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소한 이름에도 특별한 역사가 있다.
강아지 이름인 줄 알았던 해피
강아지 이름인 줄 알았던 해피
우연히 듣게 된 어떤 걸그룹의 노래는, 내 강아지의 주제곡이 되었다.
1-1.
우리 집에 살아온 반려견 해피에게는 유구한 역사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마리 반려견의 역사가 아닌, 해피라는 이름이 가진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있기까지 대단한 고민과 시간을 들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이름 모를 모든 고양이는 나비, 강아지는 해피가 아니던가. 대체 누가 언제 어떻게 시작한 이름인지는 몰라도, 우리 집 해피의 역사는 내 어머니로부터 시작됐다. 생에 처음 강아지를 품에 안던 날, 지금도 그렇지만 순발력과 임기응변에는 천부적으로 재능이 없던 내가 그 나이 때라고 달랐을 리 없다.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어린 나의 두 손보다도 작은 너의 평생이 행복할까?
어떤 이름을 붙여야 남들이 들어도 귀엽고, 누가 봐도 너무너무 귀엽고, 찰떡같이 잘 어울릴까?
그저 생각만 꼬리에 꼬리를 물어 길어질 뿐 명쾌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내 엄마는 11살 어린이의 시간을 마냥 기다려줄 만큼 느긋한 사람이 아니었다.
"해피라고 해. 뭘 고민해? 강아지는 해피지."
혹시 내 손에 있던 이 아이가 자기의 이름이 그렇다고 말했던가요? 이 아이가 그보다 좀 더 대단하고 엄청난 다른 이름을 갖고 싶어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원초적인 이름을 붙일 거라면 이 아이는 바둑이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요?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그렇게라도 반박을 했어야 했지만, 우유부단한 성격의 나는 일주일의 시간을 줬어도 다른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그날로 우리 집 해피의 역사가 시작됐다.
첫 번째 해피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 명절 때 시골에 갔던 어느 날에 만났다. 동네 바둑이와 밥을 나눠 먹던 유아기를 거친 동물 극극극호의 인간인 나는 네발로 걷는 동물들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렸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그냥 그날도 그랬다. 시골 동네를 돌며 명절 인사를 하기 바쁜 어른들을 뒤로하고, 나는 냅다 숙모집 툇마루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손바닥만 한 강아지가 그 밑으로 숨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겁이 많아 툇마루 밑 요강에 들어가 나오지 않던 녀석을 어떻게 끄집어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과정이야 어쨌건 조막만 한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있던 나를 본 숙모는 호쾌하게 "데려 가! 그거!" 하며 입양을 허락했다. 최종 결정권자인 내 어머니의 의사는 묻지 않은 채로.
마당에서 아무렇게나 풀어져 키워지던 강아지의 이름은 당시 '깡통'이었다. 겁이 많던 강아지가 겨우 찾은 도피처라는 게 깨끗하게 씻어 말려놓은 요강이었기 때문이다. 밥도 주고, 예뻐도 해주는데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 것이 괘씸해서 대충 깡통이라고 불렀다고 했다.(하마터면 나는 깡통의 역사를 쓰고 있을 뻔했다.) 집에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객식구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예상했던 대로 반대했다. 어른들이 흔하게 하는 그런 반대 있지 않나. 털이 어쩌고, 똥은 어쩌고, 산책은 어쩌고 등등. 레퍼토리는 진부하면서도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당장에 손아귀에 안긴 강아지의 체온을 이겨낼 열 살의 어린이가 있을까. 나는 모르는 척 강제입양을 밀어붙이는 숙모의 뒤로 숨었다. 숙모는 목소리가 크고 충청도식 유머를 숨 쉬듯 하는 사람으로, 기억엔 없지만 아마 엄마는 숙모의 농담에 웃으면서 마지못해 허락했을 것이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엄마의 한마디로 어영부영 평생의 이름을 갖게 된 내 인생 첫 번째 해피는 아주 똑똑했다. 팔불출 같다고 해도 부정하지 않겠다. 내 어린 세상을 비집고 들어온 새로운 생명은 매 순간이 새롭고 놀라웠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우리 애가 천재인 것 같았다. 미리 팔불출 딱지를 붙였으니 나열해 보자면, 해피는 집에 들어온 첫날부터 가르쳐주지 않은 배변을 화장실에 척척 해냈고, 구분지은 적 없는데도 사람음식을 탐하는 법이 없었다. 