램의 사연은 때때로 지나친 일반화를 강요하는 듯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이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점만이 오롯이 남는다. 내가 존재하고, 나라는 존재를 통해 내 소중한 사람들이 이어져 있다. 나를 품어주신 어머니와 큰 나무와도 같은 아버지가 어느새 나와 같은 한 사람으로 보일 때쯤, 사랑하는 여자가 내 옆에 함께 존재하고, 그 여자의 옆에는 그 여자의 가족이 있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건 '내가 이 세상에 오롯이 존재한다는 것을 여러 방식을 통해 정의하고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점에 조금 더 자연스러워져야 할 텐데. 가끔은 옛날이 그립기도 하고, 미래가 기대되기도 하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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