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용어 TMI- 참교육 1

교무실의 중심에서 참교육을 외치다

by 복희
참교육 당하는 꼴을 보니 속이 시원해요.


세 번째 말 : 참교육

- 말보단 주먹, 맞아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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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의 중심에서 참교육을 외치다


“선생님이 너무 착하셔서 애들을 못 혼내시니까

제가 참교육시킨 거죠.”


어느 날인가, 교무실에서 들은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나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다른 선생님과 학생 간의 대화였다.

정확한 사정은 모른다. 유추해 보자면, 그 학생 말고 다른 학생들이 어떤 잘못을 했고, 교사는 교사의 방식으로 그 일을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학생이 보기에는 교사가 하는 대처가 효과적이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학생이 말하는 ‘참교육’을 해야 효과가 있는데 교사가 하는 행동은 학생이 보기에 ‘참교육’이지 않았다. 결국 그 학생 스스로 다른 학생을 참교육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교사 대신 ‘참교육’을 한 명목으로 한 시간 가까이 그 교사에게 훈계를 들었다. 듣고 나서도 자신이 한 ‘참교육’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 학생이 돌아가고 나서도 한참을 나는 그 ‘참교육’에 대해 생각했다. 그 학생이 말하는 ‘참교육’이라는 말이, 요즘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그 단어가 마음에 박혔다.


‘참교육’이라고 하는 단어는 ‘참-’이라고 하는 접두사와 ‘교육’이라고 하는 단어가 합쳐 만들어진 파생어이다. ‘참-’이라고 하는 접두사는 단어 앞에 붙어 아래와 같은 의미를 더해 새로운 단어를 만든다.


1. ‘진짜’ 또는 ‘진실하고 올바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예) 참사랑.

2 ‘품질이 우수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예) 참먹.

3 ‘먹을 수 있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예) 참꽃.


‘참교육’에 해당하는 것은 1번 뜻일 것이다. 과연 학생이 말하는 ‘진실하고 올바른 교육’이란, 요즘 인터넷에 심심치 않게 나오는 ‘참교육’이란 과연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요즘의 교육이 과연 어떻길래, 이런 ‘참교육’이 필요한 것일까?


일단, 요즘에 자주 쓰는 ‘참교육’이라는 단어의 용례를 살펴보며 이 ‘참교육’이라는 단어의 뜻을 정리해 보자.

네이버에 ‘참교육’을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기사 제목이 나온다.(2024년 12월 기준)


■ ‘참교육’ 한다며 여교사 가격 그 드라마 출연설에 입 연…


■ 한국인에 참교육 당한 미 유튜버 계정 삭제


■ “못생겼다고 조롱”…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가해자 ‘참교육’


■ 아들이 밤만 되면 폭주 뛰러 나가자 오토바이 불태워 ‘참교육’한 아빠


위 기사들에서 참교육을 당한 사람의 면면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학생을 상대로 강압적인 수업을 했다는 이유로 여교사가 맞았다.


- 위안부 소녀상을 조롱한 외국인 유튜버 계정이 털렸다.


- 트랜스젠더를 조롱한 행인이 욕먹었다.


- 오토바이를 타고 나간 청소년 아들의 오토바이를 아버지가 불태웠다.


그 ‘잘못’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살인이나 사기 같은 중대한 범죄가 포함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내 기준에 어긋난 사람’에게 향하는 참교육이 많다. 공공 규범보다 개인감정에 의해 판단되며, 지극히 사적인 불쾌함이 ‘공적 제재’처럼 확장되는 것이다. 잘못의 내용에 공통점이 있다기보다는 잘못에 비해 받는 처벌이 적다고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런 사건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악인이 등장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은 우리와 비슷한 위치거나 조금 위에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꼴 보기 싫다. 강력하게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기에 더 크게 반응한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을 법한 ‘조그만 불공정’이기 때문이다. 신문 헤드라인에 나오는 거대한 사건보다, 우리 옆에서 벌어질 수 있는 ‘얄미운 일’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라는 김수영의 시처럼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잘못을 하고도 무사할 때, 우리는 참교육을 원한다. 때로는 진짜 정의라기보다는 즉시적이고, 시원한 복수를 말이다. 그래서 신문 제목들을 봐서 알 수 있듯이 ‘참교육’은 대부분 폭력을 동반한다. 말보다는 주먹, 설득보다는 공개 처벌 같은 폭력이다. 직접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면 신상 털기 같은 사이버 폭력으로 바뀐다. 사람들은 가해자가 손해 입은 걸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여기엔 진짜 교육은 없다.

반성도, 성찰도, 변화도 없다.

그저 “누군가가 한 대 맞아야” 속이 풀리는 구조일 뿐이다.



볼드 처리한 부분은 각주표시입니다.


각주 43) 어느날 古宮(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왕궁) 대신에 王宮(왕궁)의 음탕 대신에

五十(오십)원 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이십)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중략)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二十(이십)원 때문에 十(십)원 때문에 一(일)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일)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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