코 앞에 고기접시가 있어도 사람이 그릇 밖으로 내어주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보호본능이 뛰어났던 해피는 그야말로 충성심이 투철한 경비견이 따로 없었다. 무엇보다 직업 특성상 몇 개월에 한 번씩 겨우 얼굴을 비추던 아빠를 그렇게나 좋아하고 잘 따랐다. 털 빠지는 짐승을 왜 데려오냐며 언성을 높이던 내 아버지가 집에만 오면 해피를 옆구리에 꼭 끼고 살게 만들었으니, 이 명석함을 달리 또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렇게 우리 집 막내가 된 이 천재강아지는 한 밤에 차사고로 다리를 다쳐 내 눈물을 쏙 빼놓기도 했고,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10년이라는 시간을 빼곡히 채우며 어수룩하기만 한 나의 어린 시절을 틈 없이 함께했다. 이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끝까지 해피엔딩이었다면 더없이 좋았을 테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날의 일은 일종의 사고였다고 생각한다. 악재가 겹쳤던 날이었다. 할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어 마지막을 준비해야 했던 때였다. 당시에 엄마가 하고 있던 가게에서 다 같이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일찍 병원으로 출발할 계획이었다. 어릴 때부터 곧잘 새벽에 화장실을 들르는 습관이 있던 나는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그 가게는 화장실이 외부에 있는 구조로, 가게 뒷문으로 나가 큰 잔디를 지나쳐 가야 했다. 어슴푸르게 해가 뜰랑말랑하는 시간이었다. 해피는 그곳에 있는 동안 가게 밖으로 혼자 나가는 법이 없었던 터라, 그 순간의 방심이 우리의 마지막을 불러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화장실을 가는 틈에 따라 나왔던 해피는 새벽부터 아침 10시가 다 되도록 온 가족이 찾아다녔지만 끝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 사이 늦어져버린 일정으로 우리는 할아버지의 임종까지 놓치고 말았다. 장례를 치르면서도 마음은 계속해서 해피가 사라진 그 어딘가를 맴도느라 한시도 편치 않았다. 그 누구의 마지막도 지키지 못한 우리 가족은 그날로부터 말보다 한숨이 길어졌다. 남겨진 아이의 흔적만 봐도 눈물이 솟는 걸 애써 서로 모른척하기에 바쁜 시간이었다.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면 그 슬픔에 잠식당할까, 가족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은 채로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엄마의 가게에 누군가 절절한 얼굴로 잃어버린 강아지 전단지를 붙여달라 부탁했다. 같은 처지인 엄마는 당연히 그 전단지를 받았고, 함께 가족을 잃어버린 슬픔을 나누며 우리도 얼마 전 잃어버린 아이가 있다고 해피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누구에게나 우연이 운명처럼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던데. 우리에게 그날이 그런 것 같았다. 정말 못 믿을 거짓말처럼, 그분이 해피를 알아본 것이다.
"우리 애 찾다가 시청에 있는 유기견 보호소 홈페이지에서 본 것 같아요. 맞아요, 이 무늬. 맞네. 얼굴이 똑같네."
엄마는 그때부터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에게 전화를 했다. 시청 홈페이지라니.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잃어버린 강아지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몰랐던 무지한 우리는 뒤늦게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엉엉 울었다. 나이가 들어 목언저리에 털이 빠진 모습까지... 그 사진은 해피가 분명했다. 보호소로 명시된 곳에 전화를 하며 급히 차를 몰았다. 그래도 찾았으니 되었다고 생각했다.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되니까. 어떻게든 찾았으면 된 거니까. 길에서 힘들었을 테니 맛있는 것을 잔뜩 줘야지. 숨 막히게 안아주고 보고 싶었다고, 미안하다고 말해줘야지. 우리 천재 강아지는 이토록 모자라기만 한 우리에게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했다.
"그게... 지금 오셔도 소용없어요."
출발 직전에 해피가 보호소에 있는 게 맞다고 확인해 주던 보호소 직원은, 우리가 찾아가겠노라 정확한 위치를 물었지만 대답을 내내 빙빙 돌리다가 끝내 그렇게 말했다. 아니 우리 아이 맞다니까요. 지금 갈 수 있어요. 가고 있어요. 우리가 절박한 만큼, 보호소 직원의 주저하는 목소리가 느껴졌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았다.
해피가 보호소로 가게 된 경위는 교통사고였다. 발견 위치는 가게에서 사람 걸음으로 2, 30분 정도 되는 큰 사거리였다. 차에 치여 길에 있는 걸 누군가 신고했고, 연락을 받은 보호소에서 다친 해피를 데려갔다. 그때는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도 더 낮았던 때라 리드줄에 대한 규제도 없었고, 인식표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해피는 따로 번호가 적힌 목걸이도 하고 있지 않았어서 보호소 측에서 우리의 연락처를 알아낼 방법도 쉽지 않았을 터였다. 그렇다고 그곳도 무작정 기다리기엔 해피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사고로 뒷다리가 모두 골절되어 너무 고통스러워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처음엔 어제 안락사를 했다고 했다가, 하다못해 아이 사체만이라도 돌려받겠노라 했더니 보호소는 입소한 다음날 안락사를 했다고 말을 바꿨다.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말고 와는 상관없이 내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이럴 거면 두 달이나 공고를 올려놓지 말지. 차라리 모르게 해 주지. 막연하게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기를 바라던 이기적인 마음이 무너졌고 그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상실감은 원망이 되어 쏟아졌다. 우리는 그 전화를 끝으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내 형제는 운전대를 잡은 채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해피의 소식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엄마에게 가야 했지만, 도무지 운전을 할 수 없어 눈물을 삼키며 전화를 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해피의 마지막을 서러운 전화 한 통으로 떠나보냈다.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불러놓고, 과연 너의 생이 행복했는지 물어볼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 가족에게는 큰 상처로 남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당시에 나는 정말 다시는 동물을 기르고 싶지 않았다. 제 명대로 살게 해주지도 못했으면서, 또 다른 아이를 데려와 그때의 아이보다 사랑할 자신도, 행복해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내가 화장실에 가지 않았더라면. 네가 따라오는 걸 막았더라면. 이렇게 헤어질 줄 알았더라면 맛있는 거라도 더 많이 사줄걸. 귀찮음을 핑계로 산책을 미루지 말걸.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시간을 거슬러 끝없는 후회가 반복됐다. 지난 시간을 곱씹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언제까지고 이 슬픈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
1-2.
If it was meant to be, it will happen.
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 내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 우린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구나 싶다.
한 생명의 빈자리를 경험하게 되는 사람을 보면 대체로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건 오히려 주변인들 쪽이다. 당사자가 잘 이겨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변에서는 오히려 그 빈자리를 서둘러 채워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주말마다 엄마가 운영하는 가게를 오가던 어느 날, 낯선 강아지가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태어난 지 한, 두 달이나 되어봄직 했다. 해피를 보내고 슬퍼하는 엄마가 안타까우셨는지, 자주 오시는 손님이 데려다 놓은 아이였다. 해피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사실 나는 내심 그 순간이 달갑지 않았다. 그 아이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비집고 나오지 못하도록 꾹꾹 눌러놓기만 했던 해피에 대한 생각이 우수수 쏟아지는 것 같았다. 한 생명을 온전히 보내주지도 못했으면서, 이렇게 무책임하게 또 다른 아이를 들여도 되는 걸까. 과연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떠맡겨진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고, 자꾸만 아이와 나 사이에 선이 그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을 품고 있어서였을까. 우리 집 두 번째 해피가 될 뻔했던 아이는 겨우 일주일 정도만에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 보호자였던 분의 자녀가 강아지를 기르지 않겠다 했다가, 다시 데려오라고 변덕을 부렸다고 했던가. 줬다 뺏는 황당한 경우이긴 했으나, 마음의 짐이, 상처가 아물기도 전이었던 나는 아이를 다시 보내면서도 크게 서운하지 않았다. 그냥, 그 아이와의 인연이 이것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직 해피의 빈자리에 흘린 눈물이 마르지 않은 채였다.
*
톡톡톡 바닥을 두드리며 걸어오는 발소리와, 문을 열면 언제라도 달려와주던 모습이 사라진 집은 공기의 무게가 다르다. 해를 넘길수록 아이의 빈자리를 잊고 이름을 불렀다가 뒤늦게 깨달아지는 슬픔을 다시 눌러 담는 일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망각은 신의 선물이라던 말이 피부로 와닿던 시간들이었다. 당시 20대였던 나는 사회 초년생으로서 현생의 분주함에 떠밀려 더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던 때였다. 업무를 보던 중 엄마에게서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퇴근하자마자 같이 갈 곳이 있다며 조금 들뜬 목소리로 전해 왔다. 퇴근이 9신데 대체 어딜 간단 말인가. 아직 용건은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피곤함이 몰려들었다.
"네가 해피 보내고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종조할머니가 강아지 받아오셨대. 엄마 시간 없어서 오늘 가야 해."
엄마는 옹색한 변명의 방패막이로 나를 앞세웠다. 입 밖으로 해피의 빈자리를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리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엄마가 해피를 덜 사랑했을 리도, 덜 아팠을 리도 없었다. 가족 모두가 서로 모른척하기에 바빴던 상처가 이제야 비로소 수면 위로 흔적을 드러냈다. 이렇게라도 새로운 인연을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전화기 너머로 어렴풋이 느껴졌다. 나의 동물 극극극호 유전자는 아마도 정 많은 엄마를 닮았을 터였다. 퇴근이 늦는다는 핑계로 거절하려던 말이 메이는 목 안으로 꾹 삼켜졌다. 그래요. 갑시다. 간단하게 전화를 끊고 나서도 속에서는 알 수 없는 울렁거림이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끌어안은 채로 퇴근시간을 맞은 나는 엄마를 따라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조금 눈물이 났다. 이제야 먼저 떠난 아이와의 매듭을 바로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인연은 종조할머니가 단골이었던 미용실에서 시작됐다. 동네 사랑방에 가까웠던 미용실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그리고 그날의 이슈는 고물상 할아버지 댁에 몇 주 전 낳은 새끼들의 거처에 대한 이야기였다. 새끼가 무려 네 마리나 되는데, 아이들 중 하나는 본인 자녀가 데려가기로 했고 이제 남은 세 마리를 누군가 데려갔으면 한다는 거였다. 거기서 할머니는 우리 엄마를 떠올리셨다. 할머니에게 우리 엄마는 아직도 어리고 여린 조카며느리여서, 해피를 먼저 보내고 슬퍼하는 그 모습이 내내 마음 쓰이셨던 모양이었다. 게 중 제일 예쁜 놈으로 달라고 말을 붙이신 할머니는 돈을 한사코 거절하는 할아버지께 생명은 공짜로 데려오는 게 아니라며 굳이 굳이 오천 원을 쥐어주고 데려오신 거라고도 덧붙이셨다.(엄마는 아직도 만원이라고 자꾸 우기지만.) 오천 원이라니. 발매트 구석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손바닥만 한 강아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심장이 벌렁댔다. 내 생에 가장 값진 오천 원으로 우리가 가족의 인연을 맺게 되는 날이었다. 급하게 가느라 변변한 이동장도 없이 투박한 쇼핑백에 아이를 넣어 품에 안은 나는 어린 시절의 언젠가처럼 성급하게 마음만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 같았다.
"엄마, 얘 이름을 뭘로 하지?"
"얘는 뭘 그런 걸 고민해? 해피. 우리 집 강아지는 해피지."
엄마의 결단은 그날처럼 망설임이 없었다. 그래, 우리 집 강아지는 해피지.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10년도 더 된 그 언젠가가 떠올랐다. 강산이 바뀔 만큼 시간이 지났어도, 내 순발력은 자라지 않았는가 보다. 집으로 오는 내내 나는 쇼핑백 안에 반짝이는 새까만 눈동자를 마주했다. 해피라는 이름에 새로운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벼락처럼 예고도 없이 시작된 진짜 두 번째 해피와의 인연은 그날로부터 14년이 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뜨겁던 여름날 내 동생이 된 해피는 나와는 시도 때도 없이 싸우지만, 엄마 앞에선 물개처럼 귀를 때려눕히고 애교를 부리는 약아빠진 녀석이다. 편들어주는 엄마가 있을 때 엄살이 더 심해지는 막냇동생 같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아직도 해피를 보며 "똥강아지가 복이 많다."라고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엔딩이 없는 한 챕터의 마지막 페이지를 붙들고 여전히 그 시간에만 머물러있던 우리가 있었다. 눈물이 날 새라 서로 말을 아끼며 새까만 사막의 한복판에 마음을 멈춰두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한 건 우리가 아닌, 너였다. 많고 많은 우연과 인연의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와준 네가 있어서, 우리는 그 이름에 계속해서 새로운 시간을 담는다. 기억에 시간을 덧입힌 지금에서야 우리는 먼저 떠나보낸 아이를 이제는 울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해피는 이랬고, 지금의 해피는 이렇지. 하며 못난 어른처럼 저울질도 해보고, 그럼에도 그때의 해피와 지금의 해피를 사랑해 마지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한 생명으로 인해 다시 흐르는 시간은 매 순간이 처음인 것처럼 귀하고 새롭다. 그리하여 우리는 또다시 망각하는 축복받은 인간이 되어, 촘촘하게 너의 이름이 새겨진 특별한 역사를 남기는 중이다.